말로만 ‘미래 먹거리’신약 개발은 뒷전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3.10 20:23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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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생산에만 열중“신약 개발 없이는 성장 한계 뚜렷”

‘삼성표’ 의약품이 세계 시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삼성그룹이 반도체와 스마트폰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시작한 지 4년 만이다. 2012년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유럽 특허가 만료된 바이오의약품(글로벌 제약사 암젠의 엔브렐)을 복제했고, 올해 1월 유럽의약품청(EMA) 판매 허가를 받아 유럽 31개국에서 출시할 수 있게 됐다. 이 회사의 차자명 커뮤니케이션팀 과장은 “올해 2월 중순 영국에서 바이오시밀러(약품명 베네팔리)를 출시하기 시작했고, 노르웨이에서도 곧 판매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바이오시밀러(biosimilar)는 생체물질로 만든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이다. 베네팔리는 오리지널 의약품인 엔브렐과 효능이 같은 바이오시밀러다. 이 약은 ‘브렌시스’라는 약품명으로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먼저 출시됐다. 자가면역질환(류머티즘 관절염, 척추관절염 등)에 처방할 수 있다. 엔브렐은 2014년 세계적으로 89억 달러(약 10조7200억원), 유럽에서만 25억 달러(약 3조원)의 매출을 올린 세계 2위의 바이오의약품이다. 현재 이 약을 포함해 출시됐거나 판매 허가를 앞둔 바이오시밀러는 6개다. 또 삼성바이오에피스는 7개의 바이오시밀러를 후속으로 개발 중이다. 모두 13개의 파이프라인을 둔 셈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연구실 ⓒ 삼성바이로에피스 제공 삼성 브랜드를 단 첫 번째 바이오시밀러 베네팔리는 올해 초부터 영국과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유럽에서 출시되고 있다.

 


“삼성, 바이오의약품 개발 의지 있는지 의문”

 

시장 규모와 기술 축적 능력 등을 고려할 때 삼성이 바이오의약품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은 일은 옳은 결정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2015년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은 1790억 달러(약 221조원)로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2배를 넘었고, 2020년 2780억 달러로 커질 전망이다. 합성의약품에 비해 바이오의약품은 효과가 좋으면서도 부작용이 적기 때문에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바이오의약품 비중은 꾸준히 커지고 있다. 바이오의약품 개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약 10년이라는 임상시험 기간이 필요하고, 1조원 안팎의 막대한 자금 투자도 이뤄져야 한다. 고도의 기술력도 갖춰야 한다. 이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 기존 제약사의 바이오의약품을 복제한 약, 즉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는 것이다. 삼성도 이 순서를 밟고 있다.

 

일반적으로 바이오시밀러 개발 기간은 기존 신약의 절반 수준인 5년 안팎이다. 그런데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막대한 자금력과 우수한 인력으로 그 기간을 4년 이하로 단축했다. 세계 제약사들이 삼성을 경쟁사로 견제할 정도의 빠른 속도다. 또 바이오의약품 생산을 담당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 공장을 3개로 증설하면서 세계 1위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연간 36만 리터 규모)을 갖춘 것도 시너지 효과를 냈다.

 

삼성은 바이오의약품 사업을 통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일구려는 꿈을 꾸고 있다. 후발 주자인 삼성이 세계 바이오의약품 시장에 명함을 내밀려면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신약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현재 장기 투병 중이고,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명확한 신약 개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반도체 사업이 어려워지자 삼성이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능성을 타진하는 정도”라거나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이 부회장의 지분 정리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바이오시밀러 개발에서 발 빠른 행보를 보인 만큼 신약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송용주 한국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 연구위원은 “반도체 공정 경험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생산력 시너지로 바이오시밀러를 상당히 짧은 기간에 만든 삼성은 세계 제약업체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면서도 “하지만 신약 개발에 투자한다거나 다른 제약사를 인수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 게 없어 삼성이 바이오의약품 개발에 확고한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바이오시밀러 시장 한계 극복은 신약 개발”


실제로 능력이 되지 않는 기업이 M&A(인수·합병)를 통해 세계적인 제약사로 발돋움한 사례가 있다. 1972년 설립된 이스라엘 제약사 테바(TEVA)는 내수 시장에서 복제약을 파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이 제약사는 2000년 이후 급성장세를 타더니 현재 세계 10대 제약사로 부상했다. 자력으로는 신약 개발이 어려웠던 이 회사는 독일·미국·일본 등지에 있는 세계 유수의 제약사 16곳을 인수했다. 이민석 서원대 식품공학과 겸임교수(전 한국바이오협회 대외협력실장)는 “후발 제약사가 신약 개발 능력을 가장 빠르게 갖추는 길은 기술력을 갖춘 다른 제약사를 인수하는 것”이라며 “확인할 수는 없지만 삼성바이오에피스도 다른 제약사 인수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삼성은 바이오시밀러 사업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국내 제약업계를 위해서도 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성규 팜스코어(보건의료 분석 웹사이트) 수석연구원은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가 바이오의약품 시장의 23%로 작은 데다, 기존 제약사들의 텃세가 심하고 신약이 계속 출시되기 때문에 바이오시밀러로 제약사가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조사 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와 CBR 파마 인사이트에 따르면, 바이오시밀러 시장 규모는 유럽(44%), 중국(13.2%), 미국(12.3%), 한국(8%), 인도(6.7%), 일본(3%) 순이다. 유럽의 시장점유율이 매우 높은 편이어서 후발 기업이 큰 성장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또 삼성이 유럽과 캐나다에 바이오시밀러 판매 허가 신청을 냈을 때 기존 다국적 제약사들이 유럽의 2개국과 캐나다에서 특허 소송을 냈다. 기존 제약사들이 판매 시기를 늦추려는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유무형의 손해를 볼 수 있다. 실제로 한미약품이 2012년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 복제약을 출시한 후 화이자의 소송에 부닥쳤다. 한미약품은 승소했지만 복제약품의 이미지 실추 등 마케팅에서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최성규 수석연구원은 “기존 신약과 바이오시밀러의 가격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은데, 가격보다 효과와 안전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환자와 의료진이 굳이 기존에 사용하던 약을 바꿀 이유가 없다”며 “이와 같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삼성의 미래가 달려 있는데, 그 방법의 핵심은 신약 개발이어야 하며, 지금이라도 그 청사진을 제시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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