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만들어준 고마운 이”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0 20:30
  • 호수 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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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 펴낸 문화철학자 김용석 교수

“혹한 속에서 김광석은 맑게 웃고 있었다. 대구 방천시장 옆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서 보는 그의 모습들은 햇살처럼 환했다. 안심이 되었다. 보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그의 웃음 덕에 그가 저 하늘 어딘가에서 20주기 기일을 맞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웃과 벗들의 웃음 속에서/ 조그만 가락이 울려 나오면/ 나는 부르리 나의 노래를/ 나는 부르리 가난한 마음을.’ 그는 우리와 함께 있었다. 사람들이 그와 어깨동무하고, 허리를 포옹하며, 볼에 볼을 갖다 대며 추억을 만들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가 춥지 않았다. 행복했다.”

 

문화철학자 김용석 영산대 교수는 김광석 20주기 기일 직후인 1월7일과 8일, 김광석의 고향인 대구 ‘김광석의 거리’와 그의 주 활동 무대였던 서울 대학로, 그리고 그의 위패가 있는 서울 노원구 청광사 등을 답사했다. 김광석에게 그가 쓴 <김광석 우리 삶의 노래>의 출간을 알리고 싶었다.

 

ⓒ 천년의 상상 제공

 


‘다시 부르기’는 ‘노래의 참뜻을 찾아가는 길’

 

김용석 교수는 김광석이 태어난 곳에서 그가 활동하던 때의 일과 삶의 터전을 거쳐 그가 영면하고 있는 곳까지 그 짧고도 긴 여행을 통해 특별한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던 아쉬움과 짧게 마감한 그의 인생에 대한 비극적 회한이 일부나마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김광석은 노래를 발표하고 또 ‘다시 부르기’를 하는 과정에 대해 서술한 글에서 ‘노래의 참뜻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썼다. 참뜻을 찾는다는 것은 철학하기라는 것이다. 진리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참뜻이다. 김광석은 적어도 음악이라는 세계에서 진리를 추구한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부르기 자체가 바로 철학하기인 것이다. 나는 ‘치유’한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치유한다는 것은 일단 그 사람을 병자로 전제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병은 남이 치유할 수 없다. 스스로 성찰하고, 사유하고, 용기를 갖고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감상주의에 빠지지 말고 낭만적 숭고함으로, 갈 길을 스스로 가는 것이다. 음악적인 면에서 그런 길을 우리에게 보여준 사람이 김광석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 교수는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를 그의 음악세계의 중요한 특징이자 문화사적 공헌으로 본다. 음악적 차원에서 음반을 출시하는 문제가 아니라,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문제라는 것이다.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는 노래의 역사에서 독보적이다. 평자들은 그가 ‘남의 노래’를 완벽히 소화해서 ‘자기의 노래’로 만들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이 있음을 높이 산다. 그러나 김광석의 작품성이 이에 머무른다면 그 의미는 대폭 축소되리라. 김광석의 진짜 공덕은 남의 노래를 ‘우리의 노래’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서 김광석이 우리에게 남긴 철학적 주제들을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일상적 삶 속에도 깊이 배어 있고, 수시로 꿈틀거리며, 때론 거칠게 생동하는 것들이다. “김광석이 특수한 소재로 삶의 특별한 순간을 노래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 삶의 보편적인 주제를 들려주고 있다. 특히 <이등병의 편지>는 김광석의 목소리와 곡 해석으로 큰 공감을 일으켰다. 이 노래는 모든 사람의 노래로, 즉 ‘인생 이등병의 편지’라는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순간순간 새로운 다짐으로 새 삶을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 우리 ‘인생 이등병’들의 노래다. 그렇게 된 것은 김광석이 이 노래를 ‘입영 노래’가 아니라, ‘인생 노래’처럼 불렀기 때문이다.”

 

“‘나의 노래’,  ‘너의 노래’ 되고 ‘우리의 노래’ 돼”

 


김용석 교수는 김광석처럼 하이피치를 진한 응집으로 부르는 가수가 또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 응집력이 듣는 이를 전율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광석의 목소리엔 핏기가 서려 있다. 아니 그는 핏덩이를 입에 물고 노래한다. 그가 한 움큼 삼켰다 내뱉듯 하는 소리는 핏덩이의 울음 그 자체다. 입안에서 공명하는 그 울음에 입도 크게 벌리지 못하고 소리를 낸다. 그 핏덩이에 혼신의 힘으로 영혼을 응집하는 소리, 그 소리는 목이 아니라 그의 온몸에서 나온다. 누가 그를 영혼의 가수라고 했는가. 그는 육신과 영혼에 구별이 없는 가수다. 그의 육신과 영혼이 모두 그 핏덩이에 용해되어 있다. 육신과 영혼의 갈등이 핏덩이로 얽혀 있는 그 진한 삶을 감내하는 가수, 그게 김광석이다.”

 

다시 김 교수는 2016년 1월 혹한의 겨울 매서운 칼바람 속, ‘학전블루 소극장’ 앞 김광석의 조각상 앞에 서 있다. 조각상 밑에 ‘아름다운 노래들을 수없이 찾아내 우리에게 들려준 영원한 가객, 김광석’이라고 씌어 있다. “내 뜻이며, 참으로 그에게 딱 맞는 헌사가 아닌가. 김광석은 ‘가수란 목소리의 예술가’라는 의식이 분명했던 것 같다. 노랫말이 지닌 원래 뜻의 중요성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다. 자신의 목소리가 ‘이미 지어진 말’에 어떻게 ‘지금 살아 있는 의미’를 실어주는지가 중요했다. 바로 김광석 특유의 곡 해석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건 단순한 목소리, 곧 목의 소리가 아니라 몸의 소리이고 영혼의 소리다. 몸과 얼이 목을 통해 전달하는 소리, 그 소리에는 자기 삶의 진한 경험과 고뇌의 미세하고 굵은 결들이 새겨져 있다. 그 소리는 자신의 삶과 괴리됨 없이 일치한다. 그러므로 그의 노래를 듣는 타인들의 삶과도 즉각 감동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노래’는 ‘너의 노래’가 되고 ‘우리의 노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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