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세계의 표준'을 노리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3.15 01:28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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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의 진화, 그 뒤에 숨은 구글의 플랫폼 확대 전략
  〈AI의 충격〉이라는 책을 쓴 고바야시 마사카즈는 “구글이 바둑에서 이기려고 알파고를 진화시키려고 했겠나”라고 반문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모바일의 주도권을 잡은 다음 인공지능에서 세계적인 표준 OS를 만들려고 하는 게 구글의 목적”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 일러스트 신춘성

“결과에 관계없이 좀 무섭네요.” 3월10일 목요일, 서울의 포시즌스호텔. 전날 낯선 상대와의 대국에서 1패를 안은 이세돌 9단은 두 번째 대국에서 초반부터 유리하게 경기를 이끌고 나갔지만 또다시 패배했다. 이 9단이 돌을 던지는 순간, 많은 사람의 머릿속은 복잡했을 것이다. 마치 인류의 패배처럼 받아들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1국의 패배를 굳이 위안 받자면 상대에 대한 ‘낯섦’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을 터. 하지만 2국은 말 그대로 진검승부였다. 결국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프로 기사보다 뛰어나다는 얘기가 된다. 송태곤 9단에게서 ‘무섭다’는 표현이 나온 이유다. “알파고가 인 간 상식선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를 뒀다. 승부의 측면에서 볼 때 이런 흐름을 뒤집어 이긴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2016년 3월의 둘째 주는 인공지능에 기념비적인 한 주가 됐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여기서 Go는 일본어로 ‘바둑’을 뜻한다)의 승리는 곧 구글의 승리다. 반상 위에서 펼쳐지는 ‘인간 대(對) 인공지능’의 대결은 그 어느 때보다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그래도 이세돌에게 이기기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예상대로 됐더라도 잃을 게 없는 구글이었다. 그런데 전 세계 기자들 앞에서 1, 2국 연이어 승리까지 거뒀으니 알파고가 대견스럽기 짝이 없을 터다.

“바둑기사의 무의식적 패턴, 딥러닝은 안다”

고대 동아시아 때부터 내려오는 전략과 직관의 흑백 승부는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매료시켰다. 서양에서는 인류의 지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게임에서 이미 인공지능이 인간을 꺾었다. 체스나 오델로가 그랬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아직 인간이 위였다. 체스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움직이는 바둑때문이었다. 인공지능이 바둑의 최고수를 이기려면 앞으로 10년 정도가 더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구글은 2011년 알파고를 만들어낸 영국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4억 달러에 인수했다. 딥마인드의 창업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이세돌과 닮은 점이 있다. 한쪽은 ‘바둑 신동’, 다른 쪽은 ‘체스 신동’이었다. 지금은 인공지능 개발자지만 하사비스는 14세 때 체스 세계 랭킹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그가 창조해낸 알파고는 체스보다 더 어렵다는 바둑을 극복했다. 체스는 하나의 국면에서 평균 35가지의 전개법이 있다고 한다. 반면 가로 세로 19줄의 바둑판은 돌을 놓고 싸우는 전개법이 250가지다. 그리고 그 250가지의 전개법 각각에 대해 다음 250가지의 방법이 있고, 이것이 계속 곱해진다. 딥마인드를 설립하고 지금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이끄는 데 미스 하사비스의 설명대로라면 바둑에는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보다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몬테카를로 트리 검색(MCTS·바둑의 확률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작위로 말을 대입해보며 예상 확률을 알아낸 후 가장 가능성이 높은 수를 선택하는 컴퓨터 기법)을 이용하면 ‘Crazystone’(크레이지스톤·상업용 바둑게임 소프트웨어)과 대결할 경우 바둑의 국면을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어느 정도 강한 바둑기사는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초일류 기사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둑판 전체를 보고 다음의 수를 결정하는, 직관적 레벨에 도달한 사람들이라서다.

2014년 말부터 구글 딥마인드, 에든버러대학 인공지능연구소, 페이스북 등 세계의 주요 인공지능 연구팀들은 딥러닝(인간의 두뇌처럼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한 후 사물을 구분하는 정보 처리 방식)을 바둑 프로그램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딥러닝을 사용하면 바둑이 필요로 하는 최고수들의 직감을 모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딥러닝은 인간 뇌의 신경망을 모방한 인공신경망을 통해 작동한다. 인공 신경망은 특정 작업을 학습하는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강아지의 사진을 반복해 보여주면 강아지를 확인하는 법을 배운다. 대화를 많이 들려주면 사람의 말을 익힌다. 바둑의 기보를 많이 입력하면 어떻게 바둑을 두는지를 학습할 수 있다. 하사비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바둑 기사들은 무의식적으로 패턴 매칭을 실시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딥러닝은 그것을 훌륭하게 학습할 수 있을 거다.”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의 학습 속도는 경이적이다. 딥마인드 측은 과거 ‘브레이크아웃’이라는 블록 게임을 예로 들었다. 1시간에 200회 정도 이 게임을 소화하면 34%의 비율로 공을 되받는데, 사람으로 치면 초보자 정도의 실력이 된다. 2시간 후 300번 게임을 소화하면 이미 인간의 기량을 넘어선다. 4시간 후에는 블록에 통로를 열어 뒤쪽에서 블록을 무너뜨리는 대담한 기술을 스스로 학습하면서 게임을 마스터한다. 딥러닝의 무서움이다.

 

구글 알파고와의 첫 대국을 앞두고 이세돌 9단(오른쪽)과 악수를 하고 있는 데미스 하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알파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는 현재 구글 진영에서 인공지능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 AP 연합

“휴대폰처럼 인공지능도 결국 플랫폼 싸움”

바둑에 노력을 기울이긴 페이스북도 마찬가지였다. 페이스북은 자신들의 인공지능에 딥러닝과 몬테카를로 트리 검색을 결합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크레이지스톤’은 이길 수 없었다고 한다. 반면 구글 딥마인드는 이 아이디어를 더욱 진화시켰다. 약 3000만개의 기보를 구해 알파고에 입력하니 약 57%의 확률로 사람의 다음 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하사비스와 그의 연구팀이 다른 네트워크와 대결시켰다는 점이다. 데이비드 실바 딥마인드 연구원은 “알파고는 자신과 같은 신경망과 수백만 번이나 경기를 하면서 자신이 사용하는 전략의 옳고 그름을 발견해가는 법을 배웠고 점점 능숙해졌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알파고는 ‘크레이지스톤’을 포함한 다른 바둑 프로그램을 이겼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네트워크 2호에 통합했다. 네트워크 2호에도 1호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기보를 입력했는데 그 결과 비슷한 수준의 바둑을 구사했다. ‘강화학습’의 단계다. 강화학습은 인공지능끼리 다투게 해 어떤 움직임이 가장 높은 점수를 이끌어내는지 추구한다. 이런 수많은 반복을 통해 알파고는 성장해갔다.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은 단순한 바둑 대결일까. 알파고의 중요성은 엄청나다. 같은 기술은 로봇과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시리(Siri)와 같은 모바일 음성 보조프로그램에서 금융 투자까지 다양한 용도로 응용이 가능하다. 강장묵 고려대 교수(컴퓨터학)는 인공지능 플랫폼 싸움에서 구글이 선두 효과를 거뒀다고 본다. “인공지능도 앞으로는 플랫폼 싸움이다. 핵심기술을 가져다가 인공지능을 어디에 탑재 할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로봇 같은 경우도생산 공장에서 사용하는 운영체제가 있고 휴머노이드도 나름의 체제가 있다. 휴대폰의 운영체제로 어떤 것을 쓸 것인가처럼 미래의 인공지능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자신들의 기술력을 보여주며 인공지능 영역에 도전하는 걸 구글이 전 세계에 명확히 보여줬다.”

이라는 책을 쓴 고바야시 마사카즈(일본 KDDI 연구소 펠로)도 생각이 비슷했다. 그는 “구글이 바둑에서 이기려고 알파고를 진화시키려고 했겠나”라고 반문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로 모바일의 주도권을 잡은 다음 인공지능에서 세계적인 표준 OS를 만들려고 하는 게 구글의 목적”이라는 게 그의 얘기다.

구글은 최근 수년간 로봇 및 인공지능 스타트업 인수에 목말라했고, 하나둘 그런 조각들을 모아나갔다. 일본의 로봇공학회사인 ‘샤프트’ 등 로봇 관련 스타트업을 여러 개 인수하며 기술과 특허를 입수했다. 그는 구글이 인공지능 로봇을 ‘차세대 휴대폰과 같은 디바이스’로 접근하고 있다고 본다. 가정이나 사무실 등 모든 공간에 구글의 인공지능 표준을 장착한 로봇을 넣고 그들의 광대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정보를 흡수하는 것. 먼 미래의 시나리오 같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이번 알파고의 승리는 단순한 이벤트 승리가 아니다. 구글의 승리이며,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흥분할 만한 이야기다. 다른 많은 기술 기업이 지금 힘을 쏟고 있는 분야에서 가능성을 찾아낸 이야기다. 인공지능 개발 경쟁은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모두들 미래의 표준을 꿈꾸는 곳이다.


2015년 10월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패배가 확정된 순간 판 후이 2단의 모습. © 유투브 캡쳐

구글의 AI 소프트웨어 무료화에 담긴 전략

구글이 딥마인드를 인수해 인공지능 연구에 박차를 가했듯 페이스북에도 인공지능이 화두다. 구글은 1월27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알파고가 지난해 10월 판 후이(유럽바둑 챔피언이자 중국 프로 바둑기사)와 벌인 5번의 대결을 모두 이긴 사례를 발표했다. 구글의 네이처 표지 장식 전날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는 하나의 포스트를 올렸다.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0.1초의 속도로 바둑을 둘 수 있는 인공지능을 구축했습니다. 이것을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렸습니다.” 페이스북이 인공지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주커버그와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총괄책임자 얀 레쿤 뉴욕 대학 교수의 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페이스북의 관심사는 주커버그와의 거리를 따져보면 된다. 주커버그와 얀 레쿤 교수의 사무실 내 거리는 6m에 불과하다.

애플이나 IBM 등도 인공지능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들 알파고를 주목하는 건 구글이 현재 이 분야에서만큼은 가장 앞서 있기 때문이다. 선두 주자의 대담함은 지난해 11월9일 구글이 던진 제안에서 엿볼 수 있다. 음성 검색과 사진 검색 등 구글의 서비스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공개한다는 것.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무료’다. 전 세계가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때 독점이 아니란 얘기다.

제안 뒤에는 구글의 과거 전략이 녹아있다.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공개하면서 한때 스마트폰 시장에서 80% 이상의 점유율을 확보했던 성공 경험이 이런 결정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제공하는 것 그 자체에서는 수익을 얻고 있지 않지만 이것을 탑재한 스마트폰 사용자가 사용하는 검색 연동 광고 등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세계 표준으로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다. 구글의 인공지능이 세계 점유율을 절대적으로 확보하는 것, 그걸 위해 알파고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게임은 그 서막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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