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엔터, 월 80만원 주고 저작권 영구 독점
  • 고재석 기자 (jayko@sisapress.com)
  • 승인 2016.03.16 17:31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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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4, 1997 등 방송음악 제작업체
로이대응모임, 문화연대, 뮤지션유니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예술인소셜유니온, 참여연대 등이 16일 광화문광장에서 문화예술계 불공정관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

예능과 드라마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창작자의 권리는 외면 받고 있다. 방송음악 제작사 로이엔터테인먼트는 소속 작곡가들에게 월 80만원을 지급하고 저작권을 영구 독점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 작곡가를 지원하는 변호인단은 관련 계약서 자체가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 작곡가 권리 철저히 배제된 계약서

로이엔터테인먼트는 ‘응답하라 1994, 1997’, ‘삼시세끼’, ‘프로듀사’ 등 예능‧드라마 방송음악을 제작한 방송음악 외주제작업체다. 로이대응모임과 참여연대, 문화연대, 예술인소셜유니온, 뮤지션유니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은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로이엔터테인먼트가 작곡가들과 체결한 저작물 계약서 사본을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저작물 제작 계약서’ 사본에는 작곡가의 권리가 철저히 배제된 문항이 상당수 포함돼있다.

3조 3항은 “갑(로이)은 을(작곡가)에게 매월 지원되는 비용을 80만원으로 정한다”고 규정했다. 5항에서는 “창작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독점적으로 영구히 갑이 관리하며, 저작인격권의 행사는 영구히 갑이 행사하며 관리한다”고 적혀있다. 저작권은 저작권자 고유 권리인 저작인격권과 재산적 권리인 저작재산권으로 나뉜다.

갑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4조 1항에서도 “갑은 본 계약과 관련하여 저작물과 음원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며, 저작물에 대한 독점적 관리의 지위를 가진다”고 나온다. 이어 “저작물을 통해 제작된 음원은 갑에게 귀속한다”고 적혀있다. 더 나아가 “갑은 필요시 저작물의 증감을 포함한 모든 변형을 할 수 있다”는 문구도 기재됐다.

을의 권리와 의무를 제시한 4조 2항에는 “을은 원활한 저작물 창작과 음원 제작을 위해 갑으로부터 매월 일정 비용을 지원받을 권리가 있다”고 나온다. 앞서 3조 3항에 명시된 80만원이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계약서에 따르면 콘텐츠 수익에 관한 로이 측 권한은 절대적이다. 콘텐츠 판매를 통해 들어온 수익도 작곡가는 알 수 없다. 계약서 내용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매월 지원되는 80만원은 콘텐츠에 대한 수익분배가 아니라 일종의 월급에 가깝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김인영 작곡가에 따르면 80만원이 첫 입금된 날짜는 2013년 1월 31일이다. 김 작곡가는 2011년 여름부터 회사에서 일했다. 시차가 상당하다. 2013년 4월30일 월 급여가 100만원으로 인상됐다. 김 작곡가는 2015년에 작곡1팀장으로 승진했지만 급여는 130만원 수준이었다. 김 작곡가는 지난해 9월 해고됐다.

◇ 변호인단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

로이대응모임을 지원하는 변호인단은 16일 남부지검에 제출하는 형사고소장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김인영 작곡가 등이 작곡한 배경음악이 한 드라마에 삽입됐지만 이들의 실명은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 대신 대표의 이름이 표기됐다. 변호인단은 이것이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 위반이라고 밝혔다.

저작권 등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작곡가들이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13곡의 음악이 저작권등록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한 지상파 방송사 인기드라마에서 쓰였다. 변호인단은 이 역시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 제1호 위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종휘 마스트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사문서 위조, 위조 사문서 행사, 부정발행의 점, 출처명시위반, 저작권 포괄적 대리행사, 저작재산권 침해 등 6가지 혐의로 형사고소한다”고 밝혔다.

김종보 변호사(민변) 역시 “저작인격권은 해당 저작물을 본인이 만들었다는 뜻이라 양도하지 못한다”며 “예술가의 분신인 저작인격권마저 넘기는 불공정 계약을 체결했다”고 비판했다.

◇ 문화예술인들 “관행 해결 안 되면 한류 지속가능하지 않아”

대중음악평론가인 나도원 예술인소셜유니온 위원장은 “음원산업 규모는 10배 이상 성장했지만 음악인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너무 적다”며 “이런 잘못된 관행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류바람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로이대응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손아람 소설가도 “광범위하게 퍼진 불공정이 문화예술계의 표준적인 규정처럼 자리 잡았다”며 “예술을 만드는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을 배달하는 유통업자가 예술의 주인처럼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김인영 작곡가 등 피해 작곡가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후 서울남부지검에 형사고소장을 제출했다. 외면 받는 창작자의 권리와 해당업체의 실정법 위반 여부는 이제 법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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