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족벌경영]② 4세 9명, 주요 계열사 핵심 보직 독식
  • 한광범 기자 (totoro@sisapress.com)
  • 승인 2016.03.17 17:14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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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경영은 실적 상관없이 계속된다
그래픽=김재일 기자

박정원(54) 두산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승계하면서 두산은 4세 시대의 문을 열었다. 총수 일가 4세 9명 가량이 주요 계열사에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대부분은 핵심 계열사 임원으로 근무 중이다.  

박정원 회장은 두산가(家) 3세 중 맏형인 박용곤 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박정원 회장은 1985년 평사원으로 두산산업에 입사해 32년 근무하고 있다. 2007년 두산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부회장에 임명된 뒤 지금도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두산베어스 야구단 구단주이기도 하다. 그는 지주회사인 ㈜두산 지분 6.29%을 보유하고 있다. 총수일가 중 보유 지분이 가장 많다.

박정원 회장 여동생은 박혜원(53) 두산매거진 부사장이다. 박혜원 부사장은 그룹 경영과 거리를 둔 채 두산매거진 경영에 집중하고 있다. 두산매거진은 보그, 지큐(GQ) 등 다수 유명 패션잡지를 발행한다. 박혜원 부사장은 ㈜두산 지분 2.09%를 보유하고 있다.

박지원(51)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박정원 회장의 남동생이다. ㈜두산 부회장과 두산엔진 부회장을 겸직하고 있다. 박지원 부회장도 1988년 동양맥주(옛 OB맥주)에 입사해 28년 두산 계열사를 돌아다녔다. 그는 2001년 두산중공업 기획조정실장을 맡은 이후 두산중공업에 적을 두고 있다.

두산 4세 경영 승계는 3세 형제들 장자들이 돌아가면서 맡게 될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이로 인해 박지원 부회장은 그룹 회장에 오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부회장은 ㈜두산 지분 4.19%를 갖고 있다.

박석원(45) 두산엔진 부사장은 두산가 3세 중 삼남인 박용성 전 중앙대학교 이사장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두산엔진에서 미래성장부문장을 맡아 신산업을 발굴하고 있다. 박석원 부사장의 형인 박진원(49) 전 ㈜두산 사장은 경영 일선에서 밀려났다.

박진원 전 사장과 박석원 부사장은 각각 ㈜두산 지분 3.57%와 2.92%를 갖고 있다. 박용성 전 이사장이 중앙대 비리 탓에 불명예 퇴진하는 바람에 두 형제는 승계구도에서 불리해졌다고 평가받는다.

박 전 이사장 바로 밑 동생인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 슬하 세 아들도 두산에 적을 두고 있다. 장남 박태원(47) 두산건설 사장은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맡고 있다. 박태원 사장은 1999년 두산 테크팩BG 기획팀을 시작으로 두산에 합류했다. 그 뒤 계열사 네오플럭스캐피탈에서 투자 업무를 담당하다 2006년 두산산업개발 상무로 자리를 옮긴 뒤 10년 넘게 두산건설에서 근무 중이다. 박 이사장의 2남과 3남은 박형원(46)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과 박인원(43) 두산중공업 전무이다. 이들 형제들은 나란히 ㈜두산 지분 2.64%, 1.95%, 1.95%을 보유하고 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의 장남은 광고업계에서 유명한 박서원(37) ㈜두산 전무다. 박 전무는 계열 광고회사 오리콤 부사장도 겸직하고 있다. 박 전무는 두산의 면세점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두산 총수일가라고 알려지기 전에 광고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박 전무는 콘돔 사업을 벌이는 등 파격 행보로 이목을 끌었다. 그는 ㈜두산 지분 1.92%를 보유하고 있다. 박서원 전무의 동생은 박재원(31) 두산인프라코어 부장이다. 박용만 회장이 그룹 회장에서 물러난 뒤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직에 전념하기로 함에 따라 박재원 부장은 아버지 밑에서 일하게 됐다.

두산가 4세 9명은 계열사 곳곳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 대다수는 계열사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를 것이다. 전 세대처럼 장자들은 돌아가며 그룹 회장직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이 언제까지 족벌 경영지배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갈수록 총수 일가가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결국 계열사 핵심 보직을 놓고 사촌간 갈등이나 알력이 생길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3세 중 둘째인 고 박용오 전 성지건설 회장은 형제간 상속을 거부하다가 집안에서 파문 당한 뒤 쓸쓸하게 최후를 맞이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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