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 정권의 성공 열쇠는 ‘경제’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3.17 19:02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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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수치式’ 정치 시동 걸었다 측근 대통령 뒤에서 ‘수렴청정’

2000년대 초반 미얀마는 외교적·경제적으로 고립돼 있었다. 미얀마 경제는 장기 침체돼 있었으며 개혁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날 때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군 수구파에 막혔다. 그리고 2015년 11월8일. 미얀마에서 총선이 치러졌다. 결과는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전국민주동맹(NLD)의 압승. 지난 1962년부터 50여 년간 이어져온 군부정치가 드디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외교장관 지낸 후 개헌 통해 대통령 취임


그러나 많은 미얀마 국민의 바람처럼 수치 여사가 대통령이 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미얀마 헌법에 ‘직계가족 중 외국인이 있는 경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두 자녀가 영국 국적인 수치 여사는 헌법 개정 없이는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가 없었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미얀마 총선을 앞둔 2015년 11월5일 양곤 자택에서 기자회견하고 있다. 이 선거로 수치 여사가 이끄는 NLD가 승리를 거뒀다. ⓒ AP 연합

NLD가 당초 3월17일로 예정됐던 대통령 후보 지명을 10일로 일주일 앞당겨 실시한 것은 조기에 새 정권을 출범시켜 연내 수치 여사 대통령 임명 실현을 위한 헌법 개정을 서두르기 위함으로 보인다. 총선 이후 NLD는 수치 여사를 대통령으로 취임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왔다. 3월2일 일본 산케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지난 달 수치 측은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국방총사령관과 회담을 가졌다. 작년 가을 총선 후 세번째 만남이었다.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은 군부가 가진 권한 대부분을 쥐고 있는 인물.

 

하지만 헌법 개정을 둘러싸고 벌인 군과의 협의가 실패로 돌아갔다. NLD의 법률 고문 코니는 마이니치신문에  “수치여사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 보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2안으로 내놓은 것이 수치 여사의 측근을 대통령으로 올리고 ‘수렴청정’하는 방안이다. 수치 여사는 11월 총선 이후 “대통령을 뛰어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이 같은 발언은 아웅산 수치 대통령을 염원하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외부로부터 “독재 정권을 비판해왔는데, 스스로 독재자가 된 것 같다”는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48년 독립 이후 수차례 민주화 시도에 실패한 쓰라린 역사를 딛고 시작된 수치의 미얀마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일단 수치 여사의 다음 행보에 대한 추측들 가운데 ‘외교장관설’이 가장 힘을 받고 있다. 미얀마타임스는 최근 NLD 고위 당직자의 말을 인용해 수치 여사가 외교부 장관직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수치 여사는 외교부 장관 등 각료 11명의 국가안전보장회의 구성원으로 들어간 후 군부와 개헌 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군부와 합의해 대리 대통령을 중도에 사퇴시키고 의회 지명, 의원 간선제로 대통령에 오른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안도 미래가 그리 밝지는 않을 전망이다. 헌법에 따라 상·하원의 25%를 장악한 군부가 ‘수치 대통령’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압승한 아웅산 수치 여사가 군부 출신 테인 세인 대통령과 만나 평화적인 정권 이양에 합의했다. ⓒ AP 연합

 


정국 불안 가능성도 제기

 

헌법 개정 문제 외에도 수치의 수렴청정 정부가 당면한 과제는 산적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경제다. 국내외 정세 분석가들은 미얀마의 군사정권이 지난 총선에서 패한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정책의 실패를 꼽는다. 경제를 순탄히 궤도에 올려놓지 못한다면 다음 선거에서 NLD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다행히 직전의 테인 세인 대통령 정권이 경제 발전의 궤도를 깔아줬고, 지금까지 NLD가 보여준 경제정책은 이를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수민족과 대(對)중국 관계도 관건이다. 전 중국 주재 특명전권대사였던 미야모토 유우 미야모토아시아연구소 대표는 올해 초 국제정보 사이트인 포어사이트(Foresight)에 기고한 글에서 “소수민족 문제는 중국과의 외교 관계와 직결된 중요한 문제”라며 “미얀마 군과 소수민족 사이에 우호적이었던 관계가 수치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군부의 반대로 대통령의 꿈을 잠시 접은 미얀마의 ‘민주화 영웅’ 아웅산 수치가 측근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면서, 실권이 없는 대통령과 막후의 실력자가 손발을 잘 맞출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미얀마 군부가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움켜쥔 상황에서 대리 대통령과 수치가 엇박자를 낸다면, 4월에 출범하는 미얀마의 문민정부에 다시 큰 시련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얀마의 정국 불안 가능성도 제기된다. 군부가 여전히 의회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방부·내무부·국경경비대 등 주요 통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NLD 정부가 군 예산을 포함해 기존의 정책에서 급선회한다면 군이 반발할 수 있다는 예상이다. 군의 반발이 미얀마의 민주화 과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극단적 전망도 나온다. 영국의 일간지인 ‘가디언’은 “새 대통령이 꼭두각시 노릇을 할 경우 군부가 다시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차기 정부를 이끌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틴 쩌. ⓒ AP 연합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미얀마 여당 전국민주동맹(NLD)은 3월10일(현지 시각) 대통령 후보로 틴 쩌(Htin Kyaw·69)를 지명했다. 지난해 11월 미얀마 총선에서 NLD는 상·하원 의석 과반(59%)을 차지했기 때문에 틴 쩌가 차기 대통령으로 사실상 낙점됐다.

 

틴 쩌는 수치 여사의 운전기사 겸 비서를 지낸 심복이다. 그는 수치 여사보다 한 살 아래로,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영국 옥스퍼드 대학 동문이기도 하다. 군정하에서 공무원으로 외교부 등에서 근무했다. 최근에는 수치 여사가 2012년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설립한 자선재단인 ‘도킨찌 재단(the Daw Khin Kyi Foundation)’의 간부로 활동해왔다.

 

틴 쩌는 대선 후보 지명 전까지 국민들이 잘 몰랐을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인물로 알려졌다. 온건한 성격으로 당 안팎에서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치와 NLD는 대통령 후보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틴 쩌의 집안은 미얀마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수치 여사와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틴 쩌의 아버지 민 투운(Min Thu Wun)은 미얀마의 유명 작가이자 ‘국민 시인’으로, 1990년 총선에서 NLD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으나 군부가 총선을 무효화하는 바람에 실제 의정활동을 하진 못했다. 틴 쩌의 부인 수수 르윈(Su Su Lwin)은 NLD 의원으로, 현재 하원 외교위원장이다. 장인은 수치 여사와 함께 NLD 창당 동지로 주요 당직을 역임했다.

 

미얀마 헌법은 간접선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의회 상원과 하원, 그리고 전체 의석의 25%를 할당받는 군부가 각각 한 명씩 모두 3명의 대통령 후보를 지명한 후 의회가 투표로 당선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최다 득표자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며, 나머지 2명은 득표 순으로 제1부통령과 제2부통령이 된다. 미얀마 상원은 헨리 벤 티유(58)를, 군부는 현재 부통령인 사이 마욱 캄을 각각 내세웠다. 이들은 부통령 자리를 맡게 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1962년 군부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 54년 만에 민주적인 방식으로 치러진다. 틴 쩌는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군부 출신의 테인 세인 현(現)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4월1일부터 미얀마를 이끌 예정으로, 미얀마의 민주화를 성숙시키고 경제개발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NLD 총수를 맡고 있는 수치 여사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어, 차기 대통령은 수치 여사의 대리인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AFP 통신은 “수치 대표의 운전기사 출신이 차를 모는 것 같지만 운전대는 여전히 수치가 잡고 있다”고 전했다. 방콕포스트는 “꼭두각시 대통령이 지명됐다”며 “미얀마 헌법 때문에 수치 대표가 대통령으로 나서지 못했지만 사실상 그가 대통령 위에서 국정을 총괄하는 대리 통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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