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내분, 예견된 비극이었다
  • 박준용·유지만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3.17 19:07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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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vs 천정배·김한길, 야권연대 두고 갈등 격화

 

장면 #1. 지난 2월 중순, 신기남 의원이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을 탈당하자 창당 2주 차를 맞은 국민의당은 고민에 빠졌다. 신 의원은 아들이 졸업시험에 떨어지자 로스쿨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컷오프 위기에 놓여 있었다. 신 의원은 더민주의 징계에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상황. 평소 ‘새 정치 구현’을 강조해온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신 의원의 합류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날 당내에서는 “보조금이 왔다 갔다 하는데 안 대표가 너무한다”면서 “신 의원이 법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것도 아니지 않으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교섭단체 구성 정족수(20석)에 단 3석이 부족했던 당시 현역 의원 하나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안 대표가 원칙만 고수한다는 불만이었다.

 

장면 #2. 이른바 ‘김한길계’로 분류되는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 1월22일 서울 마포구 당사에서 열린 기조회의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 의원은 당시 국민의당 입당이 점쳐졌던 이진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에게 “한상진 꺾고 안철수계(?) 조용히 있으라 하고 다시 한 번 심기일전. 소통공감위장 받고 일로 정리 쫘악 해주고, 비례 받고 소공이라는 이름으로 젊은이들 쫙쫙 영입하고”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그런데 문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 논란이 더욱 커졌다. 이 고문의 문자를 받은 김 의원이 “답 나왔네…그길로 쭉”이라고 답장을 보내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된 것이다. 겉으로는 안철수 상임공동대표 측과 한배를 탄 것처럼 보였던 김한길계가 안철수 진영을 의도적으로 흔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내 국민의당 일각에서는 불편한 기운이 감돌았다.

 

3월7일 국민의당 김한길 상임공동선대위원장(왼쪽)은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와 야권통합과 관련한 의견차로 공개석상에서 정면충돌했다. ⓒ 연합뉴스

 


김한길 선대위원장 사퇴로 당 와해 조짐

 

앞서 소개한 과거의 두 장면은 국민의당의 현재를 설명할 수 있는 복선이다. 설립 초기에 국민의당은 미세한 균열을 잠시 보여줬다. 하지만 이는 크게 번지지 않은 채 사그라들었다. 논란의 당사자들이 “당을 위해 헌신하겠다”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의 순항은 오래가지 않았다. 2월2일 창당한 지 한 달 남짓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안철수 대표와 야권연대와 관련해 이견을 보여왔던 김한길 의원이 3월11일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안 대표와 함께 국민의당의 ‘공동 창업주’로 각인됐던 김 의원의 선대위원장직 사퇴는 당 와해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시 복기(復棋)를 해보자. 우선 국민의당 와해의 방아쇠는 당 바깥에서 당겼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입에서부터 국민의당 내부의 갈등이 시작됐다. 김 대표는 3월2일 야권통합을 공식 제안했다. 다음 날인 3일에도 그는 “연대는 후보 간 필요성에 따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바빠졌다. 김한길 당시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천정배 공동대표는 김 대표의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3월4일 의원총회와 최고위원 연석회의를 열어 김 대표의 제안을 ‘연대’가 아닌 ‘통합’으로 한정해 거부키로 했다. 하지만 어정쩡한 봉합이었다. 3월7일 공개석상인 당 선대위에서 안 대표가 통합론을 ‘익숙한 실패의 길’로 규정하자 천 대표와 김 의원이 반박했다. 4일 후인 3월11일 갈등은 폭발했다. 김 의원은 상임공동선대위원장직을 사퇴했고, 천 대표는 “야권연대에 관해 안 대표와 의견 조율이 될 때까지 당분간 쉬겠다”면서 탈당 가능성을 시사하는 ‘최후통첩’을 했다. 둘은 최고위원회 회의장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안 대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적당한 타협은 죽는 길”이라며 입을 닫았다.

 

정치권에서는 나날이 깊어지는 국민의당의 내홍을 두고 예견된 수순이라는 분석이 많다. 앞서 국민의당 창당 과정과 주요 사안을 두고 갈등하는 과정에서 안 대표의 측근 그룹이 주장하는 ‘연대 원칙론’과 반대 그룹의 ‘연대 현실론’이 지속적으로 충돌해왔기 때문이다. 더민주의 통합론 제의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 갈등의 근원은 항상 내재돼 있었다는 의미다.

 

‘원칙론’을 주장하는 측은 안 대표 직계 인사이거나 안 대표 주도로 영입한 전문가 그룹이다. 박선숙 사무총장과 김성식 최고위원 등이 해당한다. 통합과 연대에 대해 이들은 강경하게 거부한다. 안 대표 측 인사인 조정관 전남대 교수(국민의당 광주시당위원장)는 “김한길 의원의 통합 지지 발언은 지금껏 야당이 무능을 반성하지 않고 선거철만 되면 ‘반여(反與) 여론층 집결’로 반사이익을 가져온 논리와 같다”면서 야권 통합에 반대했다. 김성식 최고위원도 “통합은 이미 불가하다는 게 드러났다”고 했다.

 

계파별로 ‘동상이몽’, 현실론 vs 원칙론


안 대표 측은 ‘원칙론’이 국민의당 창당 정신이기에 고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안 대표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한 측근 인사는 “안 대표 지지자 입장에서 보자면 국민의당 창당 초기 입당 인사에 대한 원칙을 말했을 때와 지금 당 안에 들어온 인사들을 비교해보면 아쉬운 점도 있을 것”이라면서 “무조건 원칙론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당 지지층의 인식 등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하고 있다. 지금 야권연대를 말하면 안 그래도 아쉬워했던 지지자가 어떤 심정이겠는가”라고 말했다.

 

안 대표의 또 다른 측근은 “계파는 다른 당에도 다 있고, 모두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는 없다. 안 대표가 당의 중심이니 원칙론으로 나가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면서 “사실 안 대표도 부분 연대까지 불가로 보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통합이나 연대를 말하기에 이르다고 판단한 전략적인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세력에서는 창당 때부터 ‘현실론’에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주로 천정배계, 김한길계·정동영계·박지원계·박주선계·구동교동계 등 거물 정치인이나 그룹과 연결 고리가 있어 국민의당에 오게 된 인사들이다. 이들은 현실 정치 경험을 토대로 당 차원의 ‘전략적 접근’과 야권연대를 지지하고 있다.

 

특히 천 대표와 김 의원뿐 아니라 박지원 의원, 정동영 전 의원까지도 기본적으로 연대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박 의원은 국민의당 입당 전에 “선거구가 획정되고 당 지지율 여론조사가 나오는 3월에는 (연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고, 입당 후에도 “패권주의 청산이 된다면 연대를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현실론자’는 야당 분열로 새누리당에 개헌 저지선을 내주면 책임이 국민의당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시한다.

 

‘현실론’을 주장하는 인사들이 창당 전부터 야권연대를 염두에 뒀다는 얘기도 있다. 더민주의 비주류 측 한 인사의 말이다.  “더민주 탈당 사태 때 이른바 김한길계 인사들의 움직임을 잘 생각해봐라. 김 의원의 탈당에 맞춰 모두 탈당할 것처럼 비쳤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지 않나. 김 의원과 김한길계가 결국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가면 야권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야권연대 논의 시 ‘링커’ 역할을 할 인사를 더민주에 잔류시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당 내홍은 단지 연대에 대한 부분 때문만은 아니라는 시선도 있다. 특히 공천 문제가 안 대표와 천 대표, 김 위원장의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있다. 천 대표와 김 위원장 쪽 인사에게 공천·비례대표에서 불리한 처사가 이어졌고, 연대를 두고 벌인 갈등의 피로감은 이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내분 배경은 ‘불공정 공천심사’ 몽니 부리기?

특히 천 대표 측은 당 공천관리위원들이 안 대표 측 인사에게 ‘점수 몰아주기’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천정배계로 분류되는 홍인화 국민의당 예비후보(광주 북구 갑)는 “공천심사 면접을 볼 때 안 대표 쪽 예비후보와는 질문부터가 달랐다. 국민회의(천정배계) 인사에게는 깎아내리는 질문을 했다”면서 “안 대표 측 인사를 위해 점수도 조작됐다. 그러면서 후보에 대한 평가 내용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안 대표 본인만 깨끗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아랫사람도 관리해야 할 것 아닌가. ‘친노 패권 청산’을 운운하면서 당 사람들이 패권적 행동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라고 말했다.

 

김영집 국민의당 광주시당위원장도 공천 결과에 불만을 품고 탈당을 하며 “국민회의 측 주요 인물에 표적심사를 한 게 드러나고 있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서울 지역에 안 대표 측 인사가 여러 명 배치된 것도 김한길 의원 측 사람들을 표적 제거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천 대표도 불공정 공천심사에 대해 안 대표에게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선 가능성이 있는 광주 공천에서 안철수계 인사들에게 밀린 데 대해 천 대표 측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비례대표 문제도 국민의당의 내홍을 심화시킨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대표의 측근은 최소 7명 이상이 비례대표를 희망하고 있다. 자천타천으로 알려진 인사만 이성출 예비역 육군 대장, 박선숙 사무총장, 박인복 비서실장, 이상돈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이준서 에코준컴퍼니 대표(현 청년 최고위원), 이태규 전략홍보본부장, 왕주현 사무부총장 등이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당선 가능성을 적게는 3~4석, 많게는 9석으로 봤을 때 안 대표 측 인사 다수가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김한길계·천정배계·동교동계 등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창당 당시 일각에서 제기됐던 ‘안철수 사당(私黨)’이란 지적이 맞아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이외에 비용 문제를 갈등 요소 중 하나로 보는 시선도 있다. 안 대표 측근들은 안 대표가 창당 자금을 대고 있는데, 뒤늦게 입당한 계파에서 자금 조달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내뱉고 있다. 안 대표 측의 한 인사는 “안 대표가 모든 비용을 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재정적으로 평탄하지는 않은 상황”이라면서 “총선 국면에 진입했는데도 뒤늦게 입당한 분들이 재정적인 지원을 하지 않아서 당 운영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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