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맛바람인가 대선 포석인가”
  • 최정민│프랑스 통신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17 20:08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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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한국계 장관 경질 두고 ‘뒷말’ 무성

임기를 1년 남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현 내각의 부분 개각을 단행했다. 마뉘엘 발스 총리가 유임돼 ‘발스 3기 내각’이라고 불리게 된 이번 인사에선 10명의 장관이 교체됐다.

 

이번 개각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이슈는 한국계 입양아 출신의 장관이었던 플뢰르 펠르랭 문화부 장관의 경질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2012년 5월, 중소기업디지털경제장관으로 입각할 당시부터 언론의 이목을 끌었던 플뢰르 펠르랭은 이번 퇴진에서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 이유는 개각 1시간 전까지 당사자가 알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문화부 장관(오른쪽)이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왼쪽)과 2015년 11월4일 이화여자대학교를 방문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올랑드 대통령의 연인인 프랑스 영화배우 줄리 가이예. ⓒ 연합뉴스

 


신임 장관, 올랑드 애인의 친구로 알려져 논란

 

2월11일 오후 3시, 플뢰르 펠르랭 장관은 문화부 앞을 지키던 프랑스 민영 카날플뤼스 기자의 돌발 질문에 “조금 전까지 법안을 살펴보고 있었다”고 답했다. 당시는 개각 발표 1시간30분 전이었다. 자신이 퇴출 대상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우회적으로 확인됐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갑작스러운 경질과 함께 새로 내정된 오드레 아줄레 신임 장관이 대통령의 연인인 줄리 가이예의 친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개각 발표 이틀 후인 2월13일에 마련된 펠르랭 장관의 이임식은 숙연했다. “입양아 출신의 버려진 아이가 장관이 될 수 있었던 이 나라에 감사한다”는 소감을 밝힌 펠르랭은 발스 총리를 콕 집어 감사를 표시했지만 2분33초 동안의 이임사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현재 아랍문화원 원장이자 여당인 사회당의 중진으로 문화부 장관을 지낸 바 있는 자크 랑은 프랑스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적인 배려가 부족한 조치였다”며 펠르랭 장관의 퇴임 과정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프랑스 정계에서 대표적인 친한파 인사이기도 하다.

 

퇴임 장관이 된 플뢰르 펠르랭의 반격은 열흘이 채 지나지도 않아 나타났다. 2월23일 프랑스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투아와의 인터뷰를 통해 장관 재임 기간에 대한 소회를 피력한 것이다. “4년여의 공직 생활이 4분 만에 정리됐다”고 말문을 연 그녀는 자신이 프랑스, 그것도 파리의 주류 예술가들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상위 1%를 위한 장관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플뢰르 펠르랭은 문화부 장관으로 재임 중이던 2014년 방송에 출연해 노벨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에 “장관직이 너무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당시 여론과 언론은 이 발언을 두고 문화부 장관으로서의 자질을 문제 삼으며 집중 포화를 퍼부었다. 이에 대해 펠르랭은 “나는 조이스를 영어로 읽었고, 무질을 독일어로 완독했다”며 “읽지 않은 것을 읽지 않았다고 하는 ‘솔직함’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녀는 “나는 충분히 아첨하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를 두고 프랑스 시사 평론가인 아리엘 위즈만은 “모든 문화부 장관이 앙드레 말로나 자크 랑 같을 순 없다”고 전제한 후 “그러나 장관직을 떠나고 열흘도 되지 않아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이 명예로운 길은 아닌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여론은 펠르랭에 대한 동정론이 우세한 것처럼 보인다. 신임 장관에 대한 프랑스 대중의 반응이 냉랭한 것이다. 지난 2월13일 저녁, 첫 공식 행사로 음악상 시상식에 참석한 오드레 아줄레 장관은 소개와 함께 관객의 야유를 받아야 했다.

 

갑작스러운 문화부 장관 교체 이유가 대통령의 연인 줄리 가이예와 신임 장관의 친분 때문이라기보다는 내년 대선을 위한 개각이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개각에서 두드러진 점은 문화부 장관 교체보다는 오히려 좌파 녹색당 인사들의 내각 진입이었다. 또한 문화부 장관 교체 역시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점이다. 사르코지 행정부에서 문화부 장관을 지낸 조르주 마크 베나무는 “대선에 가까워질수록 문화부 장관은 활용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드레 아줄레 신임 프랑스 문화부 장관 ⓒ AP 연합

 


“내년 대선 위한 개각” 분석도 나와

 

이를 입증하듯 오드레 아줄레 신임 문화부 장관은 2월19일, 입각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대통령의 남미 순방에 동행했다. 이동 거리만 4만6000㎞에 이르는 이번 순방에 동행한 것을 두고, 프랑스 텔레비전의 간판 앵커였던 파트릭 푸아브르 다보르는 “산적한 사안을 제쳐두고 순방을 따라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비판했다. 문화부 장관으로서의 업무보다 세간의 추측대로 대통령 보좌역으로서의 행보를 먼저 시작한 것이다.

 

이번 개각에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또 다른 한국계 입양아 출신의 정치인이 새로 입각한 것이다. 그는 바로 녹색당의 상원의원인 장 뱅상 플라세 신임 국가개혁장관이다. 그는 에손 지역의 상원의원으로 좌파 녹색당 계열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프랑스 녹색당의 간판스타이자 전임 환경부 장관이었던 세실 뒤플로와 연인 관계이기도 했다. 이미 지난 세 번의 개각에서 계속 언급됐으나 꿈을 이루지 못했었다. 이번 입각을 두고 프랑스 일간 ‘르 몽드’는 ‘플라세, 드디어 장관이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장 뱅상 플라세 신임 프랑스 국가개혁 장관 ⓒ AP 연합

장 뱅상 플라세 신임 장관이 그렇게 쉬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프랑스 언론과 정가의 중론이다. 이미 세 차례나 입각에 실패했지만,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후엔 자신이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상원의 높은 세비 때문이라는 추문에 가까운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상원 지역구에 남아 녹색당 내부에서 자신의 진지를 구축했는데, 이는 2019년 유럽의회 선거를 위한 포석이었다. 파리 지역의 한 의원은 플라세 신임 장관을 두고 “플라세의 전략은 한 땀 한 땀 전략이다”며 “이틀에 한 번꼴로 사건을 만드는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의원 한두 명을 포섭하는 것이 아니라 녹색당 51명의 의원들 중 16명을 끌어모았다. “나를 따르면 임기를 보장한다”고 진두지휘해 자신의 전선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텃세로 유명한 파리 정계의 호사가들을 견디지 못했다는 플뢰르 펠르랭 문화부 장관. 그리고 이제 새로 입각한 플라세 신임 장관이 눈에 보이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텃세를 어떻게 해쳐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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