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꿈’ 위해 꾹 참으며 입 닫았나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3.21 09:29
  • 호수 1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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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침묵 정치’ 노림수
3월16일 국회 새누리당 대표회의실에서 유승민 의원 공천과 관련한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가 정회된 가운데 김무성 대표가 취재진의 질문을 받으며 회의실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그동안 침묵을 지켰는데 지금 이야기하면 나는 망한다.”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의 막말 녹취록 파문이 불거진 다음 날인 3월11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정치권 경력으로 보나, 연배를 따져도 자신보다 한참 어린 정치권 후배에게 입에 담기도 민망한 막말을 들었음에도 김 대표는 입을 닫았다. 김 대표는 1951년생이며 윤 의원은 1962년생이다. 윤 의원이 정치권에 공식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특별보좌역을 맡으면서다. 당시 김 대표는 내무부 차관을 거쳐 3선에 성공한 중진 의원이었다. 그런 자신을 향해 욕설을 퍼부은 윤 의원의 육성(肉聲)을 직접 들었을 때 김 대표의 기분은 어땠을까.

김 대표는 말하기를 주저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솔직하며 저돌적이다. 2010년 세종시 수정안을 두고 박근혜 당시 의원과 대립각을 세워 사이가 멀어졌을 때 사석에서 박 대통령을 가리켜 ‘가시나’라고 지칭해 당내에서 논란이 일 정도로 그의 말에는 거침이 없다. 박근혜 정권 초반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권력 비대화를 둘러싼 논란이 있을 때도 김 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해 “김 실장은 존경하는 분이지만 다소 불만이 있는 부분이 있다. 당과 청와대를 너무 수직적으로 만든 것은 잘못”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 대표가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날리는 멘트는 더 직설적이다. 그는 비록 내뱉은 말이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돌아온다 하더라도 일단 하고 싶은 말은 내뱉는 스타일이다. 김 대표를 일컬어 ‘무대’(무성 대장)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러한 그의 화법 때문이다. 이런 김 대표의 스타일로 볼 때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침묵은 의외였다. 비록 3월14일과 15일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가 결정한 공천안(이재오·진영·주호영 컷오프(공천 배제))를 두고 반발하기는 했지만, 김무성 대표의 평소 스타일로 봤을 때 다소 소극적 발언이었다. 또한 그가 당 대표가 된 이후 줄곧 외쳤던 ‘상향식 공천’과 관련해서도 정작 공천을 앞두고는 제대로 소신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물러서야 했다.

“김무성 머릿속에는 항상 대권 그림”

다시 김 대표의 발언으로 돌아가보자. “그동안 침묵을 지켰는데 지금 이야기하면 나는 망한다”는 발언을 뒤집어보면 김 대표의 침묵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근본적 질문. ‘김 대표는 왜 입을 닫았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면 총선 이후 새누리당 내부의 권력투쟁 및 2017년 대선을 둘러싼 여당의 역학관계를 예측해볼 수 있다. 정치권 인사들은 김 대표의 최근 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김 대표가 대권을 목표로 뛰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 대표는 현재까지 새누리당 대선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가 3월17일 발표한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를 보면, 김 대표는 19.3%의 지지를 얻어 13개월 연속 선두 자리를 지켰다. 유승민 의원이 18.7%까지 지지도가 상승해 그를 턱밑까지 추격했지만 여권 대선 주자로서의 김 대표 지지율은 확고한 편이다. 새누리당 사정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외부에는 김 대표가 2017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최종 대선 주자가 될 것인지에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지만, 김 대표의 머릿속에는 현재 지지율로 봤을 때 ‘한번 해볼 만한 싸움’ 또는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라는 그림이 항상 그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가 큰 꿈을 꾸고 있다면 이번 총선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디딤돌이 돼야 함에도 김 대표는 주도권을 잡지 못한 채 사실상 ‘묵언 수행’ 수준으로 입을 닫고 있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김 대표가 공천 과정에서 이렇다 할 의사를 표명하지 못하고 사실상 청와대와 친박계에 의해 ‘원사이드 게임’에 내몰린 이유를 우선적으로 개인적인 약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청와대가 그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고, 이것이 외부에 공개될 경우 그의 대권 도전꿈은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대표는 정치인으로서 약점이 많다. 부친을 둘러싼 친일 논란을 비롯해, 딸의 수원대 교수 부정 채용 의혹, 사위 이상균씨의 마약 복용 및 수사 과정에서의 외압 작용 의혹 등 김 대표를 곤혹스럽게 만들 사안은 널려 있다. 특히 지난해 9월 한 언론 보도를 통해 사위 이상균씨의 마약 복용 사실이 흘러나왔을 때 김 대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미 법원 선고까지 났던 사건이 언론 보도 1개월 전부터 사설 정보지를 통해 흘러나왔고, 결국 보도까지 된 것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손’을 의심했다고 한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현재까지 공개된 것 이외에도 더 많은 약점이 김 대표에게 있다고 말한다. 가족 관계 및 후원자 등과 관련한 의혹들이 그것이다.

 

부산에서 올라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지자 100여 명이 3월10일 새누리당사 앞에서 ‘공천 배제 막말 파문’을 일으킨 윤상현 의원의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김무성, 박근혜 과거 행보 벤치마킹?

김 대표가 약점이 많아서 청와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해석은 일부는 맞지만, 이것만으로 그의 침묵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대권 주자로서의 약점을 따지면 박근혜 대통령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오’가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부친의 친일 논란, 정수장학회 강제 찬탈, 인혁당 사건, 유신독재 등 오히려 박 대통령의 약점은 김 대표의 것을 능가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후보로 최종 결정되고 난 후 이런 논란을 하나하나 넘어섰다. 어떤 사안에는 침묵했고, 어떤 사안에는 고개를 숙였다. 인혁당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 대표적이다. 비록 그 사과에 진심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일단 낮은 자세를 취했다.

김 대표도 박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벤치마킹하듯 자신의 약점을 하나둘 지워가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 수원대 교수로 임용돼 논란을 일으켰던 딸 현경씨는 2015년 12월23일 교수직을 사퇴했다. 뿐만 아니라 침묵하던 부친의 친일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했다. 2015년 10월29일엔 선친의 흉상이 세워져 있는 경북 포항 영흥초등학교를 찾아 선친의 친일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김 대표는 이날 선친의 흉상 앞에서 묵념을 마친 후 교장실에서 영흥초·포항시 관계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요새 좌파들에 의해 아버지가 친일파로 매도당하는데 내가 정치 안 했으면 이런 일 없는데, (아버지가) 그런 매도를 당하는 게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한 측근 의원 보좌관 A씨는 김 대표의 약점에 대해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김 대표 자신의 말은 아니지만 김 대표 진영에서는 각종 논란을 뛰어넘을 자신감이 엿보였다.

오히려 김 대표의 침묵은 뾰족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훗날을 도모하기 위한 ‘고육지책’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김 대표가 친박계 및 공관위에 대해 자신의 불만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고, 이로 인해 갈등이 심화돼 선거에서 패배하면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친박계 정치권 인사는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청와대와 김무성계 공천 ‘빅딜설’

“청와대와 친박계 측은 당장 김무성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7월에 있을 전당대회 전에 쫓겨나듯 당 대표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다. 김 대표는 보수층 전체에서 선거 패배의 주범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사실상 김 대표가 보수층을 대표하는 대선 주자로서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대표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김 대표가 이런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선 일단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넘겨주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이럴 경우 당내에는 “비록 총선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자신의 희생으로 인해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동정론도 얻을 수 있다. 김 대표가 노리는 부분도 이것으로 보인다. 최악보다는 세력 도모를 위한 일보 후퇴인 셈이다. 실제로 언론이나 당내에서 김 대표에 대한 동정론이 조금씩 힘을 얻고 있다. 원내대표가 당 대표의 허락 없이 외부 인사에게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제안한다든가, 최고위원들이 당 대표에게 무조건적 사과를 요구하는 작금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

다만 김 대표가 계획하는 훗날을 위해선 당내 기반이 필요하다. 김 대표가 청와대와의 거래를 통해 자기와 가까운 의원들을 이번 공천에서 모두 살렸다는 ‘빅딜설’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김 대표는 공천이 시작되기 전 측근 의원들의 지역구 행사를 직접 찾는 등 가까운 인사들을 후방 지원하는 일정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당 대표가 측근 의원들의 지역구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반발도 있었다.

김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은 그가 매번 재기에 성공했던 과거를 들어 그의 일보후퇴를 설명한다. 김무성계의 한 의원은 “2008년 총선에서는 친이계에 밀려 낙천했으나 친박 무소속 연대를 만들어 국회의원에 당선돼 당에 복귀했고, 2012년 총선에서도 낙천했으나 2013년 4월 부산 영도 재·보궐 선거를 통해 5선 고지를 밟았다”며 “이번에도 일방적으로 내몰리는 것 같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당 대표로서 당이 승리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참는 것”이라며 “그는 선이 굵다. 단순한 정치인도 아니기 때문에 하나를 내주면 반드시 하나를 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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