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자 파벌 전쟁에 벌벌 떠는 일본 열도
  • 유재순│일본 제이피뉴스 대표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24 21:15
  • 호수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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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이권 둘러싸고 야마구치구미와 고베야마구치구미 전면전

일촉즉발이다. 일본 야쿠자 최대 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와 신생 조직 고베야마구치구미(神戶山口組) 간의 파벌 싸움이 점점 격화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본 열도의 긴장감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일본 방송 또한 연일 생중계하다시피 이를 보도하고 있다.

 

지난 3월7일, 일본 경찰청은 전국 도도부현(都道府縣)에 폭력단 집중단속본부를 일제히 설치했다. 8일에는 전국의 폭력단 대책 담당 과장 90여 명을 소집해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의 주요 안건은 시민들의 안전 문제였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번화가나 학교 통학로 등이 폭력단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도록 경계근무를 철저히 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경찰본부 수사관들이 3월3일 폭력조직 야마구치구미 계열 회장의 사무소를 압수수색하러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경찰청은 일이 이렇게 확대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폭력단, 즉 야쿠자 내부의 분열 파동에 지나지 않겠거니 하고 생각하며 ‘야쿠자 내부’ 문제로 치부했다. 이 같은 판단에는 지난 20여 년간의 야쿠자 행적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개개인에 대한 하부계층의 보복 살인 사건은 간간이 있었지만 전국적인 대형 사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3월3일, 가네타카 마사히토(金高雅仁) 경찰청 장관은 정례 브리핑에서 자신만만하게 “아직 조직 대 조직의 항쟁이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 폭력단(야쿠자)의 내부 분열일 뿐이지 항쟁까지는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네타카 장관의 이 같은 말은 다음 날 바로 허언이 돼버렸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국가공안위원장이 “작금의 폭력단 대립은 항쟁 사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 또한 지난해부터 야쿠자들의 파벌 싸움이 여느 대립 양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재빨리 인식해 각 신문사마다 취재 정보망을 풀가동하며 집중 마크에 들어간 지 이미 오래된 상태였다. 경찰청만이 안일하게 판단한 것이다.

 

日 경찰, 폭력단 집중단속본부 설치 ‘뒷북’


결국 3월7일이 돼서야 경찰청은 전국 도도부현에 폭력단 집중단속본부를 설치하고, 담당 과장들을 불러들여 대책회의를 여는 등 ‘뒷북’을 쳤다. 그나마 서두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야마구치구미와 이곳에서 이탈해 고베야마구치구미를 조직한 조직원들 간의 총격, 트럭 돌진, 집단폭행, 화염병 투척 등 크고 작은 충돌이 이미 57건이나 발생했기 때문이다.

 

급기야는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까지 나서서 야쿠자와의 전면전을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국민이 안전하고 마음 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폭력단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폭력단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 경찰이 확실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일본 정부와 경찰청이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오는 5월26~27일 이틀 동안 미에(三重)현에서 ‘G7 세계정상회담’이 열리기 때문이다. 만약 이 기간 중에 야쿠자들의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일본 정부와 경찰청은 필사적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다른 파의 조장들이 모여 화해를 위한 중재를 시도했지만 이 또한 실패로 돌아갔다. 일부에서는 이 기간 동안 야쿠자들도 일시 휴전할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데 ‘만약’이라는 가정을 믿고 행사를 주최하기에는 너무나 불안한 요소가 많다. 현재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조직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공방전이 바로 그렇다.

 

문제의 발단은 일본의 3대 야쿠자 조직 중 가장 규모가 큰 야마구치구미의 파벌 싸움으로 인한 분열이었다. 일본에는 일본 경찰청이 인정하는 22개의 야쿠자 조직이 있다. 여기서 ‘일본 경찰청이 인정한’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 이유는 1992년에 야쿠자 근절을 위해 만들어진 ‘폭력단 대책법’이 기본적으로 이 22개 조직에게 해당되기 때문이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경찰본부 수사관들이 3월3일 폭력조직 야마구치구미 계열 회장의 사무소를 압수수색하러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야마구치구미, 전체 야쿠자 조직의 40% 차지

 

2008년에는 하급 조직원이 협박으로 갈취를 해도 당사자는 물론 조장(오야붕)에게도 그 책임을 묻는다는 조항이 폭력단 대책법에 추가됐다. 2012년에는 5명 이상의 야쿠자 조직원이 모여 상대 조직의 사무실 근처만 어슬렁거려도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법이 대폭 강화됐다. 일본 경찰청이 폭력단 대책법을 만들게 된 계기는 야쿠자의 1984~89년에 걸친 싸움 때문이었다. 당시 야쿠자들은 일본도·권총·화염병 등 온갖 흉기들을 동원해 조직원 25명이 사망하고 경찰 등 일반 시민 70여 명이 중상을 입는 유혈 패싸움을 벌였다.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폭력단 대책법을 만들었다. 그 결과 22개의 야쿠자 조직이 경찰과 공안 당국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게 됐다. 실제로 이 법이 시행된 후 전국 각 지역의 야쿠자 사무실이 상당수 철거됐고, 조직원들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일정 부분 확실한 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일본 경찰청이 인정한 22개의 야쿠자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야마구치구미·스미요시카이(住吉會)·이나가와카이(稻川會) 등 3대 야쿠자 조직. 이 중 현재 일본 열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는 패싸움의 주체인 야마구치구미는 전체 22개 조직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역사 또한 길다. 1915년 고베 부둣가에서 차별과 폭력을 견디다 못한 30여 명의 항구 노무자가 조직을 결성했다. 이른바 일본 야쿠자의 효시다. 바꿔 말하면 폭력단의 역사가 100년을 넘는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조직 규모나 운영 시스템이 주식회사를 방불케 한다. 일본 전국에 800여 개의 지방 조직이 있는데 이 조직의 조장이 파벌의 좌장이 되는 셈이다. 조직원 수는 공식적으로 1만4100명(일본 경찰청 통계)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2만3000여 명에 달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연 매출 또한 80조~100조 엔(810조~1100조원)에 이르고, 정치권과 스포츠, 연예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인맥도 두텁고 탄탄하다.

 

야마구치구미가 세를 불리며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정치권과의 밀착이다. 1960년대 지식인으로 회자되는 좌익들의 활동 저지와 학생운동을 탄압하는 대가로 정치권으로부터 각종 이권 혜택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연예계 같은 흥행 산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막대한 이익도 챙겨갔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연예인들의 연예 생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파워를 자랑했다. 이렇듯 야마구치구미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일본 현대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그런 만큼 일본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야마구치구미 두목의 독선적 인사권에 불만


야마구치구미 내부 파벌 싸움의 원인은 권력투쟁과 이권이다. 작년 8월, 야마구치구미 6대 조장(최근엔 주식회사처럼 회장이라고 부른다)인 시노다 겐이치(篠田建市)는 야마구치구미 산하 13개 조직 중간 조장들을 조직에서 파문해버렸다.

 

야쿠자 세계에는 조직원이 어떤 잘못을 했을 때 처벌하는 수순, 즉 단계가 있다. 반성-처벌-단지(斷指·반성하는 의미로 스스로 새끼손가락을 자르는 것)까지는 야마구치구미의 조직원 신분이다. 하지만 다음 단계부터는 상황이 다르다. 파문을 당하게 되면 야마구치구미의 조직원 신분이 박탈된다. 다만 최고 조장이 용서할 경우엔 다시 입회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 단계인 절연(絶緣)은 말 그대로 모든 인연을 끊는 것을 말하며 다시 조직에 들어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처단은 곧 죽음을 말한다.

 

이번에 파문을 당한 13개의 산하 조직은 평소 시노다 최고 조장의 독선적인 인사권 행사에 불만을 품어왔다. 2005년 제6대 조장으로 취임한 시노다가 중앙본부 간부를 임명할 때마다 대부분 자기 파벌 조장들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착실하게 회비를 내고 조직활동에도 열성적이었던 산하 조직 조장들이 10년 넘게 중앙에 진출할 수가 없었다. 본디 시노다가 독선적인 것은 지방 조직의 조장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자기 파벌 사람들로 중앙본부 간부 자리를 채워나가자 마침내 참았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명분은 회비였다. 야마구치구미에선 의무적으로 각 지역당 연회비를 중앙에 내야 한다. 조직 규모에 따라서 금액이 약간 달라지긴 하지만 기본 회비는 약 3000만 엔(3억1300여 만원) 정도다. 문제는 일본 경기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20년을 외친 지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1990년대 버블 경제 이후 일본 경제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특히 야쿠자는 더 어려워졌다. 1992년 생긴 폭력단 대책법 때문에 유흥업소나 지역 상가들로부터 정기적으로 받아오던 상납금과 각종 이권 사업도 더 이상 어렵게 됐다. 지방 조직은 더욱 심했다. 한창 잘나가던 때야 회비뿐만 아니라 명절, 생일 축하금 명목으로 1억 엔이 넘는 돈을 중앙에 보냈지만, 불경기가 계속되자 나중에는 빚을 내 회비를 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그들이 중앙으로부터 받는 혜택은 거의 없었다. 중앙의 요직은 모두 시노다파(派) 조장들에게 뺏기고, 100년 넘게 지켜오던 중앙본부도 고베에서 시노다파의 근거지인 나고야(名古屋)로 이전될 상황에 처했다.

 

결국 야마구치구미 산하 2대 파벌이었던 야마켄구미(山健組)의 조장 이노우에 구니오(井上邦雄)가 반기를 들었다. 파문당한 이노우에는 자신을 따르는 13개 조직을 이끌고 새롭게 ‘고베야마구치구미’를 결성했다. 기존의 야마구치구미 앞에 ‘고베’라는 지명을 넣은 것은 야마구치구미의 태동지가 바로 고베였기 때문이다. 즉 고베를 내세움으로써 적자(嫡子)의 정통성을 갖겠다는 의도였다. 고베야마구치구미는 회비도 대폭 내렸다. 본가인 야마구치구미에 비해 10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는 월 10만~30만 엔씩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2015년 8월27일 발족한 고베야마구치구미는 벌써 23개 산하 조직과 8000여 명(경찰 추정 6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전국 네 번째 규모의 야쿠자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러자 기존의 야마구치구미가 거세게 반발했다. 자신들이 파문시킨 조직원들이 야마구치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그것도 모자라 야마구치 이름 앞에 본적지라 할 수 있는 고베까지 붙이자 더는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까지 이들은 총 57차례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3월16일에만 해도 아찔한 사건이 3건이나 있었다. 하나는 고베야마구치구미 조직원이 야마구치구미 회계 사무실에 트럭을 몰고 가 들이받았고, 그 3시간 후에는 반대로 야마구치구미 조직원이 고베야마구치 사무실에 똑같은 방법으로 트럭을 몰고 돌진해 사무실 벽을 박살냈다. 또 같은 날 아침에는 사이타마(埼玉)현의 야마구치구미 간부가 탑승한 차량에 불이 났고, 오후에는 조직 사무실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경찰본부 수사관들이 3월3일 폭력조직 야마구치구미 계열 회장의 사무소를 압수수색하러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일본 야쿠자 중 재일 한국인 많다”

 

그런데 이 두 조직 간의 패싸움에 불행하게도 재일동포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일본 야쿠자 중에 재일 한국인이 많다는 것은 일본 사회에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해방 후 재일동포들은 일본인들로부터 노골적인 차별을 받았다. 그래서 재일동포들은 일본인들이 꺼리는 지저분하고 위험한 고물상이나 청소업, 밀주업, 곱창집 등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재일동포 사회에서 그나마 사회적으로 출세한 분야라면 스포츠계와 연예계였다. 또 동네에서 주먹깨나 쓰고 싸움 잘하는 재일동포들은 야쿠자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양원석이다. 조직원 8명을 이끌고 일본도 하나로 100명과 싸워 피비린내 나는 승리를 거뒀던 일화는 일본 야쿠자의 전설이 됐고, 재일동포만으로 결성된 조직으로부터 공격을 받자 이들을 제압한 후 상대 조직원들의 새끼손가락을 모두 자르게 하고 해산시킨 사건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양원석은 자신의 일본 이름인 야나가와 지로(柳川次郞)에서 야나가와를 그대로 차용, ‘야나가와구미(柳川組)’라는 조직(조직원 2000여 명)을 만들어 수장이 됐다. 2대 조장도 같은 한국인인 강동화다.

 

야나가와구미와 함께 오사카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는 후지카이(富士會, 현 잇신카이·一心會)를 결성한 조장도 바로 재일동포인 한녹춘이다. 한녹춘은 야마구치구미의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그 밖에 22개의 야쿠자 조직 중 중간 오야붕이라고 할 수 있는 각 파벌 조장 중에도 재일동포가 많다. 특히 1980년대부터 일본 야쿠자에 대한 동경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인으로 귀화하면서까지 야쿠자에 입문한 한국인도 꽤 있다.

 

야마구치구미와 고베야마구치구미 간의 극한 대립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유혈 양상을 띠고 있다. 두 조직의 대결은 일본 내 폭력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근현대사와 재일동포 문제 등을 관통하는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결국 이들의 종착점은 어느 쪽이 됐든 살인이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어느 한쪽이 전멸해야만 끝날 것 같은 두 조직 간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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