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 한국은 피해 책임 왜 못 묻나
  •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 승인 2016.03.24 21:18
  • 호수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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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 ‘세계건강관측’ 발표해 미세먼지 위해성 경고

“아무래도 공정 자체가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면 공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진다. 물론 철저히 외부 대기로부터의 미세먼지 유입을 차단하고는 있지만 워낙 민감한 기기다 보니 막을 수 없는 부분이 있다.”(S 업체 디스플레이 공정시설물 관리자)

 

연간 820만명 대기오염 질환으로 사망


“속상하다. 나처럼 심한 천식 환자는 대기 상태에 따라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거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한다. 미세먼지는 더 심해지는데 누구한테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데도 없다.”(만성천식 및 폐렴 환자 이연복씨)

 

미세먼지는 해롭다. 미세먼지는 자연적으로, 혹은 화석연료의 연소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한다. 대기 중 오염물질과 반응해 2차 오염물질을 생성하기 때문에 유해물질로 분류된다.

 

지속적으로 많은 미세먼지에 노출되면 건강한 성인이라도 신체에 유해한 영향을 받게 된다. ⓒ 시사저널 임준선

미세먼지는 폐 질환과 호흡기 질환 유병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자살 등 인간의 정신적 측면에까지 부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정밀·화학 공정상 오작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또한 대기 중 고농도로 집적된 미세먼지는 가시거리 악화로 육·해·공에서 모두 사고의 위험을 높인다. 올해 초 심한 미세먼지로 인해 서해안고속도로에서는 16중 추돌 사고가 나기도 했으며, 김포공항에 이착륙할 예정이던 항공편 중 4편이 짙은 안개에 따른 시정(視程) 악화로 결항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매년 공개하는 ‘세계건강관측’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820만명이 대기오염에 의한 질환으로 사망하며 연간 320만명이 초미세먼지로 인해 사망한다. WHO에 따르면, 환경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5세 미만 어린이는 한 해 590만명에 이른다. 또한 50세에서 75세 사이의 인구 490만명이 환경오염 때문에 사망했다.

 

환경오염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발생시키는 대표적인 행위다. 외부효과는 한 개인의 행동이 제3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이익이나 손해를 가져다주는데도 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도 받지도 않을 때 사용하는 경제학 용어다. 피해를 준 것을 부정적 외부효과(외부불경제), 혜택을 준 것을 긍정적 외부효과(외부경제)라고 한다.

 

환경오염은 원인 제공자가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일어나는 삼림 파괴와 난개발이 지구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파괴하고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를 가속화한다. 일본 동북부에서 발생한 원전 사고가 전 지구적 수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미세먼지가 대기의 흐름에 따라 이동한다는 점이다. 미세먼지가 발생 지역을 넘어 제3국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세먼지의 책임 소재 특정이 어려운 이유다.

 

 


서울 지역 초미세먼지 49% 중국에서 날아와

 

한국에서 관측되는 미세먼지는 주로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물론 앞서 밝혔듯 미세먼지의 정확한 발생지를 특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미세먼지 성분 분석을 통해 어떤 대기물질들로 구성돼 있는지는 파악할 수 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 같은 성분 분석과 각종 위성사진 자료 등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서 측정되는 미세먼지의 30~60%가 중국발이라고 보고 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에 따르면, 2011년 서울 지역의 초미세먼지(PM-2.5) 가운데 49%가 중국에서 날아온 것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자동차 매연과 발전·소각 등으로 인한 산업 공해물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12월8일에는 중국 베이징(北京)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300㎍/㎥를 넘었다. WHO의 기준치 25㎍/㎥의 12배가 넘는 수치였다. WHO가 공개한 ‘세계건강관측’ 보고서를 보면, 2012년 기준 국가별 환경오염 원인 사망자 수 통계 가운데 한국은 사망자가 3만2678명이었다. 반면 중국은 260만7982명으로 거의 80배나 많았다. 고려대기환경연구소에서 대기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중국에서 불어온 황사의 미세먼지 농도가 서해를 거치면서 낮아지다가 한반도 내륙에서 다시 높아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에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액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 피해에 대해 중국을 상대로 국제 소송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대기 중 미세먼지 성분을 분석해 중국발 미세먼지의 비중만큼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할까.

 

한국에서 발생한 미세먼지 피해와 관련해 중국에 어느 정도 배상을 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마다 다른 답변을 내놓지만 공통적인 의견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국제법 전문 변호사는 “우리나라가 중국발 미세먼지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중국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하기는 어렵다”고 단언했다. 피해를 입었다는 소송을 하려면 양국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근거 법이나 조약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와 중국 간에는 이러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4일 중국발 먼지구름 위성사진 ⓒ 고려대기환경연구소 제공

 


“한·중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 체결해야”

 

현재 한국은 중국과 환경 분야 양해각서(MOU)를 맺거나 약한 수준의 환경협정을 맺은 상태다. 이조차도 국가 대 국가 차원이라기보다 지자체 차원에서 상호 교류 협정을 맺은 경우가 많다.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조약은 체결한 바 없다.

 

만약 한·중 양국이 조약을 맺어 국제 소송이 가능해진다면 어떨까.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강현 한양대 교수는 “미세먼지의 성분 자체를 면밀히 살펴도 발원지까지 특정해내기는 어렵다. 설령 특정을 한다 하더라도 기상현상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피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는 무리다”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의 피해배상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기오염으로 기관지 질환을 앓게 됐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 그것이 대기오염 탓인지 입증하기 힘들다. 또 무엇에 의한 대기오염인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도 어렵다. 국내에서 대기오염에 대한 손해보상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배상이 현실적으로는 어렵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은 국제적 규범으로 인정받는 관습법상의 ‘무해(無害)의 원칙’을 근거로 든다. 이 원칙에 따르면, 중국은 자국 내 수많은 자동차와 공장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엄청난 오염물질을 방출함으로써 인접국인 한국에 피해를 입힌 책임을 져야 한다.

 

국제사법재판소는 1996년 “한 국가의 관할권 및 통제 내에서의 행위는 타국의 또는 자국 영토 외의 환경을 존중할 일반적 의무가 있다”며 스톡홀름 원칙을 지지한 바 있다. 일부 환경학자들은 “조심스럽지만 ‘초국경 환경 피해’와 관련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확실한 조건이 있다면 이를 토대로 보상이나 배상 등을 요구할 수 있다”며 “장차 한·중 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이나 두 국가가 함께 가입하는 스모그 관련 국제적 규범을 만들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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