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제들의 환호 뒤에 숨은 아빠들의 눈물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24 21:27
  • 호수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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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 운전기사에 가정부 역할까지 딸의 골프 뒷바라지에 병드는 아빠들의 갈등과 애환

사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고 그랬을까. 묘하게도 선수를 다치게 한 원인 제공자의 딸은 우승했고, 다친 선수는 대회 출전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양측 팬들의 설전이 오갔다. 차기 ‘골프 여제(女帝)’를 노리는 라이벌, 장하나(24·비씨카드)와 전인지(22·하이트진로) 간에 벌어진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내용은 이랬다.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전인지는 지난 3월1일, 싱가포르에 열리는 LPGA투어 HSBC 위민스 챔피언십(3월3~6일)에 출전하기 위해 싱가포르 공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뒤에서 굴러온 가방에 부딪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야 했다. 장하나의 부친이 풀린 신발 끈을 묶으려고 하는 사이 여행 가방이 떨어지면서 생긴 일이다. 전인지는 이 사고로 꼬리뼈를 다쳐 대회 출전을 포기했고, 이 대회에서는 장하나가 우승했다. 그런데 전인지 측은 “전인지 선수가 이 사고 때문에 대회에 나가지 못했는데도 장하나 측에서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고 했고, 장하나 측은 “충분히 미안하다고 했다”고 맞서면서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다행히 본격적인 미국 투어를 앞두고 전인지와 장하나는 화해를 했다. 그러나 껄끄러운 앙금까지 말끔히 해소됐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최운정 선수와 함께 퍼트 라인을 살피고 있는 아버지 최지연 캐디의 모습. LPGA 투어를 호령하는 딸들의 결과 뒤에는 아빠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다. ⓒ AP연합

 


아빠들끼리 서로 상종조차 않는 경우도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부모들 간 관계는 어떨까. 일부는 외국에서의 외로움 때문에 식사도 함께하고 술잔도 기울이며 각별하게 지낸다. 하지만 골프라는 게 단체가 아닌 개인 운동이어서 그런지 부모들도 매우 개인적이고 파편화돼 있으며, 그래서 친해지기가 어렵다는 게 이 바닥의 중론이다. LPGA투어 현장에서 만난 한 선수의 부친에게 궁금해서 물어봤다. 선수들 부모끼리 친분이 좀 있느냐고.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는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워 혼자서 다닌다”고 했다. 다른 부모들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않다는 얘기였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은 성적이다. 딸들끼리 우승 경쟁을 하다 보니 ‘보이지 않는 질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선수와 성적이 떨어지는 선수의 부모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불편한 벽’이 숨어 있다. 이게 심할 경우에는 상종조차 하지 않는 부모들도 있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다. 팬층이 두터운 두 명의 정상급 선수와 한 조를 이룬 한 명의 무명 선수는 두 명의 정상급 선수로 인해 피해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팬들이 두 명의 선수가 그린에서 퍼팅을 마치자마자 무명 선수가 퍼팅을 채 끝내지도 않았는데 우르르 다른 곳으로 몰려가거나 고성을 지르기 때문에 제대로 플레이를 펼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이런 사소한 일로 두 명의 부친과 다른 한 명의 부친 사이는 멀어진다. 깊은 골이 생기는 것이다.

 

‘코리아 브랜드’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해온 여자 프로선수들 뒤에는 희생과 헌신을 마다하지 않는 아빠들이 있다. 이들 대디는 1인 3역을 하며 딸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있다. 특히 캐디까지 맡는 부친들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캐디 역할이 다가 아니다. 운전기사도 하고 밥과 빨래 등 가정부 역할까지 도맡아 한다. 자신은 내던지고 오직 자식 사랑만 남아 있다. 대표적인 이가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의 부친 박준철씨였다. 주니어 시절부터 밀착형 대디로 ‘올인’하다가 지금은 각자 생활을 한다. ‘땅콩’ 김미현은 온 가족이 매달려 뒷바라지를 했다. 이들의 성공을 이어받은 부친이 한둘이 아니다.

 

극심한 스트레스 탓, ‘건강 적신호’ 수두룩


박준철씨를 쏙 빼닮은 사람이 바로 장하나의 부친 장창호씨다. 그는 딸의 ‘그림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항상 20㎏이 넘는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데 이유는 장하나의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각종 먹거리는 물론이며 응급약품까지 들어 있는 마법의 배낭이다. 장씨는 4라운드 72홀 동안 무거운 배낭을 메고 딸을 따라다니며 수발한다. 연습장에서 스윙을 봐주는 것은 기본이다. 김효주(21·롯데)의 아버지 김창호씨는 딸이 태극마크를 달자 사업을 접고 뒷바라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운전과 요리를 전담한다. 차를 준비했고, 그 속에는 밥솥을 비롯해 요리 기구를 채워넣었다. 딸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이유로 경기 중에는 갤러리 틈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아빠들의 이런 희생은 때로 남모르는 슬픔과 비극이 된다. 정상급 선수들의 뒤에 서 있는 부친들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미국 전역을 비행기와 자동차로 이동하는 LPGA 투어 선수를 딸로 둔 부친들은 더 각별하다. 이들은 새벽이슬을 맞으며 차를 몰아야 하고 저녁에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새우잠을 자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2005년 LPGA 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했던 김주연(34)의 부친 김용진씨는 폐암에 시달리다가 유명을 달리했다. 일본을 평정하고 있는 이보미(28·혼마골프)의 부친 이석주씨도 암과 싸우다 딸의 우승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유소연(26·하나금융그룹)의 부친 유창희씨도 대장암 수술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은퇴한 한희원의 부친 한영관씨는 심장병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아야 했다. LPGA 투어 1세대였던 박지은(36)의 부친 박수남씨도 한동안 심장병과 전립선암으로 고생을 했다. 최근 국가대표 여자팀 상비군 코치에 임명된 장정(35)의 부친 장석중씨는 딸 뒷바라지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 몸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달팽이관 이상으로 한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박세리의 부친 박준철씨 역시 C형 간염과 신장 이상 등으로 시달렸다. 대디들의 잇따른 투병은 역시나 극심한 스트레스 탓이다. 최나연(28·SK텔레콤)의 부친 최병호씨는 “힘든 것은 어떤 부모나 마찬가지다. 특히 골프선수를 둔 부모는 자녀에게 ‘올인’하는 경향 탓에 스트레스가 더 심한 편이다”고 말했다. 공부에 ‘치맛바람’이 있다면, 골프에는 ‘바짓바람’이 있다. ‘대디’들이 희생하며 만든 ‘딸’들의 성공 신화는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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