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폐천(以掌蔽天)의 공천
  • 이현우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24 21:36
  • 호수 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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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 교과서를 보면 정당이란 이념이 유사한 사람들이 정치적 이상의 실현을 목적으로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조직하는 단체라고 정의돼 있다. 유감스럽게 한국의 정당들이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 한국 정치인들에게 정당은 단지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도구일 따름이다. 당선이 어려우면 언제라도 탈당하고 필요하면 창당하면 된다. 당선만 된다면 서슴없이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감수한다.

 

한국 정당의 평균 수명이 채 4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 정당의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재 선관위에 24개의 정당이 등록돼 있는데 이들 중 10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정당은 하나도 없다. 정당이 당원에 근간해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개인과 정부를 연결하는 정치 소통의 매개체로서 정당이 유권자들과 유리돼 있기 때문에 책임 정치의 실종과 국민의 정치 외면은 필연적 결과다.

 

한국 정당을 더욱 기형적으로 만드는 것은 정당 내부의 계파 갈등이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대선을 겨냥한 견제와 경쟁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정당 내부에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것은 정당의 획일성보다 훨씬 바람직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계파가 정책적 시각차로 인해 존재한다면 정당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계파는 자기보호를 위해 ‘계’를 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당내 계파는 보스를 정점으로 이득의 추구와 외부의 위협에 대항하는 집단적 방어기제로 작동할 따름이다.

 

20대 총선 후보 공천 과정에서 정당들은 계파의 폐해적 갈등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공천은 다른 계파를 제거하려는 각축의 장이 되고 말았다. 소속 정당이 의석을 다소 잃더라도 자신의 계파가 정당의 주도권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9대 국회를 비난하면서 공천부터 바로잡아야 국회가 바로 선다는 명분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정당마다 다투어 외치던 상향식 공천은 정치적 레토릭으로 이름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공천 결과를 보면 정당들이 제시한 공천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모든 정당이 공천 후보자들이 정당의 정체성과 일치하는지를 평가 항목에 넣었지만 과연 정당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아마도 정당 지도부의 지시를 잘 따랐는지가 정체성의 척도가 아닌가 싶다. 당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던 의원들 상당수가 탈락한 것을 볼 때 정체성은 정당 규율로 대치하는 것이 맞다. 헌법적 독립기관인 의원들이 언제부터 정당 지도부에 충성 맹세 경쟁을 해야 하는 존재로 바뀌었는지 개탄스럽다.


공천이 마무리돼가면서 20대 국회에 희망을 걸기는커녕 우려를 하게 된다. 상대 계파 자르기, 이삭 줍기식 충원 등으로 이른바 민주적 공천이 이뤄지고 있는 정당이 없다. 그래도 정당들은 입을 모아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는’ 공천이라는 미사여구를 거리낌 없이 남발하고 있다. 국민들은 쉽게 기만당하는 어리석은 존재가 아님을 총선을 통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장폐천(以掌蔽天·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다)할 수는 없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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