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격전지② 대구] “대통령 코드에 안 맞는다고 내치면 안 되는 기라”
  • 대구=유지만 기자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6.03.29 09:43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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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공천 파동’으로 요동친 대구 현지 르포
유승민 의원이 3월23일 저녁 대구시 동구 용계동의 선거사무소에서 새누리당 탈당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대회의실 벽면에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빨간색이 아닌, 하얀 바탕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플래카드에는 ‘대구의 힘! 대구의 미래!’란 구호가 적혀 있었다. 익숙한 새누리당 로고는 보이지 않았다. 대회의실은 100여 명에 달하는 취재진과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누군가는 “마치 개표 상황인 듯하다”며 혀를 내둘렀다. 탈당계 제출 시한을 2시간 정도 앞둔 3월23일 밤 10시. 대구 동구 용계동에 있는 유승민 의원 사무실 상황이다.

약 40분이 지난 밤 10시45분쯤 사무실 입구가 크게 술렁이더니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어 감색 정장에 주황색 넥타이를 맨 유승민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지자들은 손을 들고 “유승민”을 연호하며 박수를 쳤다. 유승민 의원은 웃음 띤 얼굴로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기자회견장이 마련된 사무실 대회의장에 들어섰다. 단상에 선 유 의원은 주변을 둘러보며 눈인사를 건넨 다음 준비해 온 연설문을 품에서 꺼내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유 의원을 비롯한 류성걸·권은희·주호영 의원 등의 ‘무소속 벨트’가 대구에 만들어지는 순간이자 새누리당의 ‘공천 파국’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이었다.

시사저널은 각 정당별 막바지 공천 작업이 한창이던 3월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대구를 찾아 현지의 분위기와 민심을 접했다. 유승민 의원 공천을 둘러싼 새누리당 내부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은 23일에는 하루 종일 유 의원 측의 상황을 살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심장’인 대구는 여당 내 계파 갈등에서 비롯한 공천 파문으로홍역을 앓고 있었다.

‘폭풍 속으로’ 대구시 동구 乙

3월22일 오후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동구 을 선거구를 찾았다. 유승민 의원의 칩거가 일주일째였던 시점이다. 보좌진조차 유 의원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다만 문자메시지와 통화로 유 의원과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지지자들은 사무실에 마련된 TV를 통해 새누리당 상황을 계속 체크하고 있었다. 평소 유 의원을 존경해 사무실을 찾았다는 이 아무개씨(60)는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의 처사에 격앙된 상태였다. 그는 “대통령 코드에 안 맞는다고 이렇게 내치면 안 되는 기라. 일 잘하는 사람을 이리 쫓아내는 게 어디 있노”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유 의원과 같은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한 이재만 후보는 대구 동구 봉무동에 있는 이시아폴리스 앞 상가를 돌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점퍼를 입은 이 후보는 인근 상가를 돌며 자신의 공약을 열심히 설명했다. 기자와 만난 그는 “동구청장 시절 추진했던 이시아폴리스가 제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곳을 중심으로 한 개발과 지역 상권 활성화 방안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이 후보도 유승민 의원 측 못지않게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이 후보는 “피가 마르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다른 곳은 다 공천이 됐는데 이곳만 안 되다 보니 답답하다”며 “차라리 시원하게 경선이라도 하는 게 낫지 싶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잘될 것으로 본다. 어쨌든 (새누리당 공천으로) 결정 날 것”이라며 지역을 마저 돌았다.

문제는 공천 확정이 지연되면서 공식적인 ‘새누리당 후보’로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이날도 인사를 다니는 이 후보를 향해 “이 동네 공천 어찌됐노”라는 지역민들의 물음이 따라다녔다. 이시아폴리스 정문 맞은편에서 채소를 파는 심 아무개씨(55)는 “어서 결정이 나야 할 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유승민이고 이재만이고 빨리 (공천이) 결정돼야 나도 누구 찍을지 생각을 할 거 아이가. 당 윗대가리들이 뭐하고 있는 짓들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이날까지도 유 의원의 거취는 오리무중이었다. 저녁에 열린 새누리당 공관위에서 유 의원의 공천 문제에 대해 또다시 의견을 내지 않기로 하자, 사무실에 있던 지지자들의 입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결국 ‘약속의 날’은 선거 후보등록 직전 날인 23일로 미뤄졌다. 이날 자정까지 탈당계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선거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승민 의원이 3월23일 저녁 지역 선거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유승민 탈당·이인선 가처분 등 ‘혼란의 3월23일’

3월23일이 밝았다. 이날부터 대구에는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시작은 오후 3시10분 유 의원이 칩거 8일 만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다. 유 의원은 대구 남구 대명동에 있는 모친의 집을 방문했다. 한 시간 정도 머무른 후 지역구 사무실 인근에 있는 자택으로 향했다. 자택에 도착한 유 의원은 몰려든 기자들에게 “오늘 중으로 입장을 밝히겠다”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유 의원의 입장 표명에 대한 소문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하고,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한때 이날 저녁 6시에 유 의원이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지역 보좌진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유 의원이 자택에 머무르고 있던 오후 5시30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공관위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서울 은평 을, 송파 을, 대구 동구 갑·을, 달성군 등을 무공천 지역으로 선포할 것”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방송을 접한 유 의원 지역 사무실에서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한 지지자는 “대통령 유승민”을 외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여성 지지자는 방송을 보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일부 지지자 사이에서는 “김무성이도 제대로 일 못했다 아이가. 이참에 사퇴해야 된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의 기자회견 후 저녁 7시부터 새누리당 공관위가 열렸다. 하지만 2시간가량의 토론에도 불구하고 유 의원 공천여부는 다시 보류됐다. 공천을 받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사라졌다.

긴장이 최고조로 치달을 무렵, 다른 지역구에서도 상황이 터졌다. 저녁 8시20분, 법원은 대구 수성구 을 지역 새누리당 공천에 대해 주호영 후보 측이 낸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그 결과 새누리당 후보로 결정된 이인선 후보의 자격이 정지됐다. 속보가 나오는 순간 유 의원 사무실에 모인 취재진 분위기도 크게 술렁였다. 일부 기자들은 “대구 선거가 어찌 되려는 거냐”는 반응을 보였다.

분위기가 크게 흔들리고 있던 저녁 9시30분. 유 의원 사무실 대회의장을 기자회견장으로 쓰기 위한 자리 정리가 시작됐다. 기자회견장 단상 뒤편으론 새로 장만한 하얀색 바탕의 플래카드가 새롭게 걸렸다.

이후 1시간 15분가량 지나고 유 의원이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준비된 연설문을 통해 “오랜 시간 몸담았던 당을 잠시 떠나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새누리당의 20대 총선 공천에 대해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며 “국민의 선택으로 반드시 승리해 보수혁신의 길을 다시 걸어가겠다”고 밝혔다. 유 의원 측은 이날 밤 11시20분쯤 새누리당 대구시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무소속 출마 절차를 밟았다.

유 의원의 탈당을 신호탄으로 새누리당의 탈당 러시가 시작됐다. 서울 은평구 을 이재오 의원이 탈당한 데 이어 대구 수성구 을 주호영 의원, 동구 갑의 류성걸 의원도 잇달아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들의 탈당으로 새누리당의 의석은 157석에서 146석으로 줄어들며 과반이 무너졌다.

후보등록 첫날인 3월24일에도 파국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엔 전날 법원이 새누리당 공천 효력을 정지시킨 대구 수성구 을이 문제였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이인선 후보가 자격을 상실했다. 대구시 선관위는 이날 새누리당이 후보 공모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날 오후 3시쯤 찾아간 이 후보 사무실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법원은 새누리당 공관위원 8명 중 7명만 의결했다는 부분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하고 공천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 후보 측은 “이렇게 엉망진창인 공천은 태어나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한구가 모든 걸 망쳤다 아이가”


설상가상으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25일까지 최고위개최를 거부하고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분위기는 더욱 비관적으로 흘러갔다. 이 후보는 급히 서울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날 밤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이 후보 캠프 관계자는 “출마조차 못하는 것이냐”며 크게 불안해했다.

상황은 결국 후보등록 마지막 날인 3월25일 오후 5시가 다 돼서야 일단락됐다.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를 주재하고 이재오·유승민 의원이 낙천해 무소속 출마한 서울 은평구 을과 대구 동구을, 서울 송파구 을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했다. 다만 대구 동구 갑 정종섭, 달성군 추경호, 수성구 을 이인선 후보 등 3명의 공천은 추인하기로 했다. 은평구 을의 유재길, 대구 동구 갑의 이재만 후보는 끝내 출마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면서 길고 긴 ‘공천 파국’이 일단락됐다. 유승민 의원은 유일한 후보가 되면서 무투표 당선되는 듯했으나, 이날 후보등록 마감 직전에 더불어민주당의 이승천 지역위원장이 후보등록을 하면서 경선을 치르게 됐다.

이번 공천 파문에 대한 대구 민심은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한 ‘강한 반발’이었다. 유승민 의원 개인에 대해선 “대통령을 배신했다”와 “억울하게 팽(烹)당했다”는 의견으로 나뉘었지만, 공천 과정에 대해선 하나같이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최악의 공천”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대구 수성구에서 만난 택시기사 이 아무개씨(52)는 “이한구가 모든 걸 망쳤다 아입니까”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손님들을 태우고 다니다 보면 “새누리당이 일을 참 바보같이 한다”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손님들 태워 보면예. 하나같이 ‘이한구가 다 망쳤다’는 반응입니더. 애초에 문제가 안 생기도록 했으면 깔끔하게 끝났을 텐데, 바보같이 머뭇거리다 다 망쳐버렸다 아입니꺼. 유승민 의원 문제도 미리 정리했으면 이런 사단이 났을까예. 대통령 코드에 맞추려면 제대로 맞추든가, 아니면 협의를 잘했어야지예. 이도저도 아니게 질질 끌고만 가다가 이 꼴 난기라.”

이런 불만은 지역에 출마한 후보자의 입에서도 나왔다. 대구에서 총선에 출마한 ㄱ후보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이한구가 다 망쳤다”고 말했다.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가 3월23일 대구시 수성구의 한 노인정을 찾아 무료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3월21일 범어네거리에서 출근 인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김부겸 인터넷 홈페이지


‘최대 수혜자’ 김부겸, ‘최대 피해자’ 김문수


새누리당의 공천이 진통을 거듭하면서, 본의 아닌 최대 수혜자는 대구 수성구 갑에 출마한 김부겸 더민주 후보라는 얘기가 지역에서 나왔다. 김 후보와 맞대결하는 김문수 새누리당 후보는 반대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 셈이다. 3월23일 오전 대구시 황금1동에 있는 종합복지관에서 만난 김문수 후보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르신 무료급식 봉사를 나온 김 후보는 “인근 지역의 공천 잡음이 계속돼 손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조금 뒤처지고는 있지만, 후보등록 후 본격적인 유세전에서 더 힘을 내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그는 대구 수성구 대덕산과 유건산, 대구스타디움 일대를 개발하는 ‘(가칭) 대구 레인보우 파크’ 조성계획과 수성구 고모동과 가천동 등을 포함하는 ‘수성워터프런트’ 공약 등을 내놓았다. 하지만 공천 갈등이 계속되면서 크게 관심을 받지는 못하는 모양새였다. 오랜 세월 타지에 있다 고향에 내려온 것에 대한 반감도 읽혔다. 수성구 황금1동에서 식당을 하는 이 아무개씨(57·여)는 “뭣하러 여기 왔는지 모르겠다”며 “나가서 도지사까지 했으면 거 있지 와 이리 왔노”라며 반감을 드러냈다. 반면 오랜 행정 경험을 높이 사는 주민도 있었다. 김 후보 사무실 근처에서 만난 주 아무개씨(40)는 “경기도지사도 오래 했으니 아무래도 지역 행정 능력이 있을 것 같다”며 지지 의사를 내비쳤다.

대구에서 세 번째 도전에 나선 김부겸 더민주 후보는 오랜 시간 다져온 지역 민심을 더욱 공고히 다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김 후보는 청년 취업난과 노인 빈곤 문제 해결등 복지 공약에 주력하고 있다. 그는 청년 일자리 지원, 청년 주거복지 실현, 차등 없는 노인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등의 공약을 내세웠다. 김 후보는 “무분별한 개발이 만능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주민 생활을 나아지게 할 수 있는 공약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민 사이에서는 김 후보에 대한 호감이 많이 읽혔다. 하지만 새누리당 후보가 아니라는 점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났다. 대학생 송 아무개씨(23)는 “고등학교 때부터 김 후보에 대한 호감이 있었다. 이번에는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반면 골수 새누리당 지지자라는 전 아무개씨(62)는 “막상 투표장에서는 새누리당을 찍을 것”이라며 “사람은 좋지만 당(黨)이 문제”라고 말했다.

지역 사정에 정통한 이들은 대구 최고 관심 지역으로 수성구 갑을 꼽았다. 한 지역 일간지 기자는 “공천 파문이 아니었다면 대구 최고의 관심은 ‘김부겸의 당선 여부’였다. 여기다 새누리당 공천 파문까지 일어나면서 대구가 크게 들썩이게 됐다. 탈당 의원들이 생환하고, 김부겸 후보까지 당선된다면 대구 지역 정치지형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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