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개발 공약 지키는 게 더 무섭다
  • 이민우 기자 (mwlee@sisapress.com)
  • 승인 2016.03.31 17:53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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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포퓰리즘’과 지역 개발 환상이 만든 애물단지들

3월21일 낮 12시40분, 용인 경전철 전대 에버랜드역에서 기흥역 방향으로 출발한 116번 열차. 226명이 탑승할 수 있는 이 열차에는 단 한 명의 승객만 탑승했다. 종점인 기흥역까지 18.14㎞ 구간을 운행하는 동안 이 열차를 타고 내린 사람은 63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중간 어정역에서 나들이객으로 보이는 일행 12명이 한꺼번에 탄 결과였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와 기흥구를 가로지르는 용인 경전철. 수도권 교통난 해소를 위해 건설됐지만 2012년 개통 직후부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이용객 수가 수요 예측에 크게 못 미쳐 용인시는 혈세로 적자를 메우고 있는 형편이다. 개통 이듬해 하루 평균 이용객은 8700명에 불과했다. 신분당선 기흥역과 연결되고 수도권 통합 환승 할인 시스템이 도입됐지만 수요 예측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상황이다. 계획 단계에서는 3만1000여 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다.

 

인천시 송도 해안도로는 2010년 2736억원을 들여 왕복 6차로에서 12차로로 확장했다. 하지만 확장 이후 이용률은 예측 대비 20% 수준에 불과했다. ⓒ시사저널 이민우

용인 경전철에 들어간 비용은 1조원이 넘는다. 2010년 6월 완공됐지만 용인시와 열차 제조업체인 봄바디어 등이 주축이 된 ㈜용인경전철이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비율을 놓고 다툼을 벌이느라 3년 가까이 운행하지 못했다. 더욱이 용인시는 이와 관련한 국제중재심판에서 패소해 건설비용 5159억원, 기회비용(운행을 못해 발생한 손실비용) 2672억원 등 8500억원을 배상해야 했다. 운행 이후 비용 보전 방식(운영 수입이 표준운영비에 미달할 경우 차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지만 2014년 운영사 지원 금액만 245억원에 달했다. 용인시는 결국 경전철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로 인해 공무원의 수당을 깎고, 저소득층 복지비를 대폭 줄이는 등 긴축 재정을 펼쳐야 했다.

 

비슷한 일은 의정부시에서도 발생했다. 2012년 7월 개통한 의정부 경전철은 하루 평균 10만8000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이용객은 3만명에 불과했다. 결국 의정부경전철㈜은 2014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후 누적 적자가 2000억원을 넘어서 도산 위기에 빠졌다.

 

비단 경전철만의 문제는 아니다.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동호리에 위치한 양양국제공항은 ‘유령 공항’으로 불린다. 3500여 억원을 들여 영동권 거점 공항을 표방하며 2002년 문을 연 후 14년이 지났지만 이곳은 아직 적막하기만 하다. 연간 4만3000편의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됐지만 하루 세 차례 50인승 국내선 비행기가 부산을 오갈 뿐이다. 2008년 11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는 단 한 편의 비행기도 운항하지 않았다. 영국의 방송사 BBC는 양양공항을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국제공항’으로 꼽으며 ‘유령 공항’이라 칭하기도 했다. 양양공항은 2002년 개항 이후 2014년까지 1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김포·김해·제주 공항을 제외한 11개 지방 공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이들 지방 공항의 적자는 매년 600억원에 달한다.

 

3월21일 용인 경전철 전대 에버랜드역에서 출발한 열차에 승객 한 명이 타고 있다. ⓒ시사저널 이민우

 


‘표심’ 노린 무차별 공약들

 

국회의원 선거가 목전으로 다가왔다. 올해도 역시나 ‘표심’을 노린 장밋빛 공약들이 기승을 부린다. 지역 주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럴싸하게 포장한다는 점에서 대선 후보였던 허경영의 ‘황당 공약’과는 맥락이 다르다.

 

경기 성남 지역에 출마한 한 후보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한국 캠퍼스나 대학원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분당·판교의 미래 산업을 위한 공약이라고 내세웠지만 현실 여건상 실현하기 쉽지 않은 공약이다. 울산의 한 후보는 지하철 설치 공약을, 다른 후보는 태화강에 쾌속정을 띄우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예산 규모와 지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쉽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부산의 한 후보는 지역 내 군부대를 이전하고 의료·복합관광 뉴타운을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2014년 지방선거 때부터 등장한 공약이다. 하지만 이곳에는 군 병원 등 시설이 많고 이전 부지도 마땅히 없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다른 후보도 부산에 해외 유명 테마파크를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부산시가 추진 중인 관광단지 테마파크 사업도 외국 업체들이 잇달아 참여를 포기하는 등 차질을 빚는 상황이다.

 

특정 지역, 특정 후보만의 황당 행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지역구에서 정당을 막론하고 개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지역에 경로당이나 복지회관을 짓겠다는 공약, 어디부터 어디까지 도로를 확충하겠다는 공약들이 난무한다. 지역 주민의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사업도 있겠지만, 대부분 정부가 장기적 측면에서 수요 등을 고려해 전략을 세우는 국토개발계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오히려 실현되는 것이 두려운 공약인 셈이다.

 

‘정치’를 꿈꾸는 이들은 한국의 도로·철도·항만 등 사회기반시설(SOC) 총량은 선진국 수준에 이르렀다는 점을 모르는 듯하다. 그저 도로가 뚫리면 편하고 공항이나 철도가 생기면 집값이 올라 주민들이 좋아할 것으로 여기는 모양새다.

 

하지만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시설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전국 도로의 총 길이는 2005년 10만2293㎞에 달한다. 국토면적당 도로 연장은 주요 20개국(G20) 국가 가운데 5위에 해당한다. 20개 국가 중 국토면적당 고속도로 길이는 1위, 철도 연장은 6위다.

 


SOC 사업 55%, 사실상 ‘혈세 낭비’

 

과거부터 선거 때만 되면 SOC 건설 공약이 봇물처럼 터진다. 이로 인해 혈세만 잡아먹는 도로·철도·공항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지역 주민을 현혹하는 포퓰리즘 공약의 흔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용인·의정부 경전철이나 양양공항과 같이 특정 사업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10년간 건설된 고속도로 15곳 가운데 이용률이 수요 예측보다 많은 곳은 1곳에 불과했다. 7개 고속도로의 이용률은 예상치의 50%를 밑돌았다.

 

대규모 SOC 사업 가운데 절반 이상은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 나랏돈이 투입된 사업들이 ‘돈 값’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전체 292개 도로·철도·항만 사업 가운데 166개 사업(55%)의 이용률은 예측의 절반을 밑돌았다. 예측 대비 수요가 20% 미만인 사업도 22건(7.5%)에 달했다. 반면 예측보다 이용률이 높은 사업은 27건(9.2%)에 불과했다. 2015년 4월까지 사후 평가가 실시된 도로·철도·항만 사업의 예측 대비 실측 수요를 분석한 결과다.

 

‘경기 통일대교-장단 간 도로 확장 및 개설 공사’ 사업은 하루 평균 3만3290대가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235대만 이용했다. 예측 대비 수요가 0.7%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전남 화순남면 우회도로 축조 및 포장 공사’도 하루 4만3158대가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이용 차량은 1816대(4.2%)에 그쳤다. 2010년 2736억원 규모로 건설된 ‘송도해안도로 확장 공사’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예측한 차량 1일 통행량은 63만1154대였지만 실제 완공 이후 통행량은 12만6752대에 그쳤다. 예측 오차가 무려 80%에 육박한다.

 

정치인들은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판단된 사업들조차 ‘지역 균형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추진했다. 40~50% 가중치의 경제성 분석에서 낙제점을 받았지만 지역 낙후도 등에서 높은 배점을 받은 경우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경제성이 떨어지는데도 예비타당성 종합 평가에서 합격 판정을 받은 사업은 82건에 달했다. 이들 사업에 들어간 돈만 39조8178억원에 달했다. 3조5억원이 투입되는 ‘중앙선 도담-영천 철도’와 총사업비 2조6000억원의 ‘인덕원-수원 복선 전철’, 1조7000억원이 들어가는 ‘동해·묵호항 3단계 개발’ 사업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도 추진된 사업도 있다. SOC 분야의 경우 2003년부터 2013년까지 ‘타당성 없음’ 판정을 받았던 23개 사업이 공사를 시작했다. 이 23개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은 총 11조2455억원이다. 아예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도록 면제를 추진하는 ‘꼼수’도 활용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부터 2012년 7월까지 ‘지역 균형 개발’ 명목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은 사업은 68개다. 이들 사업의 총 사업비만 53조9195억원에 달한다. 도로를 만들거나 관광지를 조성하는 사업이 대다수였다. 총선 후보들은 돈 문제를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다. 실현 계획은 중앙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마치 남의 돈을 공짜로 가져오겠다는 듯하다.

 

강원도 양양국제공항은 3500여 억원을 들여 건설됐지만 하루 50인승 비행기가 세 차례 뜨고 내릴 뿐이다. ⓒ 연합뉴스

 


그들이 말하지 않는 ‘돈’ 문제

 

하지만 ‘돈’ 문제를 엄밀히 분석해보면 말은 달라진다. 도로·철도 등을 짓기 위해 국민 한 사람당 해마다 90만원씩 부담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SOC 사업을 위해 매년 20조원 안팎의 혈세를 쏟아부었다. 최근 5년간 SOC 사업에 투입된 예산(본예산 기준)은 120조3000억원에 이른다. 2011년부터 매년 24조원 안팎의 세금을 도로나 항만, 철도 등을 짓는 데 투입하고 있다. 지난 2월 경제활동인구(2673만4000명)로 계산했을 때 국민 1인당 450만원을 부담한 꼴이다.

 

더욱 큰 문제는 지금까지 쓴 세금만 이 정도 규모라는 점이다. 앞으로 더 들어갈 돈은 포함하지 않았다. 지역 주민들, 정치인들의 요구 사업을 추진하는 데 예산이 부족해지자 민간 자본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예측 수입보다 실제 수입이 적을 경우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방식이다.

 

하지만 민자 유치를 통한 SOC 사업 추진은 곧바로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손실이 커지면서 적자 부담액이 갈수록 늘어난 것이다. MRG 지급액은 2002년 650억원에 불과했고 2007년까지는 1000억원대를 유지했다. 이명박 정부가 시작된 2008년 3664억원으로 늘어났고, 임기 말인 2012년 6547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에는 8606억원, 지난해에는 8162억원을 기록했다. 민자 유치를 통한 SOC 사업 추진 이후 민간에 지급된 적자 보전분만 4조9745억원에 달했다. 정부는 손실보전액이 급증하자 2009년 MRG 제도를 폐지했다. 다만 폐지 이전 MRG가 적용된 SOC 사업에 대해선 계속 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2040년까지 연간 5800억원, 총 15조원을 부담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지역 개발 공약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지역 주민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개발 공약을 내세우면 뽑아줄 거라 믿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양양공항이나 용인·의정부 경전철 모두 해당 지역의 숙원 사업이었다. 그만큼 지역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원했다는 의미다. 그들조차 한 표를 행사할 때 자신이 낸 세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꼼꼼히 따져보지 못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지역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환상이 더해져 유령도로와 유령공항이 생겼다.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졌고, 앞으로 더 내야 할 ‘채무’까지 생겼다. 하지만 이를 검증할 길은 거의 없다. 오로지 유권자의 판단에 맡겨진 셈이다.

 

제도적 장치도 부실하다. 일부 선진국들은 무차별적 공약을 지양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 호주는 정부가 총선 공약에 들어가는 예산 정보를 담은 ‘공약 소요 예산 보고서’를 발표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네덜란드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경제정책분석국이 선거 전후로 각 당 공약의 경제성 등을 분석해 발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재정 투명성 지침’을 통해 “선거 2주 전까지 공약에 들어가는 재정 소요 내용을 정확히 공개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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