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표는 어차피 딴 데 안 가”
  • 김현일 대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31 17:54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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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경시하는 오만, 피 튀긴 역대 공천 싸움

“정치는 사기(詐欺)다. 정치판엔 협잡(挾雜)이 넘친다. 꾼들이 설치는 난장(亂場)이다. 거기엔 양아치 수준의 꾼들도 수두룩하다. 상당수에겐 건달(乾達)이란 표현조차 아깝다. 건달은 의리라도 있는데 배신과 용렬(庸劣)로 칠갑을 한 군상들이 득실대니까. 건달 사회에선 최소한 등에 칼을 찌르는 비겁(卑怯)이 금기시 되지만 정치꾼들 세계는 다르다. 굳이 건달이란 단어를 쓰고 싶다면 앞에 ‘날’자라도 붙여 오해가 없도록 해야 맞다. 야바위꾼들은 얼빠진 몇몇의 주머니 발라먹는다지만 우리 정치꾼들은 다수 국민을 상대로 협잡질이니 더 밉다. 되레 뽑아준 죄도 죄라고 들이대니 애먼 국민만 딱하다. 그런 꾼들이 뭉친 정당들이 오죽할까 싶다. 그나마 낫다는 정치인들도 음모와 술수에 오염되게 하든지 바보로 만드는 게 정당이라는 괴물이다. 정자정야(政者正也)라고 하신 공자님이 원망스럽다. 하는 짓거리는 나라를 바로잡는 것과 정반대인데 공자님 말씀 뒤에 숨어 호의호식하며 국민 세금이나 축내니 말이다. 아이들이 배울까 봐 정말 걱정되는 게 우리 정치다.” 

 

지금의 우리 정치를 정의(定義)하면 대략 이렇다. 이는 보수·진보를 망라한 여러분들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다. 물론 모든 정치인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상당수가 그런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국민의당 영암·무안·신안에 공천 신청한 김재원 예비후보가 3월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후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의 전략공천에 항의하다 끌려 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강창희 前 국회의장과 장달중 교수의 안도

 

같은 싸움이라도 가족 간 싸움이 더 험악하다. 적과 싸울 때는 사정도 봐주지만 골육상쟁(骨肉相爭)에는 그나마도 없다. 상대당 후보와 겨루는 본선보다 공천을 다투는 싸움이 더 무지막지한 게 괜한 게 아니다.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새누리당 공천위원장직 권유를 받고 펄쩍 뛴 것은 그래서다. 그는 자신이 공천위원장이 되면 친박(親朴)의 S·Y 의원부터 자르겠다고 엄포를 놓아 가까스로 ‘풀려났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공천관리위원장 수락 요구를 뿌리치느라 사흘간 고생했다. 김 대표는 나라를 위한 일이니 제발 맡아달라고 간청했고, 장 교수는 ‘그랬다간 내 명(命)에 못 죽는다’고 통사정하며 간신히 양해를 구했다. 지난 3월 중순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은 ‘죽기 아니면 살기 식 싸움판’으로 얘기꽃을 피웠다. ‘후임’ 아닌 후임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홍창선 더민주 공천관리위원장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나왔다.

언론들은 그간 ‘막장’ ‘꼼수’ ‘난장판’ ‘보이지 않는 손’ 등 온갖 수사(修辭)를 동원해 공천 현장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실태를 알렸다.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그래도 이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오만(傲慢)’이다. 여야가 한통속이다. 국민을 조금이라도 어렵게 안다면 그 같은 방자(放恣)는 없었을 것이다. 초반엔 야당이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분열하는 과정에서 막장 드라마를 리드하더니 후반엔 새누리당이 주역을 맡았다.

 

표를 얻어야 하는 정당들로선 결코 취하지 못할 것 같은 몹쓸 행태 자행의 배경은 간단하다.  ‘저쪽도 나을 게 없다. 그러니 국민들 시선일랑 개의할 게 아니다’는 발상 때문이다. 여기엔 내 편(보수든 진보든)은 결국 내게로 온다는 계산이 자리하고 있다. 내가 정 싫어도 기권을 하면 했지 저쪽으로 가지 않을 것도 안다. 양당 정치가 고착된 데 따른 부산물이다. 그러니 욕을 먹더라도 내 편 하나를 더 건지겠다는 편협과 무리수를 서슴지 않는다. 요즘도 겉으론 드러나지 않을 뿐 ‘뒷돈’이 상당하다니까 당장은 이래저래 ‘대박’이다. 경박스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창피는 잠시고, 현찰은 영원하다’는 노름판 ‘격언’이 딱 들어맞게 돼 있다.

 

여야 지도부가 믿는 구석은 또 있다. 얼마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새 국면에 빠져드는 유권자들의 망각을 믿는 탓이다. 이런 망각증은 언론들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정당 지도부는 꿰고 있다. 게다가 상대 진영도 에러를 내게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잔머리도 굴린다. 어차피 상대적인 게임이고, 국민들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데서 비롯된 병폐다.

 

공천 경쟁을 더 살벌하게 만드는 것은 본선의 당대당(黨對黨) 싸움보다 당내 패권 확보가 절실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때론 의석을 상대 당에게 내주는 편이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소산이다. 새누리당의 ‘유승민 파동’은 그 대표적 사례일 수 있다.

 

사실 지난 3개월간 벌어졌던 공천을 둘러싼 온갖 추태와 무리수들을 방금 제시한 경우의 수에 대입하면 그 발단과 전개 내막은 쉽게 파악된다. 전망까지도 가능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여당 내에선 친박·비박 갈등,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간 격전 등등 굵직한 ‘사건’들과 매 단계에서 수많은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이 ‘공식’에 대입하면 간단히 풀이된다. 감춰진 꿍꿍이도 쉽사리 캐낼 수 있다. 선거가 임박한 가운데 이뤄진 안철수 의원의 탈당과 국민의당 창당,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퇴장과 더민주 개명 및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 영입, 김 대표의 통합 제의와 휘청거리는 국민의당 행로 등도 마찬가지다.

 

공천사(史)는 시대와 여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한 가지, 국민을 의식하고 어려워했다는 점은 일치한다. 수준은 다르더라도 그랬다. 그런데 오늘날 공천 과정만을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니다’.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 여당에 공천 잡음이라곤 없었다. 당 총재인 대통령이 정하면 끝이었다. 그래도 국민의 눈길을 의식해 각계 대표성과 이미지를 살리려 노력한 흔적은 있었다. 때문에 ‘거수기’ 수준의 국회의원이라 한계가 분명했지만 나름대로 인정받는 인물을 명단에 올렸다. 하기야 유신 시절엔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지명토록 했으니 공천이란 말 자체가 민망스러울 정도지만. 5공 시절에도 이런 ‘관행’은 그런대로 유지됐다. 때문에 공천 잡음이라는 것도 별게 아니었다. 군 출신 실세나 중진에게 줄을 대기 위해 돈이 오가는 정도였다. 11대 당시 여당의 2·3중대로 편성된 제1야당 민한당과 제2야당 국민당엔 본래 여당에 ‘배속’될 예정이었다가 ‘전출’된 의원도 여럿이다. 괴이하지만 이것도 공천이라면 공천이다. 민한당의 전국구 단가는 3억~5억원(소요 경비 별도)이었다.

 

‘욕해봤자 곧 잊어’ 확신도 무리수 부추겨


김영삼(YS)·김대중(DJ) 양김이 정계에 복귀한 12대부터 야당의 공천문화는 달라졌다.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높은 서울 등 대도시가 인기였는데 국민들은 야당의 공천 판매를 시비하진 않았다. 요즘 화폐 기준으로 지역구당 수십억 원씩 펑펑 쓰는 여당에 비해 야당에는 몇 백만 원도 귀했기 때문이다.

 

1987년 대선 때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각자 출마했다가 낙선한 YS와 DJ가 김명윤(통일민주당)과 박영숙(평민당)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치른 1988년의 13대 총선은 시사하는 바 크다. 김종필(JP)의 신민주공화당까지 가세해 1여3야의 구도가 되자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은 쾌재를 불렀다. YS와 DJ가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만큼 후보 단일화는 없을 게 확실했다.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그르친 YS와 DJ를 비난하는 마당이었기 때문이다. 채문식 대표 등 민정당 지도부는 “개헌선 이상 확보”를 공공연히 ‘걱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민정당 참패였다. 선거 전 148석에서 125석으로 쪼그라들었다. 평민당이 70석으로 제1야당, 통일민주당은 59석으로 제2야당, 신공화당은 35석이었다. 득표율로는 YS 쪽이 23.8%로 DJ 쪽보다 4.5% 많았으나 의석수는 반대였다. 1여3야 구도에 취해 김칫국부터 마신 여당은 톡톡히 대가를 치렀다.

 

여기서 비롯한 여소야대 정국이 1990년 민정·통민·신공화 3당의 합당 계기가 됐고, 전체 의석 3분의 2를 훌쩍 넘는 초거대 여당 민자당이 생겨났다. 하지만 1992년 DJ의 민주당과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을 상대로 한 14대 총선에서 무려 64석을 뺏겨 149석으로 무너졌다. 3파전 구도에 취해 공천도 민정·민주·공화 세 정파가 나눠먹기에나 치중하는 만심(慢心)이 가져온 결과다.

 

권위주의 시대에도 조심은 했는데 요즘은… 


 

1996년 제15대 총선은 지도자의 자세가 얼마나 위중한가를 여실히 증명한다. 지지율이 집권 초반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자 YS는 사갈시(蛇蝎視)하던 이회창 전 총리를 신한국당 대표에 임명하고 홍준표·이재오 등을 끌어들였다. ‘새 피 수혈’로 성난 민심을 달랜 것이다. 그 결과 서울에서 27석을 차지했다. DJ의 새정치국민회의는 18석에 머무르는 대이변이 연출됐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치러진 2004년 제17대 총선도 시사점이 많다. 압도적 우세로 여소야대 정국을 요리하던 야당 신한국당과 새천년민주당은 ‘탄핵 역풍’에 휘말려 궤멸했다. 지지율 급상승에 고무된 열린우리당은 그러나 정동영 당의장의 ‘노인 폄하 발언’ 하나로 휘청거렸고, 정 의장은 선대위원장과 비례대표 사퇴라는 카드로 위기를 틀어막아 152석을 확보했다. 보수 진영에서 ‘탄돌이’로 비하하는 운동권 중심의 공천은 문제가 안 됐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집권당 최초의 과반 의석 확보였다. ‘차떼기 사건’으로 위기에 몰렸던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를 내세워 참패(121석)를 모면했다. 최병렬 대표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등 초강수를 둔 게 주효했다. 최 대표를 자른 공천심사위원장은 최 대표 자신이 임명한 김문수 의원이다. 비례대표 1번 JP는 ‘3% 혹은 5석’ 기준에 걸려 배지를 달지 못한 채 정계를 은퇴했다.

 

국민 무서운 것을 절감한 여야 정당들이 이후 선거에서 더욱 주력한 게 ‘새 피 수혈’을 위한 ‘현역 의원 물갈이’다.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각오를 나타내는 상징이 됐기 때문이다. 선거 공약이라는 게 공약(空約)으로도 읽히는 선거판에서 자랑할 게 별로 없던 것도 ‘물갈이’를 중시하게 만들었다. 공천에는 진보 야당이 도입한 국민 경선이나 여론조사 반영 등 방법도 다양화·보편화됐다. 또한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치판에서 이런 기법들은 상대 파벌을 제거하는 유용한 수단이 됐다. 어차피 옥석 구분이 애매한 상황이어서 중진도 단번에 훅 날려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면 공천 때 단골로 등장하는 ‘공천 잔혹사’에서 진짜 동정을 받을 객체는 다수 국민이다. 오랜 기간 흉한 꼴 관전을 강요당했다는 점에서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현역 탈락률은 15대 29%, 16대 32%, 17대 36.4%. 그리고 새누리당 18대는 38.5%, 19대는 무려 46.6%다. 얼핏 수치로만 보면 면모 일신 노력의 흔적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니다. 피 튀는 당내 파벌 싸움 결과일 따름이다. 2007년 18대 공천 당시 이명박 대통령 측의 ‘박근혜 씨 말리기’로 ‘학살’당했던 친박은 2012년 공천 때 친이(親李) 그룹에 대한 ‘대학살’로 보복했다. 외부 명사를 영입(18대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 19대 정홍원 대한법률공단 이사장)해 공정한 심사가 되도록 하겠다고 백번 말해도 수긍하는 이는 없었다. 친박계가, 박근혜 대통령이 여론의 역풍을 무릅써가며 김무성 대표를 짓이기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 고사(枯死)에 매달리는 속내를 굳이 따질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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