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겨눈 칼날에 ‘벌벌’ 떠는 대기업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3.31 18:34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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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롯데·신세계·GS·애경 등 경영진 125명 무더기 고발…오너 일가로 검찰 수사 확대 여부 주목

정확히 5년 전의 일이다. 2011년 4월, 20~30대 임산부 7명이 잇달아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서울 아산병원을 찾았다.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 섬유화 증상이 나타났다. 결국 7명 가운데 4명이 원인불명의 폐질환으로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정부는 역학조사에 나섰고, 임산부들의 폐 손상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가습기 살균제로 동물실험을 한 결과, 사망한 임산부들과 유사한 폐 섬유화 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의 판매는 중단됐지만, 피해자는 계속 늘어났다. 이미 대형마트 등을 통해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가 판매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발표된 정부 조사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모두 530명이다. 이 중 27%인 143명이 사망했다.

 

올해 1월 본격화된 검찰 수사와 피해 가족들의 무더기 고발로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 뉴시스

 

‘가습기 살균제’ 규명 위해 검찰 전담팀 꾸려 

 

지난해 말까지 접수된 환자를 포함하면 피해자는 1000명, 사망자는 200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영국계 다국적 기업 옥시레킷벤키저가 판매한 ‘옥시싹싹’의 피해자가 가장 많았다. 전체 환자의 절반 이상이 이 제품 사용자였다. 뒤를 이어 ‘가습기메이트’(애경산업), ‘와이즐렉’(롯데마트), ‘홈플러스’(홈플러스), ‘세퓨’(세퓨), ‘이플러스’(이마트) 순으로 피해자가 발생했다.

 

피해자 가족과 시민단체는 2012년 8월 처음으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경찰을 통해 수사를 지휘했지만, 3년 넘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정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사를 잠정 중단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피해자 가족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로 아내와 아이를 동시에 잃은 안성우씨는 “1000명이 넘는 피해자를 양산한 업체들은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 정부 역시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며 “가족들은 정신적 고통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에도 시달려야 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런데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가습기 살균제 수사가 최근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검찰은 지난해 옥시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10여 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경찰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 15곳 중 8곳의 대표이사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직후였다. 올해 1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검찰은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핵심 임직원의 자택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피해자 가족으로 구성된 고발인 조사는 이미 마쳤다. 조만간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회사 임원들을 불러 피고발인 조사를 진행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신현우 전 옥시레킷벤키저 대표와 노병용 전 롯데마트 사장, 이승한 전 홈플러스 회장 등은 출국 금지됐다. 피해자 가족들도 ‘실력 행사’에 나섰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회사를 잇달아 고발했다. SK·롯데·신세계·GS·애경 등 주요 그룹 임원 125명이 최근 검찰에 고발됐다. 최근 한 달간 고발된 회사와 임원은 모두 19곳의 256명에 달한다. 피고발인 중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등 오너 일가도 포함돼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후폭풍’이 재계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애경이 판매한 제품의 경우, 2011년 정부 조사에서 폐 섬유화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경찰이 롯데마트 등을 기소할 때도 애경은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여서 고발 배경이 주목되고 있다.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피해자가족모임) 대표는 “애경의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만을 사용하다 사망한 사례도 10건 이상 조사됐다. 부산의 네 살 쌍둥이 어린이는 목을 뚫어 호흡하고 있다”며 “검찰 고발은 당연한 수순이다”고 말했다.

 

애경 측은 가습기메이트 제조사 SK케미칼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애경그룹의 한 관계자는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가습기메이트는 SK케미칼에서 생산했다. 애경은 판매만 담당했다”며 “관련법상 책임은 제조사에 있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기업들 역시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면서도 “가습기 살균제에 독성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고 해명하거나 아예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시각은 달랐다. 피해자가족모임 측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검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직후 일부 기업들이 물밑 접촉을 하며 합의를 요청해왔다고 한다. 이전까지 사과는커녕,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버티던 회사들이었다. 피해자가족모임 관계자는 “그동안 사과 한마디 안 하고 버티다가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합의를 시도한 것”이라며 “회사 말대로 문제가 없었다면 피해자 가족과 접촉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유해성 미리 알았는지가 검찰 수사 관건

 

검찰 역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사들이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검찰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전체가 사건의 실체 규명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 사건을 위해 기존에 형사2부가 맡아왔던 사건은 모두 다른 부서로 재배당된 상태다. 전담팀의 인력도 대폭 보강했다. 1명의 검사가 전담했던 사건을 부부장검사, 평검사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이철희 형사2부장은 식약 쪽에 정통한 검사”라며 “압수수색 등을 통해 상당한 자료를 확보했다. 내부적으로는 해당 업체들이 독성물질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제조·판매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SK케미칼의 경우, 시중에 판매되는 가습기 살균제 원료의 90% 이상을 공급해왔다. 이 원료의 핵심 성분은 이미 2000년대 초에 호주나 미국에서 독성물질로 판명이 난 상태였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아무런 제재 없이 판매됐다. 오히려 SK케미칼은 1994년 제품 출시 당시 ‘인체에 무해하다’고 발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검찰 조사에서 이 부분이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사 본격화되자 일부 기업 물밑 합의 시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현재 제조업체가 인체에 해로울 수 있는 화학성분에 대해 안전성 실험을 하지 않고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했다는 내부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회사 제품의 겉면에는 ‘살균 99.9% 아이에게도 안심, 인체에 안전한 성분을 사용해 안심하고 쓸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옥시 측이 유해성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검찰은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피해 가족들은 살균제 제조·판매업체들 임원 모두에게 살인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업체가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원료의 유해성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가 수사의 관건”이라며 “해당 업체가 유해성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제품의 안전성을 사전에 면밀히 조사하지 않았다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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