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보호와 아동 학대
  • 최재경 | 법무연수원 석좌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3.31 18:51
  • 호수 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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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일본 여성지 여론조사 결과, 일본 역사상 끔찍한 악당 3위에 에도 막부 5대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川綱吉)가 뽑힌 일이 있었다. ‘이누쿠보’(犬公方·개 쇼군)로 불리고, 2004년 후지TV에서 <도쿠가와 쓰나요시-개라고 불린 남자>라는 사극이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니 일본에서는 유명한 인물이다.

 

임진왜란 이후의 일본 중흥기 겐로쿠(元祿) 시대(1688~1703)를 이끈 통치자가 악당이 된 이유는 그가 만든 동물보호법 때문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그는 40세가 넘어도 아들을 얻지 못하자 살아 있는 생명에 자비를 베풀면 후사를 얻으리라 믿고 동물 보호에 집착했다. 1687년 ‘생류연령’(生類憐令·살아 있는 것을 가엽게 여기라는 법령)을 시행했는데 동물 특히 개에게 상처를 주거나 학대하는 것을 엄벌하는 법률이었다. 개를 때리거나 죽이는 건 당연히 금지됐고 물고기·뱀·쥐 등에 상처를 입혀도 처벌했다. 닭·조개·새우 요리까지 금하더니 급기야 어떤 생물이든 다치게 하면 처벌하게 됐다.

 

자식의 병을 고치려고 제비를 잡아 먹인 아비가 처형되고 개나 고양이를 죽였다가 도망가거나 처형된 사람이 1만명에 이르렀다니 백성들의 고초는 이루 형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물은 불쌍하게 여겼지만 인간을 연민하지 못한 쓰나요시는 결국 아들을 두지 못한 채 폭군으로 죽었고 이 법도 곧 폐지됐다.

 

요즘 뉴스를 보기가 무섭다. 원영군 사건을 비롯해 차마 듣기조차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국 초등학교의 장기 결석 아동을 전수조사한 결과 행방불명인 어린이가 19명이나 된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사람에게는 본래 어린이나 동물과 같이 약한 존재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한·중·일 등 동양의 고대 형법에 ‘삼자(三刺)·삼유(三宥)·삼사(三赦)’의 기본 원칙이 있었다. 형사재판에 따로 변호사가 없으니 약자인 피고인을 위해 ‘사자(司刺)’라는 직분을 두고 세 가지 원칙을 무기 삼아 피고인을 보호한 것이다. ‘삼자’는 형벌을 정함에 있어 ‘①관료, ②아전, ③백성들의 의견을 물어봐서 참고하라’는 것이고 ‘삼유’는 ‘①불식(不識·어리석거나 못 배워서 모르고 저지른 죄), ②과실(過失·실수), ③유망(遺忘·깜박 잊고 저지른 잘못)’을 용서하라는 것이며, ‘삼사’는 죄인이 ‘①유약(幼弱·8세 미만), ②노모(老?·80세 이상), ③준우(蠢愚·백치 등 심신장애)’이면 풀어주라는 것이다. 고대 전제국가의 형사 절차에도 약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배려하는 측은지심이 제도화돼 있었던 것이다.

 

 

세상이 바뀌면서 인간의 본성도 함께 변한 것인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은 끔찍하게 아끼고 위하면서 정작 어린이나 노인처럼 약한 인간을 학대하거나 위험에 방치하는 사례가 급증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동물 보호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아동과 노인을 지키는 데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겠다. 우리가 일본 중세의 폭군 쓰나요시의 시대를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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