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면 젊음과 추억을 만난다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6.04.0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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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지켜온 노포(老鋪)들

젊음이 느껴지는 대학가에서 어제와 오늘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이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젊은 시절의 추억을 선사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말로만 들어왔던 과거를 직접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오래된 노포(老鋪)들이다.

1500여 장의 클래식 LP판과 턴테이블이 지나온 세월을 말해준다.


■ 대학로 학림다방

60년의 긴 시간 동안 서울 대학로를 지키고 있는 곳. 손때 묻은 LP판과 오래된 턴테이블을 통해 추억의 클래식을 감상할 수 있는 이곳은 혜화역 3번 출구에 위치한 ‘학림’이다. 여대생들이 모여 앉아 커피에 케이크를 먹는 대학가의 일반적인 카페와 달리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연령대가 다양하다. 60대 어르신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과 그 옆 테이블에서 신입생으로 보이는 앳된 학생들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모습이 ‘학림’이기 때문에 어우러진다.

지금은 관악구로 이전한 서울대 캠퍼스가 당시에는 이 곁에 있었다. 반세기가 넘는 긴 시간 동안 거쳐 간 인물도 많다. 천상병·이청준·김지하 등 많은 문학가가 클래식 음반을 나눠 들으며 글을 적었다. 김승옥·황석영 작가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그 시절을 증명하듯 1500여 장의 LP 음반이 벽에 빼곡히 꽂혀 있고, 클래식의 섬세한 선율을 담아내는 스피커 역시 지나온 세월을 가늠케 할 정도로 오래됐다. 1층 구석자리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무엇인가를 써내려가던 한 어르신이 쑥스러운 듯 종이를 뒤집었다. 그는 “문학을 하는 친구들과 자주 오던 곳이었는데 다들 떠나고 나만 남았다. 그 친구들이 생각날 때마다 한 번씩 혼자 오는데 가끔 시를 쓸 때가 있다. 실력이 안 돼서 보여주기는 쑥스럽다”고 했다.

젊음과 연륜이 공존하는 학림. 역사와 함께 세월을 보낸 낡은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나무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복층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마치 다락방 같은 공간이다. 화려한 인테리어로 무장한 대형 카페들이 주변에 생겨나는 상황에서도, 학림은 일어서면 머리가 닿을 듯한 좁고 낡은 공간을 지키며 오래된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는 한 커플이 나란히 앉아 작은 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다. 2층 두 번째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40대 여성 손님 3명은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만나 연극을 보고 싶어 대학로를 찾았는데 학림에 꼭 다시 와서 비엔나커피를 마셔보고 싶었다는 이들에게서 여고생의 즐거움이 느껴졌다.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여기가 생각났다고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인기를 얻은 후 커피 위에 부드러운 크림을 얹은 비엔나커피는 다시 학림의 베스트 메뉴가 됐다.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등장하는 오래된 다방도 이곳이다. 도민준 역의 김수현이 앉았던 창가 쪽 자리는 이미 명물이 됐다. 한류 열풍을 타고 관광을 온 외국인들에게 이 자리는 꼭 앉아야 하는 테이블이다.

나그네파전의 역사를 설명하는 1991년의 신문 기사.
나그네파전의 전경. 허름한 가게지만 추억을 찾아 방문하는 이가 많다. ⓒ 시사저널 최준필


■ 고려대 나그네파전

1987년 고려대 앞에 자리 잡은 파전집이 있다. 경희대·한양대에 이어 고려대 앞에도 이름이 같은 파전집이 문을 열었다.

삼형제가 운영하는 ‘나그네파전’이다. 평일 이른 저녁에 찾은 이곳에는 학교 점퍼를 입은 학생들이 한 테이블, 신입생으로 보이는 커플이 한 테이블을 이미 차지하고 있었다. 옆에서는 ‘졸업한 지 오래돼서 학번도 까먹었다’는 중년의 졸업생들이 고추튀김에 막걸리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예전에 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비 오는 날에는 파전’이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손님들은 허름한 가게 앞에 비를 맞으면서 20~30분씩 줄을 선다. 오징어와 새우 등 해산물을 듬뿍 넣고 부친 이곳 파전은 다른 곳에 비해서 크고 두툼하다. 그러나 20여 년 전 파전은 이와 비할 수 없게 컸다고 한다. ‘같은 값이면 파전 하나만이라도 배불리 먹여야겠다’고 생각한 사장님이 보통보다 3배 이상 큰 파전을 구웠기 때문이다. 명절에 집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밥을 먹을 데가 없다는 생각에 ‘연중무휴’라는 원칙도 세웠다.

고려대 92학번 윤형근씨는 “지금은 파전의 두께와 양이 많이 줄었는데 당시에는 양이 많아 식사 대용으로 먹으려고 많이 갔다”고 나그네파전에 얽힌 추억을 털어놓았다. 그는 군대 첫 휴가도 나그네파전에서 친구들과 함께했다. 휴가 첫 번째 날 군복을 입은 채로 찾은 그곳에서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다 취한 그를 친구가 업고 집에 갔다.

아무리 큰 파전이라도 여러 명이 가면 부족했다. 당시엔 4000원도 안 하던 파전이었지만 여러 개를 시키자니 학생들 주머니 사정으로는 부담스러웠다.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이 나가면 남은 파전을 가져와서 먹기도 했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주인아저씨가 안주를 치우기 전에 얼른 가져오라”고 했다. 고려대의 막걸리 문화도 나그네파전을 통했다. 생일을 맞거나 기념일이 있는 사람들에게 사발로 막걸리를 먹이는 일명 ‘사발식’도 이곳에서 이뤄졌다.

녹두거리에 위치한 녹두호프. 악보집과 통기타가 놓여 있다.
서울대 학생들이 '녹홉이모’를 위해 개최한 생일파티 홍보 포스터. ⓒ 시사저널 최준필·서울대 미학과·교육학과 학생들 제공

서울대 녹두거리 녹두호프

갓 입학해 녹두거리의 술집을 누비는 대학생들에게 ‘이모’라고 불리는 한 사장님이 있었다. 지금은 조금 화려해진 녹두거리에서 옆으로 한 골목을 비껴 들어가면 빨강과 초록의 조명이 얼기설기 빛나는 지하 호프가 하나 있다. 그곳에는 아직 ‘이모’가 계신다. 이 호프집의 이름은 ‘녹두’다.

23년이 넘은 이곳에서는 민중가요가 흘러나오고 악보집이 테이블 옆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그 앞에 놓인 통기타 두 대는 간혹 누군가의 노래에 동참하기도 한다. 낡은 지하 계단을 따라 내려간 녹두호프에서 이모는 “밥 먹었느냐”고 첫인사를 건넸다. 저녁을 아직 못 먹었다는 졸업생들의 테이블에는 메뉴판에도 없는 김치볶음밥이 놓였다. 안주로 뭘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은 낙지볶음이 맛있다며 주방으로 들어가 낙지를 볶는 이모에게 “오늘은 왜 노래가 안 나오느냐”고 물었다. “애들이 CD를 막 꺼내다가 기계가 고장이 났어”라고 대답하면서 학생들의 이름을 줄줄 읊는다.

운동권 학생들이 많이 찾았다. 벽에 적힌 ‘자주·민주·평등’ ‘가장 민중적 노선’ ‘사회주의의 소굴에서 서로의 이상을 나누다’ ‘NL의 시대는 다시 온다’ 등의 문구가 녹두호프의 역사를 가늠케 했다. 신입생들이 선배들의 손에 이끌려 갔던 첫 번째 호프집이라는, 군 입대 전 마지막 환송회를 했던 곳이라는 졸업생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서울대 95학번인 한 졸업생은 “사실 운동권이 아닌 학생들도 즐겨 찾았다. 1차를 마치고 가기 좋은 곳이었다. 재미있으라고 양주병에 보리차를 넣어 물병으로 서빙해주신 것도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일주일에 몇 번씩 녹두호프를 찾았다는 서울대 졸업생 전현수씨는 가게의 분위기와 이모의 편안함을 녹두호프 단골이 된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기타를 치며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에서, 이모가 자신 있게 추천하는 8000원짜리 닭볶음탕을 저녁으로 먹으며 친구와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이곳은 서울대생들에게 단순한 술집이 아닌, 대학 시절의 추억부터 앞으로의 추억까지 일명 ‘녹홉이모’와 함께 만들어가는 특별한 공간이 됐다. 2014년에 연 이모의 환갑잔치에 이어, 지난해 9월에 또 다시 이모의 생일파티가 열렸다. 녹두호프에서 인연을 맺게 된 서울대 미학과와 교육학과 02학번부터 12학번 학생들이 모여 생일파티를 주최했다.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가게 앞에 걸렸고, 서울대 사범대 노래패 ‘길'과 서울대 법대, 자유전공 노래패 '동맥’이 축하 공연을 했다. 학생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모은 녹두호프와 이모의 사진을 가게에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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