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이 반격했으니 이제는 ‘배트맨’이 쇄신할 차례
  • 이은선│매거진 M 기자 (.)
  • 승인 2016.04.0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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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으로 보는, ‘마블’에 대한 ‘DC’의 방향성

2000년대 들어 전 세계 극장가에서는 쫄쫄이 슈트를 입은 슈퍼히어로들의 격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양상은 한층 더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렇게 많이 쏟아지고도 더 나올 슈퍼히어로 영화가 있느냐고? 물론이다.

이번에 개봉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이야기부터 해보자. 제목부터 위용 넘치는 이 블록버스터는 단발성 프로젝트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저스티스’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물론 배트맨(벤 에플렉)과 슈퍼맨(헨리 카빌)의 대결은 그 자체로 거대한 볼거리다. 그러나 단순히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떠올렸을 궁금증, 그러니까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에 대한 대답만을 내놓기 위해서 나온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엄밀히 말하면 이 싸움은 두 히어로가 손을 잡고 하나의 팀으로 뭉치는 계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배트맨과 슈퍼맨이냐는 의문을 풀 차례다. 답은 간단하다. 이들이 ‘DC 코믹스’의 간판스타이기 때문이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마블 코믹스’에 캡틴아메리카·아이언맨·토르·스파이더맨·엑스맨 같은 걸출한 히어로 집단이 있다면, DC에도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 등을 필두로 한 최강의 히어로 군단이 있다. 이들의 전쟁은 영화 이전에 코믹스 시절부터 이미 진행 중이었다. 시작을 열어젖힌 건 DC였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이미 1930년대에 탄생한 코믹스 히어로의 ‘고전’이다.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에 있는 슈퍼맨은 자애롭고 전지전능한 캐릭터였으나, 대공황의 여파와 갱단이 들끓는 무법천지 상태의 1930년대 미국에는 조금 다른 유형의 영웅이 필요했다. 부당한 사회에서 악을 철저하게 응징해줄 수 있는 어둠의 캐릭터. 1938년 배트맨이 그렇게 탄생했다.

‘DC’와 ‘마블’의 코믹스 전쟁사

그러나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코믹스의 세계도 조금 시들해졌다. 전쟁을 겪은 인간의 현실에 환상으로 빚은 영웅이 설 자리는 없었다. 이때부터 마블 코믹스의 스파이더맨 같은 ‘현실적 히어로’들이 판도를 바꿨다. 스탠 리가 이끄는 마블이 승승장구하자, DC는 프랭크 밀러를 영입하며 맞불을 놓았다. 그는 배트맨의 세계관마저 새롭게 창조하는 과감함을 발휘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에 큰 영향을 미친 <배트맨: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배트맨: 이어 원>이 밀러의 솜씨다. 

코믹스의 역사에 비해 슈퍼히어로 영화의 역사가 조금 늦게 시작된 이유는 기술 발전이 코믹스의 상상력을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건 DC와 마블의 스크린 전쟁이 코믹스 라이벌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왔다는 점이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역사는 코믹스와 마찬가지로 ‘DC의 출범 - 마블의 반격 - DC의 쇄신 및 방어’로 이어진다. 1951년 리 쇼렘 감독은 최초의 슈퍼맨 영화 <슈퍼맨과 모울맨>을 선보였다. 하지만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본격적 시작점으로는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1978년)을 거론해야 옳을 것이다. 마블은 한 발짝 늦게 <캡틴아메리카>(1990년)를 내놨지만, TV 시리즈보다 못하다는 혹평에 시달렸다.

반항적인 마블 히어로, 진중한 DC 히어로

2000년대 들어 마침내 마블의 반격이 시작됐다. 2008년 <아이언맨>을 필두로 헐크, 캡틴아메리카, 토르까지 성공적으로 선보인 후 <어벤져스>라는 초유의 대박 프랜차이즈를 터뜨린 마블은 ‘따로 또 같이’ 전략을 구사하며 자신들이 보유한 히어로들을 차례차례 선보이고 있다. DC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으로 한 발짝 늦게 그 길을 열어젖히는 중이고 말이다.

DC 슈퍼히어로 영화를 걸작의 경지에 올려놓은 건 뭐니 뭐니 해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이다. 이 영화에서 느껴지던 무게감은 전적으로 연출의 공이 크지만 태생적으로 영웅이거나 영웅이 될 자질이 충분한 DC의 캐릭터를 영화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배트맨은 처음부터 영웅으로 태어난 게 아니었다고? 물론 맞다. 하지만 그의 정체가 상상을 초월하는 재력을 가진 진중한 캐릭터 브루스 웨인임을 떠올려보라. DC의 슈퍼히어로들이 웅장한 클래식을 연상케 한다면, 마블의 캐릭터들은 누구라도 무난하게 좋아할 수 있는 인기 팝 같은 느낌에 가깝다. 느닷없이 거대한 힘을 갖게 된 철부지 청년 스파이더맨이나 좀도둑 취급을 받다 딸을 위해 영웅이 된 앤트맨 같은 히어로들은 DC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들이다.

그렇다 보니 현실 세계와의 접점을 찾아 새롭게 변형하는 데는 마블의 캐릭터들이 더 용이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워너 브러더스’와 손잡은 DC가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잭 스나이더처럼 자사(自社)에서 검증된 감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반면, 마블은 상대적으로 신인 감독을 기용한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점이다. 감독의 성향이 상대적으로 더 진하게 드러나는 DC의 히어로 영화와 철저한 통제 아래 캐릭터의 성격을 거의 그대로 살리는 방식을 고수하는 마블의 히어로 영화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다.

DC는 슈퍼맨·배트맨·원더우먼·아쿠아맨 등 자사의 인기 히어로들이 총출동하는 <저스티스 리그> 1편을 2017년에 선보이고, 2년 후 2편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사이 원더우먼과 더 플래쉬, 아쿠아맨의 개별 프로젝트들이 차례로 나온다. 마블 역시 4월 말 개봉하는 <캡틴아메리카: 시빌 워> 이후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팬더> 등 개별 히어로 프로젝트와 <어벤져스: 인피니트 워> 1·2편 등 2019년까지 라인업을 빼곡하게 갖춘 상태다. 진중하고 웅장한 DC의 히어로들과 소시민적이고 반항아 기질이 다분한 마블의 히어로들. 이 양대 진영의 라이벌 구도는 적어도 2020년까지는 유지될 전망이다. 그러려면 배트맨과 슈퍼맨,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까지 진두지휘하는 잭 스나이더 감독이 좀 더 힘을 내줘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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