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4·13’ 제3지대론이 뜬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4.13 17:33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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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성적표 따라 출렁이는 여야 정치권
3월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출판기념회에서 정의화 국회의장,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오른쪽부터)가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157석, 130석, 40석, 두 자릿수 이상 의석.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국민의당 그리고 정의당 등 주요 정당이 목표로 내세운 4·13 총선 예상 의석수다. 4월13일 밤, 20대 국회의원 선거 최종 성적표가 나온다. 이날 여야가 받아들 4·13 총선 성적표는 1년 8개월 후에 치러질 2017년 대선 국면까지 여야 정당들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총선 후폭풍은 ‘정계 개편’이라는 형태로 표면화할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받아든 총선 성적표에 따라 여야를 막론하고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한 차례 더민주와 국민의당으로 쪼개졌던 야권의 분열은 새로운 형태로 전이될 수 있다. 공천 과정에서 ‘옥새 전쟁’ 등 계파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았던 새누리당 역시 정계 개편이라는 큰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여권發 ‘제3 정치세력화’ 현실 되나

이른바 ‘포스트 총선’ 국면에서 현실화할 수 있는 여권발(發) 정계 개편 시나리오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최근 언행과 맞물려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 공천 파동을 겪으면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발언을 쏟아내 주목을 받았다. 국회의장 취임 후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신분이었던 정 의장은 “이미 사당(私黨)화된 새누리당으로 돌아갈 생각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정 의장의 폭탄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복당 거부와 함께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정 의장은 “지금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보여주는 정체성이라면 나라가 밝지 않다”면서 “나는 새로운 정치판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 괜찮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정치 결사체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 의장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임태희 전 의원 선거사무실을 방문하는 등 비박계를 우회 지원하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정 의장 측은 “개인적인 자격의 방문”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PK(부산·경남) 출신인 그가 향후 대권을 염두에 두고 여권발 정계 개편을 차곡차곡 현실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정 의장의 측근인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이 그동안 여야를 아우르는 ‘연합 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만큼 기존 여권과 야권의 ‘합리적 중도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시도로 풀이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 의장이 주장하는 제3의 정치 세력화가 여권발 정계 개편의 마중물로 작용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라는 관측도 나온다. 결국 여권발 정계 개편의 필수 조건은 새누리당 탈당파들의 향후 거취다. 새누리당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현역 의원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 등 11명에 이른다. 이들 상당수가 당선돼 원내로 복귀한다면, 복당 문제가 자연스럽게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탈당파들의 복당에 대해 친박계가 반발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복당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총선 결과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안정적인 의회 운영까지 담보했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당내 친박계가 반발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위해서도 결국 탈당파 수혈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굳이 탈당파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성적표를 받아든다면 여권발 제3지대론은 다시 탄력을 받을 개연성이 크다.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 탈당파들의 복당 논란이 매듭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되면 그만큼 여권발 정계 개편의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유승민 의원 등의 복당에 부정적인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의중을 당이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반영돼 있다. 대선 국면이 다가올수록 청와대의 힘은 빠질 수밖에 없지만, 박 대통령은 당내 비박계가 여전히 무시하지 못할 현재 권력이다. 정 의장과 교분을 갖고 있는 야권의 한 인사는 “정 의장이 사석에서 의장 퇴임 이후 정치적 포부를 밝힐 정도로 대권 도전에 대한 의지를 상당히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도 “일종의 아이디어 차원인지, 아니면 구체적인 전략이 있는지 여부가 향후 여권발 정계 개편의 중요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4월8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윤상원 열사의 묘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의당 善戰 여부에 따라 야권 개편 본격화

‘포스트 총선’ 국면에서 진행될 정계 개편은 야권에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국민의당 창당으로 한 차례 정계개편을 이뤘던 야권에선 총선 이후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의 움직임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변수는 3당 체제의 한 축인 국민의당의 선전(善戰) 여부다. 현재 국민의당은 더민주와 야권의 심장부인 호남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에 대한 호남 민심의 부정적인 기류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으면서 국민의당이 새로운 호남의 맹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반대로 자신의 전통 지지 기반인 호남을 국민의당에 빼앗긴다면 더민주의 입지는 더욱 좁아들 수밖에 없다. 이는 야권발 정계 개편의 주도권이 국민의당으로 옮겨간다는 의미다. 국민의당이 중도 노선 강화를 기치로 내걸고 새누리당과 더민주 이탈층을 흡수하는 제3지대론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국민의당 내부에선 총선 이후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외연 확장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박주선 국민의당 최고위원은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선거 이후에 건전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합쳐지는 빅뱅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국민의당이) 교섭단체 이상 의석수를 확보해 적어도 3당 체제로 가게 되면 건전한 진보와 합리적 보수가 융합해서 중도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건전 정당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더민주가 총선 패배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을 경우, 당은 총선 이전의 복잡한 양상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김종인 대표 체제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김종인 카드’를 꺼내들었던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당내 비토도 커질 수 있다. 당내 친문(親문재인)과 비문(非문재인) 세력이 문 전 대표의 대선 출마 문제를 두고 대립하면서 다시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제2의 분당 사태가 나타날 여지도 없지 않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그동안 더민주 내부에서 계파 갈등이 반복돼 왔지만 분당 사태 와중에서도 계파 간 힘의 균형은 어느 정도 잡혀 있었다”면서 “국민의당이 야권 개편의 주도권을 거머쥔다면 계파 간 힘의 균형도 깨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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