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울타리’에서 짐승으로 변한 어른들
  • 정락인│객원기자 (.)
  • 승인 2016.04.14 18:43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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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아동학대 사망 사건 뒤 드러난 ‘막장 드라마’점점 심각해지는 친족 성폭행 실태

50대 형부에게 성폭행 당한 20대 처제가 아이를 낳았고, 조카로 키우다가 학대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숨졌다. 그런데 처제는 형부의 성폭행으로 낳은 자녀가 2명 더 있었다고 진술했다. 한편의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 같은 현실이 실제 벌어졌던 것이다.

경기도 김포경찰서는 3월17일 폭행치사 등의 혐의로 A씨(여·27)를 긴급 체포했다. A씨는 이보다 이틀 전 김포시 통진읍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조카 B군(3)의 배를 5차례 발로 걷어차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숨진 조카는 형부의 성폭행으로 인해 낳은 친아들이고, 형부와의 사이에서 자녀 2명을 더 낳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조카 5명의 DNA 검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이 중 3명이 A씨와 형부 C씨(51) 사이에서 낳은 자식인 것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형부 C씨를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으로 구속했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세 살짜리 조카의 배를 수차례 발로 걷어차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이모 A씨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위해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에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C씨는 태어난 지 2개월 된 막내아들 등 총 5남매를 뒀는데, 이 중 셋이 처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던 것이다.

이번 사건처럼 형부가 처제를 성폭행하는 것은 방송의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소재다. 그러나 실상에서는 이보다 더한 경우, 즉 ‘친족’이나 ‘친족관계’에 의한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드러난 ‘친족 성폭행’ 빙산의 일각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진태 의원(새누리당)이 공개한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사범 접수 현황’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에 친족관계에 의한 성폭력사범 접수 건수를 보면 2005년에 190건이었던 것이 2010년에는 369건으로 늘어났고, 2014년에는 564건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6월까지 244건에 달했다.

이처럼 친족 간의 성폭력이 10년 사이에 3배로 증가했지만 검찰의 기소율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었다. 2005년의 경우 기소율이 66.4%(276건)에 달했지만 2014년에는 48.6%로 떨어졌다.

‘친족 성폭력’은 ‘가정’이나 ‘가족’ 안에서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다 보니 실제 범죄 피해를 입어도 신고하거나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사건화한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더 많다는 뜻이다.

최근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자신의 딸을 수차례 성폭행하고 학대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등) 등으로 A씨(49)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2014년 7월과 9월쯤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집에서 딸 B양(당시 15세)을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울산지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신민수)는 내연녀의 10대 딸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 아무개씨(65)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남씨는 자신의 집에서 TV를 보고 있던 내연녀의 딸 A양(당시 11세)의 뒤로 다가가 가슴을 만진 후 침대방으로 데려가 한 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남씨는 내연녀가 외출한 틈을 타 2014년 6월19일까지 총 5차례에 걸쳐 A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다.

현행법상 친족관계의 성폭행은 가중처벌된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5조에는 ‘친족관계인 사람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폭행을 저지르면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돼 있다. 형법상 성폭행을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한 것과 비교하면 형량이 더 무겁다.

지금까지 드러난 친족 성폭행 사건을 보면 친아버지가, 의붓아버지가, 오빠가, 삼촌이, 여기에 할아버지까지 딸이나 손녀를 짓밟았다. 어린 딸 앞에서 짐승이 된 아버지들, 대체 누가 이들을 악마로 만든 것일까.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아버지가 딸을…’이라며 공분한다. 하지만 ‘인면수심’의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 대체 그들은 왜 딸을 성적인 먹잇감으로 삼은 것일까.

지난 몇 년간 발생한 친딸 성폭행 사건을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우선 ‘짐승 아버지’들의 연령대로는 40대가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50대, 30대 순이었다. 이것은 피해자들의 연령대를 짐작하게 한다. 아버지에게 최초로 성폭행을 당한 시점은 ‘초등학생 때’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피해자 30명 중 20여 명이 여기에 속했다. 아직 성(性)에 대한 인지능력이 없을 때부터 아버지의 성폭행에 시달렸다는 얘기가 된다.

아버지 성폭행범들의 범행 수법도 점점 더 대담해졌다. 범행 횟수가 늘어날수록 강도가 세졌다. 처음에는 성추행을 했다가 어느새 직접 성관계를 맺는 단계로 나아간다. 성폭행하기 전에 포르노 영상을 틀어놓고 그대로 따라 하기를 강요하거나 성 보조 기구를 이용한 변태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딸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성노리개’를 키우고 있다고 봐야 한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성적으로 민감한 고등학생 그리고 대학생과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딸도 예외가 아니었다. 또, 한 번 시작된 성폭행은 피해자가 나이 들어도 멈추지 않았다. 이처럼 ‘친딸 성폭행’은 마약과도 같다. 브레이크 없는 전차처럼 제어가 되지 않았다.


 

피해자에게 침묵 강요해선 안 돼

친족 성폭행은 전염성이 강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부전자전’이 통했다. 아버지가 성폭행을 저지르면 아들과 친인척들도 따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친족 간에 ‘암묵적인 합의’가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도 성폭력상담소 사이트나 각종 상담 코너에는 친아버지나 의붓아버지에게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글이 적지 않다.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방적으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다.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일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혼자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일상의 삶은 무너지고 대인 관계 등도 원만하지 못하다. 최악의 경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가정 성폭행을 방치하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 199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보은·김진관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보은씨는 의붓아버지로부터 12년간 성폭행을 당했다. 남자친구가 생겼어도 의붓아버지의 성폭행은 그칠 줄을 몰랐다. 급기야 김보은씨가 남자친구와 함께 ‘성폭행을 멈춰달라’고 하소연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의붓아버지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결국 친족 성폭행이 살인을 부르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 사건은 과거에 묻힌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제2·제3의 김보은·김진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피해자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상담소에 따르면, 피해자를 가해자와 빨리 분리시켜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가 가출한 후 방황하지 않도록 쉼터 등과 연계해야 한다. 피해자 대다수는 가출 이후의 삶이 막막해서 피해를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에는 어렸을 때 삼촌 등 친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후 엄마 등에게 털어놓았지만 외면받은 경우도 있다. 그러면 평생 침묵하며 상처를 안은 채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때문에 가족들은 평소 성(性)과 관련된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또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 되고 언제든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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