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엔 연예인 등장하는데 담배엔 왜 혐오 그림인가?”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6.04.14 18:44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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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업계·흡연자단체 “흡연 경고 그림은 법 위반” 반발 정부 “담뱃갑 상단에 부착”

보건복지부는 3월31일 담뱃갑에 표시할 흡연 경고 그림 시안 10종을 공개했다. 암과 간접흡연 등의 이미지다. 이에 대해 담배업계와 흡연자단체는 혐오감 수위가 법이 정한 한도를 넘었다며 복지부에 정보공개까지 요구한 상태다. 경우에 따라서는 법적 소송까지 진행할 움직임도 보인다.

복지부가 흡연 경고 그림 시안을 마련한 근거는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다. 그 개정안에는 ‘사실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지나치게 혐오감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다. 입법 당시 국회는 ‘담배를 피울 때마다 흉측한 그림을 봐야 하는 것은 행복추구권 침해’라는 이유를 들어 해당 조항을 넣었다.

정부는 혐오감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 시안을 제작한 후 해외 사례와 비교하는 설문조사를 거쳤다. 이 설문조사는 3월16일부터 일주일간 1890명(성인 1200명과 청소년 69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고 외국보다 혐오스럽지 않다는 결과를 얻었다. 게다가 흡연 경고 그림의 크기가 담뱃갑의 30%에 불과한 만큼 혐오감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라는 게 복지부의 판단이다.

보건복지부가 3월31일 공개한 흡연 경고 그림이 혐오감 논란을 넘어 위법성 여부로 번지는 분위기다. ⓒ 시사저널 임준선
ⓒ연합뉴스



“시각적·정신적 폭력행위, 영업 자율성 침해”

그러나 이번에 복지부가 공개한 흡연 경고 그림에는 암 덩어리를 입에 문 구강암 환자 모습 등이 포함돼 있는 등 혐오감 정도가 관련법의 단서 조항을 위반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KT&G·한국필립모리스·JTI코리아·BAT코리아 등 4개 담배 제조사가 속해 있는 한국담배협회 관계자는 “이번 경고 그림 시안은 가장 혐오스러운 그림들을 채택했고, 담배로 인한 질환을 설명하는 그림들의 해당 질병과의 상관관계도 부족하다”며 “경고 그림 시안 선정 절차의 정당성, 혐오도의 적절성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법적 대응 등 여러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반발했다.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의 이연익 대표도 “외국의 가장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들과 시안을 비교해, 그에 비하면 혐오 정도가 낮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며 “공포감만 조장하지 말고 해외의 평균적인 이미지를 분석하는 노력뿐만 아니라 흡연자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흡연 경고 그림의 부착 위치도 논란이 되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담뱃갑의 앞면과 뒷면 상단에 흡연 경고 그림을 게재하고 담배 진열대에도 잘 보이도록 비치해야 한다. 전국 편의점과 슈퍼마켓 등 담배 소매상 종사자 13만명이 회원으로 있는 한국담배판매인회는 즉각 반대 성명을 냈다. ‘혐오스러운 흡연 경고 그림을 담뱃갑 상단에 의무적으로 배치하여 판매점 진열을 강제하는 것’은 담배 판매인의 영업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내용이다. 우제세 한국담배판매인회 회장은 “현재 협회에 등록된 담배 소매상은 13만여 명이지만, 그 가족들과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까지 포함하면 담배 판매와 관련된 당사자는 100여 만명에 달한다”며 “이들이 담뱃갑 상단에 부착될 끔찍한 그림으로 매일 정신적 고통을 받아야 하는 문제도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판매점주 또는 점원 대다수가 여성이나 노약자, 청소년 등인 상황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판매점에 진열된 담뱃갑 경고 그림에 24시간 노출됨으로써 받는 정신적 고통이 크다는 점도 강조했다.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대생 이 아무개씨(22)는 “담배를 자주 진열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손님들에게 건네주고 있어 담뱃갑에 들어갈 경고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며 “이번에 공개된 혐오스러운 그림을 계속 보면서 그것을 내 손으로 손님들에게 건넬 생각을 하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복지부가 흡연 경고 그림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는 것은 금연 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한 근거는 캐나다 연구에서 흡연 경고 그림으로 흡연자가 될 확률이 12.5% 낮아졌고, 호주에서도 비흡연 청소년의 3분의 2 이상에 흡연 예방 효과가 있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관련 의료비 절감 등을 고려할 때 경제효과도 최대 4조원에 이를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경고 그림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고하는 가장 효과적인 담배 규제 정책으로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을 널리 알려 흡연율 저하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최종 결정까지 조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혐오 그림, 흡연율 감소 효과 거의 없어”

이에 대한 담배업계와 흡연자단체의 반대 논리도 거세다. 임영묵 한국담배협회 사무국장은 “정부가 흡연 경고 그림 도입 사례로 들고 있는 캐나다의 경우, 도입 전 5개년 평균 흡연 감소율이 1.0%포인트에서 도입 후 5년간 감소율 0.4%포인트로 흡연 경고 그림을 도입하기 이전의 흡연 감소율(1%포인트)보다 감소폭이 오히려 둔화했다. 브라질의 경우에도 2002년 흡연 경고 그림 도입 후 2004년과 2008년 그림 강도를 높였지만 흡연율은 2002년 13.5%에서 2009년 13.4%를 기록해 7년 동안 0.1%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쳤다”고 주장했다. 이연익 대표는 “과거 대법원 판례에서도 개인의 흡연과 폐암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고, 담배가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대중적인 기호품이니만큼 담배 소비자의 권리와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은 1월4일 ‘주요 건강위험 요인의 사회경제적 영향과 규제 정책 효과 평가’ 보고서에서 2013년 기준 음주·흡연·비만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산출했다. 분석 결과,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9조4524억원, 흡연은 7조1258억원, 비만은 6조769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보다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다. 게다가 살인·강도와 같은 강력범죄를 유발하는 술에는 경고 그림을 붙이지 않고 오히려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켜 음주를 부추긴다는 게 담배업계의 주장이다. 보건 정책의 효과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임영묵 사무국장은 “흡연 경고 그림 도입 제도는 타 제품들과의 형평성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복지부는 6월23일까지 흡연 경고 그림을 최종적으로 결정해 고시할 예정이다. 담배 제조업체들은 12월23일부터 확정된 흡연 경고 그림을 담뱃갑에 게재해야 한다. 아이러브스모킹은 4월6일 담뱃갑 흡연 경고 그림을 선정한 ‘경고그림제정위원회’의 회의록, 혐오성 관련 설문조사 세부 내용, 결과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를 보건복지부에 청구해놓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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