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의 구태의연함을 깨부수는 비주류 무비 파워
  • 허남웅 | 영화 평론가 (.)
  • 승인 2016.04.14 19:07
  • 호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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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스틸플라워>가 보여주는 ‘저예산 영화’의 존재 이유

대기업의 자본을 등에 업은 제작비 수십억 원대의 영화들은 손해가 두려워 신선한 소재를 발굴하거나 새로운 연출법을 고안하는 대신 흥행 영화의 기존 공식을 그대로 가져가는 게 보통이다.

안일한 기획과 구태의연한 연출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주류 시장의 영화들과 달리 자본과 거리를 둔 독립영화 진영에서는 지금도 흥미로운 영화가 등장한다. 제작비 부족을 신선한 아이디어와 개성 넘치는 배우로 돌파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류에서 외면하는 우리네 현실을 소재로 전에 없던 작품을 만들어낸다. 지금 소개할 <4등>과 <스틸플라워>가 그런 작품이다.

<4등>은 제목과 더불어 포스터의 물속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소년의 모습으로 유추컨대, 경쟁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가치에 대해 말하는 영화 같다. 그렇게 틀린 예상은 아니지만, <4등>은 그보다 더 깊게, 무엇보다 날카롭게 접근하는 작품이다.

영화 의 한 장면 ⓒ ㈜인디스토리

준호(유재상)는 수영이 좋다. 재능도 뛰어나다. 대회에 출전하면 4등만 하는데 그래도 나쁘지 않다. 엄마는 다르다. 순위권에 들지 못해도 헤죽헤죽 웃는 준호를 보면 열불이 터진다. 이래서는 대학 진학은 물론 사람 구실도 못할 것 같다. 특별한 코치가 필요하다. 수소문 끝에 새로운 수영 코치 광수(박해준)를 만난다. 광수는 대회 1등은 물론 대학까지 골라 가게 해주겠다고 호언장담한다. 조건은 하나. 엄마는 연습 동안 수영장 근처에 얼씬도 하면 안 된다.

<4등>, 1등에만 올인하는 풍조에 경종

광수의 말처럼 준호의 실력이, 아니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광수와 만나 처음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간발의 차이로 은메달을 목에 건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엄마는 그날 저녁 온갖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준호를 위해 가족 파티를 연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중, 준호 동생 기호가 분위기를 깨는 한마디를 한다. “형 맞고 하니까 잘한 거야? 전에는 안 맞아서 4등 했던 거야?” 엄마가 준호의 웃옷을 벗겨보니 등에는 시뻘건 멍이 가득하다. 

한국 사회의 1등 집착은 유별나다. 메달권에 들지 않으면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은 당연하고, 2등과 3등도 1등을 하지 못했다며 시상대 위에서 고개를 떨구는 광경은 익숙하다. 결과가 중요하다 보니 동원되는 과정은 수단이 어떻든 정당화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유무형의 폭력을 공기처럼 마셔대고 뱉어낸다.

광수가 준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광경도 끔찍하지만, 1등을 위해서라면 이마저도 감수할 수 있다는 엄마의 태도는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시무시하다. 그런 광경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코치의 폭력을 성적(成績)으로 체화(體化)한 준호는 똑같은 방식으로 동생 기호 위에 군림하려 든다.

<4등>은 <해피엔드>(1999), <은교>(2012)로 유명한 정지우 감독이 연출했다. “폭력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만들어보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인권’을 다루는 작품이되 분위기가 무겁거나 이야기가 어렵지 않다. 메달권, 그중 1등에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엘리트 중심의 한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4등>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출발 신호와 함께 준호는 레인 안에서 경쟁을 벌이기를 그만둔다. 수영장 전체를 가로지르며 자유를 만끽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승자 독식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맘 놓고 즐길 수 있는 자유다.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이 MBC <라디오스타>에 나와 극찬한 배우가 있다. “어마어마한 존재감이다. <어둠 속의 댄서>의 비요크 같은 느낌”이라고 말한 배우는 정하담이다. 정하담은 무명 배우다. <검은 사제들>(2015)에서 소머리를 등에 멘 무당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래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면 <검은 사제들>을 다시 찾는 대신 <스틸플라워>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정하담은 <스틸플라워>에서 ‘하담’으로 출연한다. 그녀는 낡아빠진 캐리어를 질질 끌며 추운 겨울 거리의 식당들을 기웃거린다. 남은 음식을 몰래 먹는 경우도 있지만, 주목적은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다. 연고도 없고, 신분도 불확실한 하담은 가까스로 일거리를 얻는 데 성공하지만 세상인심이란 게 만만치 않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가 하면 만만한 그녀를 희생양 삼아 화풀이를 하는 이도 있다.

세상이 그녀를 속일지라도 하담은 좌절하거나 용기를 잃는 법이 없다.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기 위해 사장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질 정도로 풍진 세상에 맞서는 맷집이 대단하다. 그렇게 얻은 돈으로 하담이 손에 넣는 것은 탭댄스 구두다. 그녀는 틈만 나면 주택가의 아스팔트 위에서 탭댄스를 추며 파도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힘겨운 일상에 맞설 힘을 얻는다. 

영화 의 한 장면 ⓒ ㈜프레인글로벌


<스틸플라워>, 어마어마한 배우를 탄생시켜

<스틸플라워>는 시적(詩的)이다. 제목부터가 그렇다. ‘철의 꽃(Steel Flower)’ 정도로 의역하면 좋으려나. 청춘은 꽃이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젊은이들은 베트남 전쟁 참전을 결정한 기성세대에게 사랑과 평화를 슬로건으로 외쳤다. 그런 젊은이들을 일러 ‘플라워 세대’라고 칭했다. 그 꽃들이 지금 고통받고 있다. 꽃이 잘 자라도록 토양을 다지고 보호해야 할 이들이 되레 짓밟고 꺾는 등의 파렴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자 꽃은 스스로 강철이 되어 자신을 보호하고 세상과 맞서기에 이른다. 하담은 아스팔트 위에 쓰러져 불협화음에 상처 입는 대신 탭댄스 신발을 부딪쳐 자신만의 리듬을 만들어내면서 삶의 꽃을 피워 나간다. 청춘은 슬퍼도 울지 않고 쓰러지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법이다. 그래서 극 중 하담은 별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하담의 연기가 주는 감동은 침묵이되 시끄럽고, 독무대이되 좌중을 압도한다.

이런 소재를 주류 시장에서 취했다면 배우의 입을 빌려 기구한 사연을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었을 테고 그녀의 시련 위로 안 울고는 못 배길 음악을 줄기차게 깔아댔을 터다. 그래서는 새로운 영화가, 어마어마한 존재감의 배우가 생겨날 수가 없다. 2015 마라케시국제영화제에서 <스틸플라워>에 심사위원상을 결정한 심사위원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대부> <지옥의 묵시록>의 감독)는 <스틸플라워>를 이렇게 평했다. “간결하고, 새롭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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