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대약진으로 3당 체제 정립, 순항 여부는 안갯속
  • 김현일 대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4.20 16:56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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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둔 명분 싸움 가열 등 장애물 산적
‘힘 있는’ 제3당으로 우뚝 선 국민의당 지도부.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 등이 4·13 총선 당선인들과 4월15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국민의당 대약진’은 ‘새누리당 참패’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제1당 등극’ 등과 함께 제 20대 총선을 함축하는 키워드다. 국민의당은 호남 28개 지역구 중 23곳을 석권하고 정당 득표 2위를 차지하면서 양당(兩黨) 구도를 일거에 부쉈다. 확실한 ‘3당 정립(鼎立) 시대’를 연 것이다. 자민련(自民聯·자유민주연합)이 사라진 지 16년 만이다. 3당 체제를 포함한 다당(多黨) 체제가 타협 정치를 보장하는 게 아님에도 기대를 거는 것은 최근의 양당 체제가 싸움질을 일삼으면서 비생산의 대명사로 낙인찍혀서다.

‘확실’이란 수식어를 주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국민의당 총선 성적표 때문이다. 비록 의석수는 전국구 13석을 포함해 모두 38석에 불과하지만 정당의 저력이라고 할 득표율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의당은 득표율 26.74%로 636만 표를 얻어 25.54%-607만 표에 머무른 더민주를 압도했다. 새누리당은 33.5%에 796만 표다. 의석수로는 123석을 획득, 원내 제1당이 된 더민주에 훨씬 못 미치지만 지지율 전체로는 국민의당이 한 수 위다. 전국적인 득표율 분포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지만 ‘호남당’이 아님을 확실하게 말해준다. 서울 28%를 비롯해 부산 20%, 대전 27%다. 국민의당 서울 의석은 2개에 불과하지만 득표율에선 서울에서 1위인 새누리당보다 2%p 뒤질 뿐이고, 35석이나 건진 더민주(25.93%)보단 3%p나 높다. 또 경기에서 26.96%, 인천에서 26.87%를 얻어 더민주(26.83%, 25.43%)를 앞섰다. 수도권에서 더민주를 제친 것은 의미심장하다. 국민의당은 새누리당 텃밭인 대구에서도 17.42%를 기록했고 충남북에서도 20%를 넘겼다. 호남 득표율은 좀 더 분명하다. 국민의당은 광주 53.34%를 비롯해 전남 47.73%, 전북 42.79%로 더민주(28.59%, 30.15%, 32.96%)를 완전히 따돌렸다.

정당 득표율 2위…국민적 성원이 최대 무기

더민주로선 본래의 근거지인 호남을 거의 뺏긴 데다가 전국 득표율까지 뒤지므로 큰소리칠 처지가 못 된다. 게다가 어차피 어느 정당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상태라 누구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는 처지이고 보면,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위상은 흔히 말하는 ‘제3당’이 아니다.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때론 정국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탄탄한 메이저급이다. 국민의당이 ‘잘만 하면’ 도약을 담보할 수 있는 지표는 널려 있다. 또한 예상을 뛰어넘은 국민적 성원은 국민의당에 ‘어른스러움’을 기대하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책임감이라는 측면에서다.

총선 직전까지도 국민의당의 이 같은 대약진을 예상하는 전문가는 없었다. 전국구 의석을 합해야 20석 안팎이었다. 호남 지역구 상당수를 차지할 것 같다고 하면서도그랬다. 최대 예상치도 30석을 넘지 않았다. 여기에는 호남권에 대한 더민주의 뿌리깊은 연고 내지 저력을 과대평가한 외에 급조된 국민의당 한계 때문이었다. 좀 더 적확하게는 국민의당 얼굴인 안철수 대표의 정치력이나 리더십에 한계가 빤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태의 핵심을 읽지 못했다. 양당 체제가 빚은 정치에 대한 엄청난 염증이 본질이었음에도 지엽적 변수(變數)에 집착하다가 근간을 간과했다. 국민적 분노의 크기를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양당 구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새누리당과 더민주가 사사건건 치고 받으며 초래한 국정 표류·방치 상황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때문에 국민들의 인내심이 임계선(臨界線)을 넘은 지 오래였음에도 ‘정치하는 사람들’만 몰랐다. ‘호남 싹쓸이’에 그쳤다면 국민의당 대약진을 ‘친노 패권주의’ 추방이라는 명분으로 치장한 지역 이기주의의 발동으로 평가 절하할 수 있다. 하지만 전국 2위의 득표율은 이론의 여지를 없게 만든다.

선거 기간 중 더민주와 국민의당 양당이 광주와 전남북 쟁탈전을 벌일 때 공방 논리의 핵은 ‘호남 자민련’이냐, ‘평민당(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이냐였다. ‘호남 자민련’이란 정권 재창출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적 과실이나 적당히 챙기는 것을 가리킨다. 더민주는 “선거가 끝나면 새누리당에 합류할 수도 있다”며 국민의당을 야권 분열 세력에 불과하다고 공격했다. 집권 의지가 없는 ‘호남 자민련’이라는 것이다. 이에 국민의당 측은 “평민당의 길을 가겠다”면서 야권은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국민의당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었다.

향후 국민의당 행보를 가늠하기 위해선 김대중(DJ) 전 대통령 공동정부 파트너였던 ‘자민련’을 꼼꼼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자민련은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원조 격인 민자당 후신) 대표였던 김종필(JP)이 김영삼(YS) 대통령의 민주계 세력에 의해 ‘팽(烹)’당한 후 신한국당을 뛰쳐나와 1995년3월 창당했다. 탈당 의원 9명 등이 동참하기는 했으나 장래를 기약할 수 없는 한심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해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충청 전 지역의 단체장을 싹쓸이했다. 신한국당 사무총장이던 김윤환 의원의 ‘핫바지’가 소외된 충청민심을 자극한 게 결정적 요인이었다. 1996년 총선에서 자민련은 충청 거의 전역과 대구까지 석권(13석 중 8석)하면서 50석의 제2야당으로 기염을 토했다. 제1야당인 DJ의 새정치국민회의(평민당 후신)가 79석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세력이었다. 이후 이념과 지지층을 전혀 달리하는 DJ와 연합 공천 실험을 성공리에 실시했던 JP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DJP연합을 성사시켰다. ‘정치세계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정치는 무엇이든 가능케 한다’는 격언을 확인시킨 사례다. 그러나 DJ 대통령-JP 총리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민련이 16대 총선에서 17석을 건지고 주저앉으면서 동거는 파경을 맞았다. 충청권 일원에서만 당선자를 내면서 ‘충청당’으로 전락한 자민련은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대권 의지가 애당초 없는 ‘무정란(無精卵)’ 정당의 한계였다. 더민주가 국민의당을 ‘호남 자민련’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나온 비유다.

안철수, ‘호남 자민련’ 아닌 ‘평민당’ 길 걷는다

‘평민당’은 1987년 DJ가 YS 총재의 통일민주당에서 뛰쳐나와 만든 당이다. YS의 대선 후보 단일화를 뿌리치고 나온 DJ는 13대 대선에서 3위에 그쳤고, 민주화에 역행한 인물로 비판받으면서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을 누르고 제1야당에 올라섰다. 득표율은 19.3%로 통일민주당(23.8%-59석)에 뒤졌지만 서울 지역 17석을 비롯한 70석(전국구 16석 포함)을 챙긴 것이다. 여기서 비롯한 곡절이 YS의 3당 합당을 감행케 하는 결정적 계기인데 아무튼 국민의당의 “평민당의 길을 가겠다”는 말에는 ‘호남당’에 머무르지 않고 집권에 적극 나서겠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실제의 총선 결과는 ‘자민련’이 아닌 ‘평민당’의 길을 걷도록 조성돼 있다. 호남의 적자(嫡子)로서 정권 탈환의 중심에 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심에 서는 인물은 현재로선 ‘안철수(安) 공동대표’다. 국민의당이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였지만 安 이름으로 총선을 치른 점을 부인키 어렵기 때문에 일단 安의 목소리가 클 것은 충분히 짐작된다.

평민당을 모델로 할 때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으나 호남이 기반이라는 점에서 安과 DJ는 같지만 다른 요소도 많다. DJ는 호남이 고향이지만 安은 아니다. 따라서 호남 유권자의 DJ 사랑이 연속적·무조건적이라면 安에 대한 그것은 한시적 내지 조건부일 수 있다. 호남 유권자들은 DJ의 후계자로 노무현 대통령을 맞을 때 ‘호남 양자(養子)’ 논리를 동원했으니까 큰 문제는 아니라지만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또한 安에게는 DJ와 같은 카리스마가 없다. DJ가 40여 년의 야당 생활을 통해 온갖 신산(辛酸)을 겪으며 실전 경험을 쌓은 데 비하면 安은 아예 ‘초짜’다.

DJ의 대권 후보 협상 상대는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자민련의 JP였으나, 安의 상대는 덩치가 훨씬 큰 더민주다. 구체적으로 문재인 전 대표건 박원순 서울시장이건, 이번 대구지역 당선으로 각광을 받는 김부겸 예비의원이건 상관없이 ‘큰 집’의 인물과 겨뤄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흡수한 표의 성향과 관련해 더민주 표를 더 많이 가져왔느니 새누리당 표가 더 많았느니 해석도 구구하다. 국민의당이 여기서 새누리당 표를 강조하는 것은 安의 세 확대 가능성이 큼을 말하기 위함이다. 때문에라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安이 여권의 대항마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복잡한 계산마저도 기존의 정치 상황을 그대로 전제한, 정태적(靜態的·static)으로 볼 때의 얘기다. 국민의당이 더민주가 아니라 현재의 여권쪽과 담판을 벌이는 등 갖가지 변수가 등장할 동태적(動態的·dynamic) 현실까지로 확대시킨다면 예측은 무의미하다. 그저 어지러울 따름일 것이다.

20년 만에 부활한 3당 체제를 거론하면서 곧바로 2017년 대선과 연결시켜 운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 국민이 기대하는 화합과 생산의 정치, 이를 위한 국민의당의 조정자·균형자 역할도 결국은 ‘대선 셈법’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눈치나 보며 균형자 역할 못하면 여론 뭇매

사실 제20대 국회가 입법부로서 본연의 기능을 다할지 여부에 대해선 비관론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명분 싸움에 더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기적 요인 때문이다.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오기(傲氣)나 부릴 소지가 다분하고, 그 경우 전개될 모양새는 빤하다. 그 인적 구성도 걱정을 높이는 대목이다. 역대 최악(最惡) 평가를 받는 19대 의원 가운데 146명이나 국회로 돌아왔다. 초선 의원 비중은 전체의 44%(132명)로, 17대 이후 가장 낮다. 여당은 친박-비박 간 권력다툼으로, 야당은 더민주-국민의당 분당 사태로 물갈이도 제대로 못한 탓이다. 새 피를 수혈한다고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으나 그나마 개선 여지마저 사라졌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 조정자가 될 국민의당 자신부터 내부 정리가 안 돼 있다. 선거를 위해 급히 끌어모은 구성원들의 이념과 성향이 제각기다. ‘경제는 진보-안보는 보수’라는 가닥을 잡았다지만 장애는 첩첩이다. 말이 쉬워 합리적 보수고, 선별적 제휴지 간단하지가 않다. ‘호남당’이기에 텃밭의 눈치도 봐야 한다.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 등이 이 같은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우려해 “국민의 눈높이로 판단”한다고 말해 자그마한 안도를 주긴 하지만 지켜볼 일이다. 당장 시험대가 놓여 있다. 창당 초기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등의 처리에서 더민주와 의견을 달리했던 국민의당은 20대 국회 개원 직후 ‘노동 4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맞닥뜨리게된다. 이 과정에서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우왕좌왕하다간 여론의 뭇매를 맞을 소지도 다분하다. 보수-진보 양 진영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국민들로선 새누리당-더민주 양당 정치의 패악(悖惡) 청산을 명분으로 창당했다는 엄중함이 최고의 보증서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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