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이제라도 민심 따르는 모습 보여야
  • 유창선 | 시사평론가 (.)
  • 승인 2016.04.21 19:00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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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은 오만한 대통령과 여당 심판…“야당과의 관계 개선 나서야”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 국민의 이러한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집권 여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다음 날(4월14일) 아침, 정영국 청와대 대변인은 단 두 줄짜리 논평을 내놓았다. 이럴 때면 으레 등장하던 “민심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말 같은 것은 끝내 없었다. 4·13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못마땅해하고 있을 청와대의 기류가 전해지는 광경이었다. 분명 민심은 대통령을 심판하고 ‘새로운 대통령’을 요구했는데, 청와대는 여전히 ‘새로운 국회’를 말하는 동문서답만 반복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참패가 과연 박근혜 대통령과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해 이처럼 남의 일처럼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4월13일 밤 국회 의원회관 투개표상황실에서 당선자 이름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사실 새누리당의 선거는 ‘배신자 심판’을 거론하며 공천에 개입한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친박계가 망쳐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이 다 알다시피, 새누리당의 공천은 박 대통령이 배신자로 규정한 유승민 의원에게 공천을 주지 않고 내몰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 집요한 목적 하나를 달성하기 위해 막장 공천이라는 비난을 무릅쓰며 밀어붙였다. 그 대신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을 대거 밀어넣는 ‘진박(眞朴) 공천’이 진행됐다. 도대체 요즘 세상에 집권 여당이 어떻게 국민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런 공천을 할 수 있는가라는 개탄이 쏟아졌지만, 대통령과 친박계는 주저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전통적 여당 지지층들까지도 등을 돌렸고, 오만한 대통령과 여당에 민심은 심판을 내렸다.

“대통령의 오기가 발동하면 민심은 최악으로…”

그러나 심판당한 박 대통령이 과연 민심의 의미를 제대로 읽고 이제라도 변화된 자세를 보일 것인지는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우리가 보아왔던 박 대통령은 좀처럼 자기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까지 자기만의 확신에 갇혀 민심의 준엄한 명령을 거부한다면,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달라져야 한다.

우선 박 대통령은 몸을 낮추고 야당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야당을 발목 잡기 세력으로만 인식하고 틈만 나면 야당을 비난하는 데만 열을 올려왔다. 그러다 보니 경제가 어려운 것도 정부의 책임이 아니라, 몇 개의 법안에 반대하고 있는 야당의 책임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진풍경까지 빚어졌다. 기본적으로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가 아니라 일종의 국정 방해 세력으로 간주하는 태도였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태도로는 국정을 이끌고 나갈 수가 없다. 여소야대 환경에서 야당의 협조 없이는 단 하나의 법안도 국회를 통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당연히 야당과 대화하며 먼저 손을 내밀어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의견이 다른 문제가 있으면 소통과 설득을 하려고 해야지, 그것을 갖고 일방적으로 야당을 비난하려 해선 안 된다. 정부와 야당의 견해가 다른 것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야당이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 비난받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과연 그 같은 변화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지난 3년여 동안 우리가 지켜본 박 대통령의 모습은 자신의 판단에 관한 한 타협할 줄 모르고 고집하는 외곬형이었다. 소통 불능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유였다. 또한 박 대통령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누구를 향해 몸을 낮추고 귀를 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어쩌면 야당에 정치적 구걸을 하느니 그냥 정면으로 부딪치겠다는 오기를 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대통령의 오기가 발동될 경우 민심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고,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여권 전체의 자멸이 초래될지 모른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야당과 대화하고, 필요하면 그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조금도 어색한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무엇보다 야당을 보는 눈부터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불편하겠지만, 야당과도 친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4월12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박 대통령은 내년 대선 개입할 생각 버려야”

다음으로 박 대통령은 내년 대선에 개입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박 대통령이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얘기는 세상이 다 아는 비밀이었다. 실제로 친박계가 염두에 두고 있는 대통령 후보감으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여러 인사들이 거명돼왔다. 20대 총선의 공천 과정에서 청와대와 친박계가 보였던 모습을 떠올리면 이들이 대선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감을 현직 대통령의 뜻에 따라 좌지우지하겠다는 발상은 온당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박 대통령은 국정을 제대로 챙기는 데 모든 힘을 쏟아도 역부족인 판이다. 집권한 지 3년 2개월이 지났지만 경제, 민생, 남북 관계를 비롯해 무엇 하나 국정의 성과를 보여준 것이 없다. 어쩌면 재임 중 실적이 가장 부진했던 대통령으로 기록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더구나 여소야대 환경에서 국회와 소통하면서 국정을 추진하려면 대선 개입 같은 다른 일에 한눈을 팔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박 대통령이 여당 대선 후보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도 이제는 불가능한 현실이 돼버렸다. 박 대통령 자신이 총선에서 심판을 받은 마당에, 그가 미는 여당 대통령 후보가 등장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그림이겠는가. 임기 이후까지도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연장시키려는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고 차기 대선에선 눈을 떼야 할 것이다.

또한 총선에서 분출된 성난 민심에 대해 박 대통령은 진정성 있는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민심이 대통령을 심판했는데, 그 앞에서 변함없이 ‘새로운 국회’만 말하고 있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국민은 오히려 ‘새로운 대통령’의 모습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 진지하고도 성의 있는 응답을 하는 것이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은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에 부응하는 국정 쇄신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인적 쇄신에 있다. 대통령에게 직언 한마디 하지 못하고 심기만 살피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대통령이 민심을 제대로 파악할 리 없다. 대통령이 자기 진영의 사람들하고만 국정을 논의하는 현실에서는 소통의 협치도 불가능하다. 박근혜 정부의 이념적 편향을 초래한 불균형한 인적 구성을 해체하는 대신, 중립적이거나 야권 성향의 인사까지도 발탁하는 화합형 거국 내각까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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