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기억 심리부검] “하늘나라에서 엄마랑 잘 지낼게요”
  • 서종한 | 프로파일러 (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
  • 승인 2016.04.21 19:12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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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죽음에 절망, 아버지의 외도에 분노

2010년 11월1일 18세 소녀 김연희양이 자신의 주거지 창고에서 이전부터 준비해둔 것으로 보이는 노끈을 이용해 목을 맸다. 그 시간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 저녁께나 돼서야 퇴근한 아버지가 딸의 시신을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 안방에도 자살을 시도한 것 같은 흔적이 여기저기 남겨져 있었다. 침대 위에는 여러 가닥의 전선이, 바닥에는 고무 끈이 조각조각 널려 있었고 목욕탕 옷걸이에는 수건이 매여 있었다.

충남 홍성에 위치한 아담한 전원주택 앞마당에 세워진 가건물의 창고에는 박스와 쓰다 만 가전제품들이 보관돼 있었다. 목 높이의 담벼락이 집을 둘러싸고 있었고 대문을 통과하면 곧장 안채 현관문으로 이어졌다. 앞마당에는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대문은 평소처럼 열려 있었고 안채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았지만 뒷문과 창문은 모두 잠겨 있었다. 부검 중에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버지에게 남긴 유서 한 장이 발견됐다.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유서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리고 자살 직전 남겨놓은 수첩에는 십자가 형태의 수를 놓은 천 조각이 끼워져 있었는데, 하단에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망 당시 연희양은 재수를 하고 있었다. 학원을 갔다 오면 여느 때처럼 집에서 공부를 하다 저녁을 먹고는 다시 독서실로 향했다. 하지만 그날 오전 그녀는 학원을 갔다 온 후 계획한 자살을 실행에 옮겼다.

ⓒ 일러스트 임성구

그녀가 죽은 지 1년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심리부검을 하고 싶다며 직접 연락을 해왔다. 착하고 모범생이었던 딸아이가 그렇게 죽음을 선택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자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고 했다. 필자 또한 그녀의 죽음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터라 충남 홍성으로 내려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친구도 그의 소개로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후향적 자살 사망 경로

어린 시절(13세 이전): 어머니의 사랑

연희양은 둘째로 태어나 어린 시절 언니와 함께 사이좋게 지내며 성장했다. 그녀가 세 살이 되기 전까지 간호사 고시를 준비했던 어머니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 친가와 여동생 집에 번갈아가며 양육을 맡겨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다. 어머니는 사회활동에 헌신적이었고 사교적이어서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간호사 일을 하면서도 두 딸을 데리고 다니며 양로원에서 봉사활동을 자주 했다. 성당에도 열심히 다니며 노숙자나 노인들을 위해 의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녀의 아버지는 검소한 스타일이며 자신의 일에만 신경 쓰느라 가족에게는 무관심했다.

중·고등학교 시절(13~16세): 아픔의 시작

그녀의 성적은 상위권이었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친구들을 폭넓게 사귀지는 못했다. 한두 명 정도 친구를 깊게 사귀는 편이었다. 어머니와는 성당에 함께 다니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학업의 힘든 부분을 어머니와 많이 상의하는 편이었고, 매일 밤 어머니와 집으로 귀가하기 전 근처 ‘해와 달’이라는 전통찻집에 가서 차를 마시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소 몸은 건강했지만 외가 쪽 큰삼촌과 막내 이모가 기분장애를 진단받았던 적이 있었고, 그중 막내 이모는 그녀가 어릴 때 원인 모를 이유로 사망했다. 평소 술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위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했다. 간병을 하던 어머니도 스트레스를 받아 뇌졸중 증세를 보이며 투병을 시작했다.

고3 이후(17~18세): 재수 그리고 어머니의 투병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지만 수능 성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 재수를 결심했다. 당시 어머니는 당뇨와 고혈압 등 합병증이 발병해 건강이 악화됐고 투병 기간 동안 그녀가 언니 대신 어머니의 간병을 도맡았다. 어머니의 치료 예후가 좋지 않아 다른 자연요법으로 치료해보고자 했으나, 치료에 대해 아버지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아버지는 완치를 했고 직장생활을 시작해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같은 직장 동료와 바람을 피우면서 이혼을 몰래 진행 중인 사실을 알게 됐고, 아버지에 대해 심한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

자살 6개월 전 : 어머니의 사망 그리고 우울증

그녀의 어머니가 지병 악화로 갑자기 사망했다. 어머니 사망 이후 수능공부를 거의 하지 못하고 집에서 칩거했다. 가까운 친구들과도 소식을 끊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족들 특히 아버지와는 일절 대화를 하지 않았고 하루 종일 멍한 상태로 집에서만 지냈다. 언니의 권유로 가까운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우울증 약을 복용했지만 심리 치료는 받지 않았다.

자살 1개월 전: 마지막 여행지 정동진

죽기 전 그녀는 ‘절친’인 김아진양을 불러 “함께 해줘서 고맙다”며 선물로 자신이 가장 아끼던 반지를 줬다. 다음 날인 9월1일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정동진으로 갑자기 떠났다. 어머니 생전에 건강해지면 함께 정동진을 찾아가 일출을 보자고 약속한 게 생각나 기차를 타고 갔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언니에게 보고 싶다며 연락을 했다. 정동진으로 올 수 없느냐고 했지만 언니는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갈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연희양은 바닷가에 앉아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밤을 새워가며 마셨다. 흠뻑 취한 그녀는 바다에 뛰어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온 후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계속 복용했는데 자살하기 한 달 전부터는 약을 먹지 않았다.

자살 일주일 전 수능 서적을 정리해 헌책방에 팔았다. 그리고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사는 게 힘들지 않으냐”고 질문했다. 하루 전에는 어머니와 자주 가던 전통찻집에서 차를 마셨고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위해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생일인 11월1일 진주에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고 “건강하게 사시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해제하고 모든 파일을 삭제했다.

남겨진 유서 2장

아버지에게 보내는 유서: “아빠 저 먼저 갈게요. 저 때문에 너무 많이 힘들어하지 마세요. 하늘나라에서 엄마랑 잘 지낼게요. (중략) 행복하게 사세요. 저 아빠 너무 미워하지 않아요.”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유서: “기현아 미안해. 내가 너무 무책임한 것 같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함께해줘서 너무 고마워. 못다 한 우리 사랑 하늘에서 만나 이어가자. 날 잊고 행복하게 살아.”

자살 경로를 통해 확인한 위험요인

위험요인(CHRONIC RISK FACTOR): 그녀는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힘든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는 등 자신의 속내를 잘 보여주지 않았다. 몇몇 친구 외에는 어머니하고만 고민을 나눌 정도로 관계가 폭넓지 못했다. 재수를 했지만 오히려 성적이 떨어졌고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스트레스가 가중됐다. 어머니가 합병증을 보이며 건강이 악화되자 그녀가 간병을 도맡게 됐고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머니가 투병 중인데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났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고,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돼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어머니 사망 이후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고 죽기 전까지 무기력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외가 쪽 친척 중 몇 명이 기분장애를 보이는 등 기질적인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촉발요인(PRECIPITATORY FACTOR): 자신의 유일한 대화 상대였던 어머니의 사망이다. 평소 어머니에게 의지했던 만큼 상실감은 더 컸다. 어머니 사망 이후 기분장애를 앓았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아버지 탓으로 돌리며 분노를 키웠다. 주변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주변 사람들과 철저히 대화를 단절했다. 가족들 속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등 고독과 외로움이 무척이나 컸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 생일에 자살 선택

자살 직전에 유서를 미리 써보거나 정신과 의사에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자살 관념(Ideation)이 존재했다. 과다한 약물 복용이나 알코올 중독 증세(Substance abuse)는 없었다. 사랑했던 어머니가 사망한 후 상실감이 심해졌고 힘든 상황이나 어려움에 대해 상담자 역할을 했던 어머니의 빈자리가 커 삶의 목표를 잃었다(Purposelessness). 수능 공부의 어려움, 자괴감 그리고 어머니가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Anxiety)이 분명히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자신감 상실, 무기력증과 절망(Hopelessness)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드러지게 나타난 부분은 아버지와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는 등 철회(Withdrawal)하는 모습이 역력했다는 점이다. 아버지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껴 험한 말을 하고 물건을 던지는 등 통제력을 잃은 분노(Anger)를 표출했다. 자살할 즈음에는 드라마틱한 기분 변화(Mood change)도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자살에 대한 계획성이 두드러졌다. 아버지가 출근한 시간대에 미리 준비한 끈을 이용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창고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자살 시기는 어머니의 생일인 11월1일을 선택했다. 자살의 치명성과 의도는 강하다고 판단된다.

연희양이 정동진에 혼자 갔을 때 자살의 징후를 주변에서 감지하고 적극적인 대처에 나설 필요가 있었다. 재수 생활을 하며 친구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아버지와의 관계마저 소원해진 상황에서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이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언니와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가족들의 정서적 지지가 아쉬운 대목이다. 우울증 진단 후 임의로 약물을 중단했고 적절한 심리 치료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당시 연희양과 가족을 대상으로 자살 위험 및 우울증에 대한 교육이나 심리 전문가의 상담이 이뤄졌다면 징후를 알고 적절히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재수를 하며 모든 대화를 공부라는 핑계로 미루고 회피했다. 가족 내 청소년들과 부모들의 대화 방법 등의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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