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의 神’ 세븐일레븐 스즈키 회장의 추락
  • 유재순│일본 제이피뉴스 대표 (.)
  • 승인 2016.04.21 19:26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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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승부수 던졌다가 부메랑 맞아

지난 4월7일, 일본 도쿄 시내 이토요카도(堂) 관련 빌딩에서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일본에서 ‘편의점의 신’ ‘유통 비즈니스의 달인’으로 불리는 스즈키 도시후미(鈴木敏文·83) 회장이 자청한 기자회견이었다.

그는 우선 오는 5월 주주총회 전까지 세븐일레븐의 모회사인 ‘세븐앤드아이홀딩스’ 회장직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자신이 이사회에 상정한 세븐일레븐 사장의 해임안이 부결됐기 때문. 그는 부결은 곧 자신에 대한 신임의 거부이기에 물러난다고 밝혔다.

‘일본 유통의 전설’ 스즈키 도시후미 세븐앤드아이홀딩스 회장이 사퇴했다. 세계 편의점 업계를 주름잡는 ‘유통공룡’이 표류하고 있다. ⓒ REUTERS


세븐일레븐, 일본에 처음 도입한 편의점 

이날 기자회견은 다음 날 유수 일간지의 톱뉴스가 됐다. 스즈키 회장은 ‘유통업계의 전설’로 유명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고도성장기에 서민 경제에 파고들어 편의점 신화를 일군 주역이다.

세븐일레븐이 일본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70년대 초다. 스즈키 회장은 유통업체인 ‘이토요카도’ 회사원으로 미국 출장을 갔다가 아침 6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오밀조밀하게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편의점을 보고는 ‘바로 이거다!’ 하고 무릎을 쳤다고 한다. 당시 평사원이었던 스즈키가 맨 처음 세븐일레븐을 일본에 들여오자고 했을 때, 회사 간부 대다수가 “누가 그런 작은 상점에 가서 물건을 사겠느냐”고 반대를 했다. 일본에서 듣도 보도 못한 유통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토요카도의 당시 창업자 이토 마사토시 사장만은 스즈키의 제안이 수익성이 있다고 봤다. 우여곡절 끝에 스즈키에게 ‘세븐일레븐재팬’을 설립하게 했다. 그때의 심정을 스즈키 회장은 “당시 회사 내부에서 너무 반대를 하다 보니 점포 100개만 세워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한 압박감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스즈키 회장과 이토 사장의 판단은 옳았다. 결과는 한마디로 ‘대박’. 특히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나중에는 모기업인 미국 세븐일레븐의 모체 기업 ‘사우스랜드 코퍼레이션’을 거꾸로 이토요카도가 매수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현재 세븐일레븐은 일본 전국에 1만8000개 이상의 점포를 운영하며 일본 전체 편의점 중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매출 또한 지난해의 경우 6001억 엔(6조3000억원), 그중 영업이익은 1800억 엔(1조9000억원)이다. 해외 점포까지 포함하면 전체 매출액은 3조2453억 엔(34조원), 영업이익은 2357억 엔(2조4700억원)이다. 이 같은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스즈키 회장도 출세가도를 달렸다. 일개 평사원에서 세븐일레븐재팬 사장, 1992년에 이토요카도 사장을 거쳐 현직인 세븐앤드아이홀딩스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토 사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욕심이 과하면 반드시 화를 불러오는 법. 그 조짐은 2015년부터 보였다. 자신의 차남을 세븐앤드아이홀딩스 그룹의 이사로 영입한 것이다. 그때부터 계열사 사장들과의 갈등이 심해졌다. 급기야 지난 1월에는 세븐일레븐의 모체 기업인 이토요카도 사장이 스즈키 회장과 사사건건 갈등을 벌이다 사임했다. 그때도 일본 언론은 그가 매사에 독선적이며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을 때 가차 없이 계열사 사장을 갈아치운다고 비판했다.   

스즈키 도시후미 세븐앤드아이홀딩스 회장은 차남을 후계자로 세우려다 역풍을 맞았다. ⓒ REUTERS


차남을 후계자로 세우려다 부메랑

그리고 이번 기자회견 사태가 터졌다. 지난 3월 세븐일레븐의 이사카 류이치(井阪隆一·59) 사장을 일방적으로 해임하려다 이사카 사장이 반발하자, 이 안건을 4월7일 이사회에 정식으로 상정한 것이다. 이날 표결에서 안건은 15명의 이사 중 6명이 찬성하고 7명이 반대, 2명이 기권을 해 과반수에 못 미쳐 부결됐다. 반대표를 던진 이들은 5분기 연속으로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 세븐일레븐의 이사카 사장이 물러날 이유가 없다고 봤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부결된 사실에 충격을 받은 스즈키 회장이 3명의 이사진을 이끌고 돌연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한 시간이 넘는 기자회견에서 이사카 사장을 공개적으로 매도했다. 세븐일레븐이 높은 영업이익을 내는 것은 순전히 자신이 지시해서 내린 경영 방침 덕분이며, 그는 자신에게 물러난다고 약속을 했으면서 후에 이를 번복했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약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이토요카도의 창업자 이토 명예회장도 모든 경영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언론과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특히 1%의 지분도 갖고 있지 않은 전문경영인인 그가 자신의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강제로 계열사 사장을 끌어내리려고 하고, 심지어는 그의 아버지까지 찾아가 압력을 행사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여론은 비난 일색으로 바뀌었다.

‘일본 편의점의 신’이자 ‘유통업계의 대부’는 하루아침에 국민적 비난의 대상으로 추락했다. 그가 이토록 국민적 비난을 받는 것은 전문경영인의 영역을 뛰어넘어 그 자리와 권력을 아들에게 세습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가 지금껏 후계자를 키우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현재 세븐앤드아이홀딩스 창업주 이토 명예회장은 91세로 연로하다. 그는 경영은 전문인이 해야 한다는 철학하에 이미 1990년대에 스즈키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경영권을 물려받은 스즈키 회장은 수십여 년간 독선적으로 경영하며 후계자를 전혀 키우지 않았다. 그나마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도이 이토요카도 사장도 사표를 낸 터라 이제 남은 이는 이사카 사장 혼자다. 일본 언론들은 1년 매출이 수조 엔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 운영은 이사카 사장의 힘만으로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스즈키 회장이 물러난 세븐앤드아이홀딩스 그룹은 새로운 리더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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