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탈출보다 더 신출귀몰한 ‘문어의 탈출’
  • 김형자 | 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6.04.21 19:34
  • 호수 1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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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에서 태평양 바다로 탈출한 문어, 알고 보니 탈출의 천재였네

4월12일 뉴질랜드 네이피어국립수족관에 살고 있던 ‘잉키’라는 수컷 문어가 수족관을 탈출해 바다로 나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럭비공만 한 몸집의 잉키가 탈출 통로로 이용한 건 수족관의 배수 파이프다. 탈출을 감행한 시간은 직원들의 감시가 소홀한, 수족관 폐장 후 불이 꺼진 한밤중이다.

잉키는 빨판을 이용해 수족관 위쪽에 나 있는 틈새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수족관의 바닥으로 내려온 다음 곧장 바닥을 기어 뚜껑이 살짝 열려 있던 배수 구멍으로 커다란 몸을 쑤셔넣었다. 배수 파이프는 지름이 15㎝에 불과해 야구공 하나가 들어가기도 힘든 상태. 하지만 문어는 뼈가 없는 연체동물이라서 새 부리처럼 생긴 입만 들어가면 좁은 구멍도 미끄러지듯 자유자재로 빠져나갈 수 있다.

잉키가 탈출한 길이 50m의 배수 파이프는 수족관의 바닥을 가로질러 인근 바다로 이어져 있다. 잉키는 이 파이프 속을 지나 태평양(뉴질랜드 북부 호크만)으로 유유히 탈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잉키는 2014년 바다에서 어부에게 잡혀 이곳 수족관으로 오게 됐다. 그리고 2년여 만에 스스로 길을 찾아 바다로의 탈출을 시도했다. 그야말로 신출귀몰한 대탈출이 아닐 수 없다. 잉키의 탈출 경로를 조사한 전문가들은 주변의 지형지물을 다 알고 있는 듯이 거침없었던 문어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문어의 지능, 강아지와 동급일 정도로 높아

연체동물인 문어는 두 가지 측면에서 능력이 뛰어나다. 하나는 우리의 눈과 똑같지는 않지만 매우 유사하게 영상을 받아들이는 망막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문어는 감금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는 데 천재적이다. 탱크 위로 올라가고 잠시 공중을 날다시피 한다. 게다가 문어는 ‘무척추동물계의 천재’라고 불릴 만큼 지능이 높다. 보통 강아지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 주변의 도구나 환경을 활용할 줄 안다. 다리로 병뚜껑을 열 수도 있고, 반복 학습에 의해 물체를 집는 일도 가능하다. 심지어 포유동물의 특권이라고 여겨지는 ‘장난’도 친다. 잉키가 수족관을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하나는 뇌의 제어 아래 움직이는 사람의 팔·다리와 달리 문어의 다리는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8개의 다리를 다양한 각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데 뇌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문어의 다리는 잘린 후에도 살아 있을 때처럼 움직인다. 문어 다리에는 자체적으로 사고하는 기능이 있다. 다리의 복잡한 움직임을 조절하는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는 셈이다. 문어 다리에는 5000만 개의 뉴런으로 구성된 정교한 신경계가 빨판이 있는 면의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신경계가 문어 다리를 움직이는 ‘지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문어의 뇌는 단지 다리가 얼마나 이동할지와 같은 단순한 명령을 보낼 뿐, 그 후엔 다리에 있는 지능이 알아서 움직임을 조절한다. 잉키가 좁은 배수 파이프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간 데도 어쩌면 다리 지능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이처럼 연체동물 중 가장 뛰어난 신경 시스템(지능)을 갖춘 문어는 언제나 뭔가를 탐구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씩 뉴스를 만든다. 이번에는 대탈출의 뉴스 주인공으로 등장한 문어. 수족관 구석구석을 탐구하며 미리 주변 환경을 파악해 탈출에 성공한 잉키는 지금쯤 드넓은 태평양에서 행복하게 자유를 누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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