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떼고 포 떼도 당권만은 못 주는데…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4.28 17:40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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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책임론·쇄신파 도전에 입지 좁아지는 친박계

4·13 총선에서 충격적인 참패를 당한 집권 여당 새누리당을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조기 사퇴를 했지만, 선거 패배 책임론을 두고 내홍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내 혼돈 상태가 지속되고, 민심 이반도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 지지도는 곤두박질하는 양상이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한국갤럽이 4월19~21일 사흘간 실시한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총선 직전(11~12일) 조사에 비해 7%포인트 하락한 30%로 창당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이 혼돈 상태에 빠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것은 당 주류인 친박(親朴·친박근혜)계다. 친박계로서는 운신의 폭이 좁아드는 처지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총선 이전만 하더라도 친박계는 총선을 기점으로 당 주도권을 거머쥐기 위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애초의 예상과 달리 친박계가 오히려 궁지에 몰리는 형국이 돼버린 것이다. 

“도무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다. 원래 친박계는 총선이 끝나고 중량감 있는 계파 중진 의원들이 복귀하면 원내 지도부와 당 대표 자리를 접수하고 대권까지 도모한다는 전략을 짜놨다. 그런데 총선에서 이 사달이 났으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대구 진박(진실한 친박) 당선자들도 ‘얼굴도 못 들겠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당권 이야기를 할 처지가 되겠는가.” TK(대구·경북) 출신의 당내 친박계 한 인사가 최근 기자와 만나 한 말이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4월22일 국회 회의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총선 사달 난 판에 당권 이야기할 처지 되나”

박근혜 대통령과 한 호흡을 하는 친박계, 특히 진박 그룹이 포스트 총선에서 갈 길은 명확해 보였다. 총선 이후 펼쳐질 당권 경쟁에서 김무성 전 대표 등 비박계를 단숨에 정리하고 당권을 장악한 후 대선 레이스까지 친박계에 유리한 국면을 형성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일정 정도 총선 이후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정리된 상황으로 보였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8선)이 국회의장을 맡고, 차기 전당대회에서 ‘진박 감별사’로 불리는 최경환 의원이 당권 도전을 한다는 것이다. 향후 대선 국면에서 당내 역학구도를 확실하게 친박계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리는 셈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놓으면 친박계가 주도하는 대권가도는 손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로 모든 것이 이지러진 형국이다. 총선 이후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에서 국회의장 자리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돌아갈 공산이 크다. 새누리당 텃밭인 TK에서 유승민 의원 등 무소속 의원이 대거 당선되는 성적표를 받아든 최경환 의원 역시 선거 패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당권 도전이 만만치 않은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4월19일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한 ‘새누리 혁신 모임’ 의원들이 국회에서 원유철 원내대표와 간담회를 하기 위해 원내대표실로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원유철 비대위 체제’ 몰아낸 쇄신파  

더욱이 김무성 전 대표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원유철 대표 권한대행을 통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유지하려던 친박계의 전략은 당 쇄신파에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친박계로서는 그나마 원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최대한 시간을 끌고 차기 전당대회까지 당 운영의 주도권을 쥔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당내 쇄신 그룹인 ‘새누리 혁신 모임’(새혁모)은 ‘원유철 비대위 체제’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새혁모는 현 원내지도부 임기를 조기 마감하고 차기 원내대표 경선을 치르라고 압박했다.

당내 쇄신 그룹의 영향력 행사는 친박계의 위상 약화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19대 국회 전반을 되돌아보면 친박계 주류에 대해 쉽게 대적할 수 있는 그룹이 전무한 양상이었다. 19대 국회에서는 쇄신파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드문드문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최근 쇄신파의 움직임처럼 당내 친박계와의 힘겨루기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는 평가다 .

친박계 앞에 놓인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이미 쇄신파를 중심으로 친박계의 2선 후퇴론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새혁모 간사인 황영철 의원(강원 홍천군)은 4월20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공천, 경선이나 선거 과정에서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진박이니 친박 프레임, 진영 논리를 펼친 사람들이 있다”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은 이번 지도부 선거에 나오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서 출마가 거론되는 인사들은 심재철·김정훈·나경원·유기준·정진석·홍문종·정우택 의원 정도다. 이 가운데 친박계라고 분류되는 의원은 유기준·홍문종 의원인데, 다양한 입장을 가진 의원들을 아우르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들도 나온다. 차기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할 가능성이 큰 만큼 차기 당권 구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결국 차기 원내대표 선출을 두고 경선 방식이 아닌 합의 추대 방식이 거론되는 내막에도 복잡한 친박계의 셈법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유철 대표 권한대행은 4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차기 원내대표 선출 방식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에 따라 친박계가 합의 추대 방식으로 차기 원내 지도부를 구성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도 성향의 새누리당 관계자는 “말이 좋아 합의 추대라고 하는 것이지 경선 방식으로 해서는 친박계에도 불리하니 합의 추대 이야기가 나오는 것 아니냐”면서 “친박계에 불리한 당내 상황에서 경선으로 가면 차기 원내 지도부 구성에서 친박계의 입지가 더 좁아들 것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치러진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계 이주영 의원이 비박계 유승민 의원과 맞대결을 펼쳤지만 패배한 전례가 있다. 친박계의 입지가 단단했던 상황에서도 경선에서 밀렸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경선 방식은 친박계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카드다. 결국 합의 추대로 어느 정도 친박계의 입장도 반영할 수 있는 중도 성향의 새 원내대표를 선출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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