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는 사람 죽이는 기업…끝까지 싸우겠다”
  • 김지영 시사비즈 기자 (kjy@sisabiz.com)
  • 승인 2016.04.28 18:01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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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강찬호씨 인터뷰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에 거주하는 강찬호씨(46)는 열 살 난 딸아이만 보면 가슴 깊숙한 곳이 아려온다. 딸은 현재 천식을 앓고 있다. 한번 기침을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달리기나 수영 등 유산소운동은 힘에 부친다. 체육 시간엔 혼자 앉아 있기 일쑤다. 강씨는 “5년 전 저지른 실수 탓에 딸이 평생 천형(天刑)에 가까운 질환을 안고 살아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미어진다”고 토로했다.

“내 손으로 우리 아이를…” 죄책감 시달려

5년 전 초여름 당시 다섯 살이었던 딸이 감기를 앓자 가습기를 설치한 것이 발단이었다. 강씨는 가습기에 대형마트에서 파는 살균제를 넣었다. 딸의 감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병세는 심각해졌다. 기침도 심해졌다. 강씨 부부는 잠자는 딸이 지나치게 가쁜 숨을 쉬는 모습을 보고 병세가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서둘러 딸을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데려가 엑스레이와 CT 촬영을 했다. 엑스레이 사진에서 아이의 폐는 뿌옇게 보였다. 의사는 비슷한 증상을 나타낸 환자들이 있고 모두 예후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 환자 10명 중 6~7명이 사망했는데, 원인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강씨 부부는 공포에 휩싸였다. 의료진이 고농도 스테로이드제를 딸아이 몸에 투입하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이미 염증 반응이 시작된 터였다.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섬유화 증상이 나타나 항암 치료까지 받았다. 그렇게 지옥 같은 한 달이 지났다. 그사이 딸은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병의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였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31일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을 일으켰다고 발표했다. 시중에서 버젓이 팔리는 가습기 살균제 탓에 집단적으로 호흡기 질환이 발병한 것이다. 정부 공식 집계상 피해자는 530명이다. 추가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가 나올지 아직 모른다. 피해자 146명은 이미 사망했다. 폐 이식 수술을 받거나 호흡 보조 기구 없이는 숨 쉬기조차 힘든 환자가 다수다. 강씨 딸도 1등급 진단을 받았다. 지금도 그날 일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는 강씨를 4월20일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베이지색 점퍼 차림의 이 중년 남성은 “옥시는 사람 죽이는 기업이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강씨는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는 시장이나 슈퍼, 대형마트 등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생활용품이었다. 한 해 60만개 이상씩 팔렸고, 지금까지 800만명이 사용한 것으로 추산된다. 강씨는 “당시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가 왕성했다. 생활용품 제조사마다 만들어 팔았다. 유통업체들은 대규모 판촉 행사를 열기도 했다. 당연히 안전한 제품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씨 아내는 아이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결혼 3년 만에 얻은 귀한 딸이었다. 유기농 먹거리 등을 먹이며 건강을 챙겼다. 아파트에서 지내다 보니 습도 조절에 신경 썼다. 이게 화근이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2015년 11월2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 처벌 요구 및 고발장 접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정상적인 나라 아니다”

강씨 부부는 또 다른 고통과 싸워야 했다. 강씨는 “가족 건강과 깨끗한 환경을 위해 돈을 들여 내 손으로 넣은 가습기 살균제가 결국 아이를 서서히 죽이는 독이었다”고 한탄했다. 강씨는 “원인을 몰랐을 때는 ‘우리 아이가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아프다’라는 답답한 심정이었다.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임을 알고 나서는 ‘내가 가습기 살균제를 사지 않았다면, 내가 넣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가 이렇게 고통받지 않을 텐데’라는 회한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피해자 대다수가 비슷한 이중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겪고 있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서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가족들이 가해자 아닌 가해자로 괴로워하던 지난 5년간 정부와 기업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사건 발생 초기 ‘제조물책임법에 의한 기업과 피해자 간의 문제’라고 규정했다. 정부가 나서야 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강씨는 “정상적인 나라라면 국민이 한 명만 아프거나 죽어도 그 원인과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사람 죽이는 제품을 만들어 돈벌이를 하는 기업이 아직도 살아남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국회에 하소연을 하고, 광화문에서 1인 시위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관련 부처는 서로 책임을 미루기 바빴다. 강씨는 “일부 국회의원이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를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환경부가 의약외품으로 지정하고 환경성 질환으로 분류해 피해자 조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기업의 태도는 훨씬 더 나빴다. 강씨는 “기업은 피해자들을 아예 모른 척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과 발표 때 롯데마트 관계자들을 처음 봤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 사장도 2013년 국회 국정감사 때 한 번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말했다. 숱하게 가해 기업들을 찾아가고 항의했지만 대꾸조차 없었다. 영국 옥시레킷벤키저 본사를 찾아간다고 했더니 한국 지사는 그때서야 ‘살인 기업이라는 문구는 쓰지 말라’고 부탁했다. 피해자 가족들이 영국까지 찾아갔지만 “소송 중인 사항에 대해 사과하기는 어렵다”는 애매한 입장만 듣고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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