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사는데 진구 나이는 왜 알아야 할까?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6.04.28 18:10
  • 호수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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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보조금’ 찾아나서는 휴대폰의 은밀한 거래 실태 현장 르포

간판도 없는 어느 어둑한 점포에 도착했다. 사내가 말했다. “핸드폰이나 가방은 여기 바구니에 모두 넣으세요.” 시킨 대로 소지품을 모두 넣으니 바구니를 한쪽으로 민다. 이렇게 빈 몸이 됐지만, 여전히 의심은 풀리지 않은 눈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잠깐만요.” 사내는 손에 금속탐지기를 들고 기자 앞에 섰다. 탐지기가 눈에 들어와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양팔을 벌려 몸수색을 도왔다. 기자의 몸을 샅샅이 훑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사내는 안심한 듯했다.

본격적으로 거래를 시작할 시간이 됐다. 약간의 대화와 은밀한 필담이 오고 갔다. 민감한 대화는 말이 아닌 글자로 대신했다. 가끔은 계산기로 숫자를 두드려 보여주고, 알아들었다는 사인을 기자가 보내면 이내 ‘0’으로 만들어 숫자의 흔적을 지우기를 반복했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 사내는 다시 한 번 기자에게 물었다. “갤럭시S7 맞으시죠?” 그렇다. 이날의 은밀한 만남으로 우리가 거래하려던 것은 겨우 스마트폰이다.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그 무언가가 아니라.

휴대폰 하나를 위해 은밀하게 그림자 속에 숨어 거래를 하게 만든 시작은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다. “과열된 시장을 안정화시켜 불법 지원금을 근절시키고 가계의 통신비를 낮추겠다”며 정부가 야심 차게 시행한 단통법 때문에 휴대폰 시장은 요동쳤다. 일부 소비자들은 ‘냉각기’라고 불렀다. 지원금을 더 받기 위해 발품을 팔거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관찰하고 있으면 나름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었던 휴대폰 시장이 얼어붙어서다. 체감온도는 빙하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통신비는 낮춰졌을까. 지난해 10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시민 7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 중 65.4%(498명)는 ‘단통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정부가 그렇게 강조했던 가계통신비 인하 효과에 대해서는 무려 95.4%가 ‘효과 없다’라고 답했다. 소비자를 위한다는 단통법은 소비자의 절대적 반대표를 받았다.

‘현아’ 위해 길게 늘어선 현금인출기 앞 행렬

과거에는 ‘성지’(휴대폰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던 업체)가 여러 곳 있었고, 뽐뿌 등 온라인 사이트에서 공유도 됐지만, 단통법 이후 이들은 양지에서 사라졌다. 이후 떠오른 성지는 신도림 테크노마트다. 이곳에서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면 싸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다. 이때 지급되는 게 ‘페이백’이다. 온라인에서 ‘표인봉’이라고 부르는, 고객에게 돌려주는 불법 지원금이다. ‘성지’ 신도림은 올해 3월 신제품이 쏟아질 무렵 들썩이기 시작했다. 몇몇 휴대폰 업체들이 갤럭시S7과 G5 등 신형 스마트폰 출시를 앞두고 재고로 쌓인 이전 제품을 밀어내기 위해 공시 지원금 이상의 보조금을 페이백으로 지급해서다. 이때쯤 테크노마트의 현금지급기 앞에는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10m나 늘어섰다고 했다. 모두 ‘현아’를 위해 현금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여기서 현아란? 걸그룹 포미닛의 멤버 현아가 아니다. 페이백을 미리 제한 후 남은 차액을 ‘현금 완납’(현아)해 기계 값을 모두 지급하는 걸 말한다.

이런 오프라인 매장은 곧바로 철퇴를 맞았다. 단통법 유지의 한 축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다. 신도림에 사람이 몰리자 이들이 단속에 나섰다.

또 다른 축은 ‘폰파라치’다. 이들은 업체들의 불법 보조금을 포착해 신고한다. 만약 지원금을 공시 지원금 이상으로 주는 업체를 신고하면 불법 지원금에 따라 최고 1000만원까지 폰파라치들은 가져갈 수 있다. 방통위의 자료를 보면 이들의 활약 정도가 증명된다.

2013~16년(3월16일 기준) 사이에 포상이 이뤄진 것만 2만4432건이었고, 총 포상금은 무려 110억원을 넘어섰을 정도로 활발했다. 눈여겨봐야 할 건 갈수록 줄어드는 포상 건수다. △2013년 5904건(괄호는 신고 건수·9751건)△2014년 1만5279건(1만8307건) △2015년 3127건(3777건) △2016년 122건(136건, 3월16일 기준)인데, 단통법이 핫했던 2014년 이후로 급감하는 추세다. “합법적인 범위를 초과하는 지원금은 이제 단통법 때문에 불법이 됐다. 그런데 불법 보조금을 안 쓰면 판매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 법은 무용지물이다. 요즘은 폰파라치 때문에 저런 페이백은 다 음지로 들어갔다.” 단통법과 폰파라치 때문에 위법이 줄어서기도 하지만, 은밀하게 숨어 단속을 피했기 때문에 급감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폰파라치 아니다” 신분 증명이 우선

다시 앞으로 돌아가, 저런 은밀한 점포를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가게 됐을까. 단통법 이전의 불법 보조금이 수면 아래 정도에서 잠자고 있었다면 지금은 건물 아래 깊숙이 숨은 상태다. 그래서 찾으려면 더욱 어려워졌다. 기자의 경우는 지인에게 폐쇄형 네이버 밴드 초대장을 받았다. 친구의 초대장으로만 가입이 가능한 곳이다. 공지사항만 하나 덩그러니 있을 뿐 게시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낮에 보면 내용이 뜰 겁니다.” 지인이 알려줬다. 다음 날 점심때쯤 게시물 알림이 하나 떴다. 들어가 보니 밴드에 표가 하나 올라왔다. 갤럭시S7과 G5, 아이폰6와 6S 등 최신 스마트폰의 번호 이동 조건과 요금제, 출고가와 공시 지원금, 공시 구입가격 등이 기재된 일반적인 휴대폰업체의 표다. 페이백? 표인봉? 그런 힌트는 없다. “댓글을 봐라.” 단 하나의 댓글이 걸려 있다. “진구, 설현, 송중기 좋아요!!!”

스마트폰을 사려면 이제 포털 사이트에서 진구의 나이를 검색해야 한다. 1980년생인 진구는 우리 나이로 37세다. 진구에 해당하는 모델의 페이백은 그래서 37만원이다. 단통법 아래서는 ‘출고가-공시 지원금’으로 휴대폰을 구입하지만, 이런 폐쇄형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운영하는 업체에서는 ‘출고가-공시 지원금-진구 나이’로 구입할 수 있다. 단통법을 준수한다면 완전 손해인 상황. 계산해보니 최신 기종인 갤럭시S7의 구입가는 30만원 중반대다. 이걸 할부로 해도 되지만 ‘현아’로 해도 된다. 오히려 페이백을 받지 못할 위험도 없고 기록을 안 남기고 깔끔하게 가져갈 수 있으니 요즘은 ‘현아’를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신도림 현금인출기 앞 긴 행렬의 사람들처럼 말이다.

폐쇄형 SNS로 숨은 업체들은 폰파라치를 피해 은밀하게 움직인다. 일단 고객은 업주에게 보내야 할 것이 많다. 이름, 현재 번호, 사용 중인 통신사, 원하는 기종과 색상을 먼저 보냈다. 그러자 1시간 후 답이 왔다, ‘소개해준 분 성함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지인의 이름과 연락처를 보내줬다. 30분 후 문자메시지가 왔다. 주소와 영업시간이다. 더욱 신중할수록 요구하는 건 많아진다. 또 다른 업체에서는 더욱 많은 것을 보내달라고 했다. 신분증에 재직증명서, 소득증명원까지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혹시나 모를 녹음기를 찾기 위해 금속탐지기를 동원하는 것처럼 폰파라치냐 아니냐를 검증하는 작업은 접촉 단계부터 시작된다.

또 다른 업체에 폰파라치가 아님을 증명하자 신도림역 근처의 한 오피스텔 주소를 문자로 보내줬다. 벨을 눌렀다. “성함하고 전화번호요.” 대답을 하니 문이 열린다. 오피스텔에는 책상 두 개와 사무기기, 그리고 작은 소파가 마련돼 있다. 소파에 앉자 업주가 다가왔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양 귀에 이어폰을 끼워주고는 자신의 휴대폰에서 음성파일을 플레이시켰다. “안녕하세요. 밴드에서 보신 대로 페이백은 연예인 나이대로 지급됩니다. 여기서는 페이백이란 단어를 말하시면 개통이 안 됩니다. 돈 액수를 말씀하셔도 개통이 안 됩니다. 저희에게 돈을 건네주시면 저희가 알아서 거슬러 드립니다.” 음성파일이 끝나자 이어폰을 빼준다. “다 이해하셨죠?” 입 밖으로 혹시나 금지어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까 봐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거렸다. 폰파라치에게 그 어떤 증거도 주지 않겠다는 편·불법 보조금 시스템은 이렇게 첩보전처럼 이뤄진다.

업주와 소비자의 007식 은밀한 거래를 잡기란 쉽지 않다. 방통위 관계자는 “불법 가입을 줄이고 무분별한 개인정보 사용을 막기 위해 올해 7월경 신분증 전용 스캐너를 전국의 대리점과 판매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스캐너에 인터넷 주소를 일일이 부여하고 관리를 해 이런 비공식 판매점을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단속에 발맞춰 은밀한 거래도 더욱 비밀스럽고 신중하게 진화돼왔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 하나. 휴대폰 하나 싸게 사기 참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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