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 황건강 기자 (kkh@sisapress.com)
  • 승인 2016.04.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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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회장, 사재출연해 의혹 벗어야

사람은 거짓말하지만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표정과 언어로 진의를 파악할 수 없을 때는 자금의 흐름을 읽는 것이 유용할 때가 있다.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은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하기 직전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現유수홀딩스 회장)이 보유주식을 매각했다. 

공식적인 주식 매각 사유는 한진그룹과 계열분리로 인한 보유주식 처분이다. 해당 주식 매각을 통해 상속세 등 세금 납부의 재원을 마련했다고도 언급했다. 이미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주식 매각 계획을 제출했고 해당 계획에 따라 매각하다 보니 공교롭게 시기가 일치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언급된 내용만 봐서는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계획대로 매각했을 뿐이고 매각해서 성실하게 세금을 내려했는데 우연히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했을 수 있다. 이럴 때는 자금 흐름를 보자. 최은영 회장이 한진해운 보유 지분 매각 금액은 30억원 수준이다. 반면 보유자산은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은영 회장과 자주 비교되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계열사 주식자산으로 1413억원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상선 자율협약 신청전 보유주식을 매각하기 보다는 300억원을 사재출연하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공교롭게도 최은영 회장과는 정반대의 자금흐름을 보인 셈이다.

대기업 오너가 보유중인 주식 대부분은 담보대출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보유 자산 규모만으로는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전체 자산 규모가 바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지난 2013년 뉴스타파가 폭로한 해외 조세회피처 유령회사 보유 명단에는 최은영 회장의 이름도 포함돼 있다. 이 회사에 얼마가 어떤 식으로 흘러들어갔는지는 알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세금을 내기 위해 보유자산을 매각하는 성실 납세자가 '공교롭게도' 조세회피처에 유령회사를 세운 셈이다.

다행히 금융업계는 이 행태를 묵인하지 않았다. 주채권은행은 오너일가의 사재출연 등 지금까지의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공유를 요구하며 자율협약 논의를 뒤로 미뤘다. 자율협약으로 이행하지 않고 바로 법정관리로 가도 상관없다는 강경한 발언도 나왔다.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일가에 대해 "경영 부실을 초래한 장본인이 책임은커녕 사익만 챙기는 모습을 보인 것은 세월호 선장을 연상케 한다"고 비난했다.

오이밭에 가서는 갓끈도 고쳐매지 말라고 했다. 예민한 시점에 책임을 가져야할 사회 지도층이 의심받을 행동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회사 직원이나 소액주주들은 실망하기 충분하다. 

최은영 회장은 억울할 수도 있다. 경영권에서 멀리 떨어졌기 때문에 한진해운이 자율협약을 신청할지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사재출연으로 진의를 보여주면 된다. 한진해운은 다음주 중으로 자구계획안 보완 자료를 다시 제출할 예정이다. 채권은행들이 요구하는 보완책 중 하나는 오너일가의 사재출연을 포함한 책임감 있는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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