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승 투수 가입하시려고요? 쉽지 않을걸요~
  • 배지헌 | 엠스플뉴스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02 16:55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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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에서 100승 투수가 점점 귀해지는 까닭

야구를 2016년에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투수의 통산 100승이 계속 야구를 오래하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쉽게 달성할 수 있는 흔한 기록이라고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4월6일 삼성 윤성환이 통산 100승을 달성한데 이어, 4월24일에는 두산 장원준과 SK 김광현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나란히 100승을 달성했다. 개막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통산 100승 투수만 3명이 나온 셈이다. 여기에 통산 93승을 기록 중인 롯데 송승준이 뒤에 대기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2016년은 4명의 100승 투수를 배출한 시즌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투수의 100승은 박병호(미네소타)의 홈런쇼와 박석민(NC)의 개그동작처럼 언제나 볼 수 있는 흔한 구경거리가 아니다. 1982년부터 올해까지 KBO리그 35년 역사상 100승을 달성한 투수는 단 27명뿐이다. 특히 좌완투수로는 올 시즌 전만 해도 송진우(전 한화·210승)와 장원삼(삼성·109승)만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었다. 1000탈삼진 클럽이 28명, 100홈런 클럽이 70명, 1000안타 클럽이 75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100승 클럽은 가입 조건이 꽤나 까다로운 쪽에 속한다.

SK 와이번스 김광현 © 뉴스뱅크이미지

선발·구원 분업화와 용병 가세 등이 영향

“제가 현역일 때만 해도 투수가 100승을 올린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굉장히 귀한 기록이었죠.” 통산 152승으로 역대 최다승 3위에 올라 있는 대투수 출신, 넥센 이강철 수석코치의 말이다. “그사이 시간이 지나면서 100승 투수가 많이 늘어나긴 했어요. 그래도 여전히 대기록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입이 까다로운 100승 클럽은 최근 들어 신규 가입 문턱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 올 시즌 막바지쯤 송승준이 100승을 달성할 경우, 앞으로 상당 기간 새로운 100승 투수가 나오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그 생태계가 점차 투수 개인에게 많은 승수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 번째는 투수 분업화의 정착이다. 과거 프로야구에선 선발 에이스가 경기 중반 이후에 구원 등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해태 선동열의 경우 통산 367경기 중 선발로 등판한 경기는 109경기에 불과하다. 롯데 최동원도 248경기 중 선발등판 경기는 124경기로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100승 중 구원승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면 지금은 정상적인 감독이라면 선발투수에게 불펜 ‘알바’를 시키는 투수 기용은 하지 않는다. 선발 등판 후 4~5일 휴식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완투한 뒤 2~3일 쉬고 다시 나오는 식의 기용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만큼 선발투수가 승수를 챙길 기회는 줄었다.

두 번째는 경기에서 선발투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타자들의 기량이 향상되고 불펜야구가 대세가 되면서 선발투수 교체 타이밍은 갈수록 앞당겨지는 추세다. 과거에는 경기 중 반쯤에 위기가 와도 선발투수를 믿고 계속 맡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불펜보다 선발투수 쪽의 기량이 월등히 나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동점이나 타이트한 상황이 되면 불펜투수가 바로 마운드에 오른다. 불펜에 싱싱한 강속구 투수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데 힘 빠진 선발투수를 계속 던지게 놔둘 이유가 없어서다.

외국인 선수 제도의 영향도 생각해볼 부분이다. 팀마다 2명씩의 외국인 투수를 배치하면서, 선발투수진에서 국내 투수가 차지하는 몫이 줄었다. 통산 63승을 올린 두산 니퍼트처럼 롱런하는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외국인 투수는 1~2시즌 정도만 활약한 뒤 국내 무대를 떠난다. 누적 기록을 쌓을 시간이 없다. 국내 투수들은 선발진의 남은 세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한다. 한정된 자리에 경쟁자가 많다는 건, 한 번만 삐끗해도 다음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젊은 유망주 가운데 상당수는 선발이 아닌 불펜에서 1군 경력을 시작한다. 선발투수에게 필요한 완급조절과 경기운영 능력을 키울 기회가 이전보다 부족하다.

두산 베어스 장원준 © 뉴스뱅크이미지

100승 투수 재목감들, 일찌감치 해외로

신인급 선수들의 1군 데뷔 시기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는 것도 이유다. 올해 1군에 데뷔한 넥센 신재영은 1989년생으로 벌써 27살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야구, 2군과 1군간의 격차가 갈수록 크게 벌어지면서 신인이 입단 직후 곧장 1군 선발로 자리 잡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대부분 퓨처스리그에서 2~3년간 숙성기를 거친 뒤 상무-경찰청에서 군복무를 마쳐야 1군 풀타임 선수로 자리를 잡는다. 2000년 이후 KBO리그에서 25세 이하 투수가 한 시즌 선발 10승 이상을 거둔 사례는 60번인데, 시즌 평균 4명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1군 데뷔 시기가 늦다는 건 그만큼 오랫동안 활약하며 많은 승수를 올릴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아주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1군에서 두각을 드러낸 투수라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여기서 마지막 걸림돌인 해외진출이 등장한다. 역대 100승 투수 27인의 명단에 한국 최고 좌완투수로 꼽히는 류현진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류현진은 통산 98승을 끝으로 2014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통산 77승의 KIA 양현종도 올 시즌이 끝나면 해외진출이 유력하다. 이처럼 일찌감치 리그를 평정한 젊은 투수들은 일정시점이 되면 해외진출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요즘은 워낙 잘하는 친구들이 다들 외국으로 가니까요. 덕분에 제 통산 다승 3위 기록이 당분간은 계속 유지될 것 같네요.” 이강철 코치가 말한 ‘당분간’이 얼마나 긴 기간이 될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짐작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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