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기업체에 전화해 보수단체 자금 지원”
  • 안성모·조해수·조유빈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04 10:49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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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총협, LH 기부금 1억원 엉뚱한 곳에 사용…‘청와대-기업-보수단체’ 커넥션 의혹
2010년 4월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천안함 전사자 추모 국민연대 준비모임(가칭)’ 기자회견에서 애국단체총협의회 이상훈 상임의장(왼쪽 두 번째)과 박정수 집행위원장(오른쪽 첫 번째)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올해 초 보수 진영의 유력 인사인 박정수 애국단체총협의회(애총협) 집행위원장이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을 당했다. 보수단체인 밝고힘찬나라운동본부(밝고힘찬나라)가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받은 1억원의 기부금을 사용 용도와 무관하게 애국단체총협의회(애총협)로 넘긴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1월11일 ‘공기업 기부금 1억 받은 보수단체의 수상한 돈 흐름’(1369호), 1월18일 ‘‘애국(愛國) 장사’ 보수단체들 기부금 횡령 논란’기사를 통해 관련 의혹을 집중 조명한 바있다.

‘후원사업’ 아닌 ‘보수집회’에 사용

밝고힘찬나라 감사를 맡은 김덕근 바른태권도시민연합회(바태연) 대표는 1월12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에 기자와 만나 “밝고힘찬나라 내에서 아무런 절차 없이 기부금의 사용 목적과 관계없는 단체의 통장으로 돈을 입금해 전용한 것은 횡령 등 중대 범죄행위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김 대표는 “기획재정부가 기부금 단체 지정을 5년마다 갱신해 주는데 이번에는 갱신해줄 수 없다고 나왔다”며 “그 이유로 1억원에 대한 소명이 안됐다는 점을 들었다. 그래서 이사회가 애총협으로 넘어간 1억원에 대해 파악하게 된 것이다”고 설명했다.

최근 어버이연합을 둘러싼 의혹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박 위원장에 대한 고발건도 다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버이연합이 벧엘복음선교복지재단을 앞세워 거액의 자금을 지원받은 것과 애총협이 밝고힘찬나라가 받은 기부금을 사용한 것이 ‘닮은꼴’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법인 설립이 돼 있지 않은 애총협이 2009년 법인 설립을 마친 밝고힘찬나라를 이용해 거액의 기부금을 받은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김덕근 대표가 검찰에 제출한 고발장과 밝고힘찬나라 예금통장 사본 및 관련 인터넷 송금 자료 출력물 등 증거 서류를 종합해보면, 밝고힘찬나라가 LH로부터 기부받은 1억원이 애총협으로 넘어간 경위는 이렇다. 밝고힘찬나라의 대표 역할인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정수 위원장은 2010년 2월23일 본인 명의로 된 ‘청년아카데미 후원 요청’ 공문을 LH 사장 앞으로 보냈다. 두 가지 사업에 대한 후원을 요청했다. ‘21세기청년아카데미 운영’과 ‘청년 해외연수’로 총 소요 예산 1억5919만5000원 중 자부담 5919만5000원을 뺀 1억원을 LH에서 후원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박 위원장의 후원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LH는 그해 4월28일 밝고힘찬나라 통장에 1억원을 입금했다. 그런데 이 돈이 입금된 지 20여 일후인 5월17일 전액 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위원장이 평소 자신이 관리하던 밝고힘찬나라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 애총협으로 넘겼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집행위원들의 위임을 받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사용처에 대해 “당시 천안함과 관련해 국민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지원을 해줬다. 이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 여겼다”고 밝혔다. 청년아카데미 후원이 아닌 보수 집회 개최에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1억원이라는 거액이 LH가 당초 후원한 사업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곳에 쓰인 셈이다.

1월12일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에서 김덕근 바른태권도시민연합회 대표가 “박정수 애국단체총협의회 집행위원장이 기부금을 횡령했다”며 고발장을 접수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정식 후원금 맞는지도 의문”

공기업인 LH가 특정 보수단체에 1억원이라는 거금을 기부한 배경에도 의혹이 제기됐다. 보수 진영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보수단체들의 운영자금과 관련해 “청와대에서 기업체에 전화해 ‘어느 단체를 좀 도와주라’고 한 후 그 단체에 ‘얘기해놨으니 어디로 찾아가보라’는 식으로 자금을 마련해줬다”고 밝혔다. 이 자금이 정부정책을 옹호하고 정부 규탄을 반대하는 데 사용됐다는 것이다.

LH가 후원한 돈의 성격이 공식적인 기부금이 맞는지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김 대표는 “LH에서 정식으로 보낸 후원금이 아닌 회사 비자금으로 마련한 돈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후원을 한 것은 맞지만 비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청년 지원 프로그램이라서 후원을 결정하게 됐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박 위원장은 “LH 내부 사정은 알 수 없다”고 밝힌 후 “대한민국이 잘되자는 입장에서 애국운동을 하는 건데 그런 애국 진영 내에서 이런 일로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애총협은 2008년 MB(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대장 출신의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노태우 정권 때인 1988년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 상임의장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도 두 차례 역임했다. 이 상임의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촛불시위가 일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때 보수진영 사람들이 모여 좌파 시위에 맞불작전으로 한 것이 오늘날 보수단체를 대표하는 애총협을 결성하게 된 배경이다”고 설명했다.

다른 주장도 나온다. 보수단체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온 한 인사는 “MB 정권에서 보수단체를 개별적으로 관리하기가 힘드니까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애총협을 만든 것으로 안다”며 “애총협 집행부만 상대하면 되니까 관리하기가 훨씬 쉬워진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는 또 “애총협이 정부와 민간의 지원금을 받아 회원 단체에 나눠주고 있다는 강한 의혹을 갖고 있다”며 “그런데 돈이 밑으로 잘 내려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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