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연립정부론 묘수인가 자충수인가
  • 박혁진 기자 (phj@sisapress.com)
  • 승인 2016.05.04 11:02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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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더민주 등 연정 대상 놓곤 당내 의견 엇갈려
4월27일 경기도 양평 한화리조트에서 열린 국민의당 당선인 워크숍에서 안철수(첫 줄 왼쪽 네 번째), 천정배(첫 줄 왼쪽 다섯 번째) 공동대표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4·13 총선이 끝나면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국민의당이 제안한 연립정부론(연정론)으로 인해 정치권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국민의당이 처음 제안했던 ‘연립정부론’은 내년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를 목표로, 새 정권이 출범한 후 더불어민주당(더민주)과의 당 대당 연합을 전제로 했다. 그러나 국민의당 내 일부 인사들이 5월30일 20대 국회 개원을 전후해 새누리당과의 연정론(聯政論)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어, 논란이 어디까지 튈 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연정 제안, 제3당 존재감 극대화 포석

연정론을 처음 제안한 것은 지난 1월 심상정 정의당 대표였다. 심 대표는 1월2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야당들에 민생과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연합을 제안한다”며 “연립정부 구성을 전제로 한 정권교체 (차원의) 포괄적인 구상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심대표의 이런 제안은 야권연대 자체가 불발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야당 내부에선 이를 두고 정권교체를 위한 합리적 제안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으나, 소수정당에서 먼저 들고나왔다는 이유로 인해 정치권에선 주목받지 못했다.

같은 연정 제안이지만 4·13 총선 결과 나타난 여소야대 지형, 특히 38석이라는 의석을 얻어 원내 제3당이 된 국민의당이 제안한 연정론은 무게감이 달랐다. 원내 1당이 됐지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더민주, 여당이지만 제2당으로 쪼그라든 새누리당 모두 국민의당의 제안을 가볍게 여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연정론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상 당론이 된 상황이다. 국민의당 핵심인사 중 연정론을 처음 꺼내든 것은 주승용 전 원내대표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야권연대나 통합이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없음이 증명됐다”며 “연립정부를 전제로 한 야권후보 단일화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후 박지원 원내대표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던 이상돈 당선자 등도 연립정부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정치권 전반으로 확대됐다. 다만 주 전원내대표는 야당과의 연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 원내대표나 이 당선자의 경우 새누리당과의 연정도 사실상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정치지형상 국민의당은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첫 번째 꺼내든 ‘연정’이란 패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됐다. 더민주와의 관계에선 주도권을 선점했다는 점에서 ‘묘수’가 됐다. 사실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김종인 더민주 대표가 전격적으로 제안한 야권연대란 프레임에 갇혀 고전한 측면이 없지 않다. 결과적으로 승리했지만, 다수의 야당 지지자들이 국민의당의 ‘정권교체’ 의지에 의구심을 표했다. 그런데 이번엔 연정론이란 프레임을 먼저 짜면서 더민주에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더민주 안에서도 연정론을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에서, 더민주에다 갈등의 씨앗을 심은 셈이다. 게다가 더민주가 ‘김종인 추대론’으로 인해 당내 갈등이 표면화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왼쪽)가 4월29일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위해 국회를 방문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정부와 새누리당 입장에서도 여소야대의 현 정치지형을 감안하면 국민의당의 연정 제안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박지원 원내대표나 이상돈 당선자도 이런 상황을 절묘하게 파고들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4월27일 원내대표에 선출된 지하루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실정(失政)을 인정하고 협조 요청을 해올 때 국회의장 뿐 아니라 무엇이라도 협력하겠다”며 “실정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협력을 구하고 야당대표들을 설득하면 우리도 애국심을 발휘해 협력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실상 연정 제안을 한 셈이다. 이 당선자도 한 라디오에 출연해 “박 대통령이나 새누리당에서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위중한 경제 상황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연정, 거국내각까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이미 연정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만에 하나 국회의장직을 가져오기 위해 협력 모드를 취할 경우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협력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이럴 경우 ‘나라를 걱정하는 정당’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보수층 지지를 더 얻어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반응하지 않으면 공세를 강화하면서 더민주와 손을 잡으면 그만이다. 결국 국민의당의 연정 제안은 자신들이 짜놓은 프레임안에 두 거대 정당을 가두면서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극대화시키겠다는 포석이 담겨 있다. 여기에 더민주와의 대선후보 결정과정에서도 우위를 점하겠다는 속내도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선후보 결정 과정서 우위 점하려는 속내도

하지만 연립정부론에 대한 당 핵심인사들 간의 상이한 인식은 국민의당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민의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연정의 대상이 누구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주승용 전 원내대표를 비롯한 호남 출신 인사들은 더민주와 연합정부를 전제로 한 정권교체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다. 반면 이상돈 당선자나 MB 정부 비서관 출신 이태규 전 전략기획위원장의 경우 현 시점에서 새누리당과의 연대도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전자의 사람들은 새누리당과 연대할 경우 현재 당 최대 지지 기반인 호남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호남 출신 국민의당 관계자는 “호남이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한 것은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에 대한 반감도 있지만, 정권교체가 가능한 수권정당이 돼달라는 의미”라며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과 연정할 경우 호남 민심의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연정 제안에 대해 더민주 관계자는 “(국민의당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잃을 것이 없는 제안”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연정 대상에 대한 미묘한 입장 차이는 국민의당이 여전히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호남 의원 간 갈등이 잠재돼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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