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을 존경할 수 있는 조건
  • 남인숙 | 작가 (.)
  • 승인 2016.05.05 18:37
  • 호수 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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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에서 가족이 모일 때마다 꺼내기를 주저하는 화제는 단연 정치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세대격차’ 때문에 몇 마디 관심사를 입 밖으로 냈다가 서로 감정만 상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복지가 확대되고 부(富)가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사회가 튼튼해진다고 믿는 쪽이고, 부모님은 근성 없는 자들에게까지 공짜로 퍼주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신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마음이 멀어지는 이런 차이에 대해 필자는 그냥 포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말하자면, 가족이라는 관계와 가치관의 공통분모를 격리시키고는 다른 한쪽을 희미한 추상으로 지워 버린 것이다. 

그러다 얼마 전 이 추상을 구체화하게 된 작은 사건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이 두 쌍의 부부가 승용차가 아닌 지하철로 이동할 일이 있었는데, 시아버지가 승차권을 현금을 내고 사는 것이었다. “아버님, 경로우대 대상이시니까 표 안 사셔도 되지 않아요?”

그러자 시아버지는 자동발매기에서 막 튀어나온 승차권을 꺼내며 이렇게 답했다. “난 한 번도 경로우대 받은 적 없다. 내가 능력이 닿는 한 내 돈 내고 표를 사야지 공짜로 하려고 하면 못 쓴다.”

그때 필자는 무언가에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분이 주장하는 가치관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지하철 경로우대를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주장하던 가치관을 행동으로 일치시키는 실천에 작은 감동을 받았을 뿐이다. 그 일로 필자는 무작정 관성에 따르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었던 그 관점에 나름의 정의와 실천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정의란 크건 작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고 더 큰 그림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다. 나와 다르더라도 그런 자세에서 나온 가치관이라면 그 나름대로 존중하고 존경할 수 있다. 가고자 하는 종착역이 같다면 가는 방법이나 수단이 달라도 함께 가며 설득과 타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가치관이라는 게 표방하는 것과 모순되는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구나 그것이 불법적인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한 노년층의 단체가 돈을 받고 정치적 활동을 했다는 의혹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의 외침은 공허하다. 필자가 살고 싶은 곳은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갖고 사는 곳이 아니다. ‘다른 것’을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더 이상 힘을 얻을 수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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