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스펜 녹음파일 존재 사실… 공개되면 발칵 뒤집힐 것”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6.05.12 12:48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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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 게이트’ 실체 담긴 보이스펜 녹음파일, 핵심 관계자들이 전하는 녹음파일의 내용
© 뉴시스

역시 화약고였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구명 로비 의혹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대형 게이트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과 법원 등 법조계는 물론이고, 정·관·재계로 ‘불똥’이 튈 것으로 보여 사정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 검찰은 신속히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사건을 배당해 속전속결 수사를 다짐하고 있다. 검찰은 5월3일 네이처리퍼블릭과 항소심 변호를 맡은 최 아무개 변호사(여)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다음 날에도 서울지방국세청과 서울지방변호사회 등 4곳을 추가로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최 변호사의 메모가 담긴 다이어리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변호사는 정운호 구명 로비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부장판사 출신으로 3월 변호인을 사임할 때까지 정 대표의 해외원정 도박 사건의 항소심을 맡았다. 수십억 원의 수임료를 받은 데다, 수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부장검사나 공판부 부장검사와도 사법연수원 동기여서 주목된다. 검찰은 정 대표의 구치소 접견 기록과 관련 녹취록도 교정당국으로부터 넘겨받았다. 정 대표의 구명 로비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누가 정 대표를 면회했고, 또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만큼 이 또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사건 핵심 관계자 통해 보이스펜 실체 확인

하지만 구명 로비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접견 기록이나 대화 녹취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법조계는 지적한다. 현행법상 가족이나 지인들이 일반 접견형식으로 수형자를 만날 경우 대화 내용을 녹음하게 돼 있다. 하지만 변호사와 개인 접견 때는 녹취가 불가능하다. 변호사접견 녹취록이 없는 일반 접견 녹취록으로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네이처리퍼블릭과 검찰 주변에는 정 대표와 최 변호사 간 둘만 나눈 대화녹취록이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정 대표와 최 변호사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한 보이스펜이 있다는 사실을 사건의 핵심 관계자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최 변호사가 60여 차례 정 대표와 개인 접견을 하면서 나눈 대화 내용이 모두 이 보이스펜에 녹음돼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정 대표가 연루된 사건은 단순히 해외원정 도박만이 아니다. 단순 폭행에서 성폭행까지 현재 걸려있는 민·형사 소송이나 고소·고발만 10여건에 이른다. 최 변호사는 해외원정 도박사건의 항소심을 맡으면서 정 대표가 연루된 민·형사 사건을 해결하는 ‘컨트롤타워’역할을 하게 됐다.

사건 내용이 워낙 방대했던 만큼 접견 내용을 일일이 손으로 적을 수 없었다. 최변호사는 매일 정 대표를 개인 접견한 내용을 보이스펜에 녹음했다. 이후 최 변호사는 자문 변호인단을 통해 관련 사건에 적합한 변호사에게 일을 나눠 맡겼다. 즉, 문제의 그 보이스펜에 담긴 녹음파일은 정대표 사건을 총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녹음파일이 공개될 경우 향후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과연 이 보이스펜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을까. 시사저널은 보이스펜의 실체에 대해 잘 아는 정 대표의 측근 등 여러 관계자를 통해 ‘판도라 상자’를 일부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일례로 정 대표는 지난해 10월 검찰에 구속되기 직전까지 서울 P호텔의 수면방을 자주 이용했다. 이 과정에서 호텔 여직원과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정 대표는 “(너 같으면) 이런 이불에서 남자친구랑 XX할 수 있겠느냐”고 따졌다. 심지어 이 여직원에게 가래침까지 뱉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직원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며 정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정 대표와 여직원의 시비는 호텔과의 갈등으로 번졌다. 정 대표는 호텔 사우나에 여직원이 근무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P호텔 측은 정 대표의 행동을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맞섰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양측은 극적인 합의를 이뤄냈다. 호텔 여직원을 다른 부서로 발령내는 선에서 사건을 봉합한 것이다. 하지만 호텔 여직원은 얼마 후 호텔을 그만뒀다. 이후 정 대표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하다가 조용히 마무리됐다. 그 배경에 최 변호사가 있었고, 이 내용 역시 녹음파일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5월3일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거액 수수료를 받은 부장판사 출신 최 아무개 변호사의 법률사무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 뉴시스

정 대표 민·형사 소송 내용 모두 담겨 있어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는 5월2일 정 대표 구명 로비 의혹에 연루된 현직 부장판사와 검사, 브로커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정 대표 사건의 항소심을 처음 맡은 임 아무개 부장판사와 외부에서 사건 청탁을 받은 인천지법 김 아무개 부장판사, 무혐의처분을 내린 수사 검사 등 10여 명이 수사대상이었다. 대한변협의 고발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전 국회의원과 감사원 출신 고위 인사 등도 ‘정운호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정 대표와의 대화를 녹음한 보이스펜에는 그동안 도움을 받았거나, 도움을 줄 이들의 실명이 모두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운호 구명 로비 의혹에 연루된 인사들의 이름이 이 보이스펜에 포함돼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정 대표와 최 변호사는 롯데 문제도 논의했다. 검찰은 5월3일 네이처리퍼블릭의 롯데백화점 면세점 입점을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브로커 한 아무개씨를 체포했다. 한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이사장 측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신 이사장의 측근들은 언론에서 “신 이사장과 한씨가 안면 정도는 있는 사이”라면서도 “신 이사장이 한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해명했다.

롯데면세점 측도 입점 로비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면세점 관계자는 “입점을 원하는 업체가 에이전시에 수수료를 주는 경우는 간혹 있다”면서도 “네이처리퍼블릭과 롯데면세점은 직거래 관계이기 때문에 브로커가 관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대표의 한 측근은 다른 얘기를 한다. 이측근은 “처음에는 한씨가 정 대표와 롯데오너 일가의 가교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 관계가 틀어졌다”며 “수수료 역시 한씨가 챙기다가 나중에는 롯데 측에 직접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대표와 최 변호사의 대화 녹취록에도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이스펜에는 서울 지하철 입점 로비나 언론 대책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한 언론이 정 대표와 네이처리퍼블릭의 비리내용을 취재하고 있었다. 그 중간다리 역할을 건설업자 출신의 브로커 이 아무개씨가 맡았다. 이씨는 현재 검찰에서 검거전 담반을 구성할 정도로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 대표의 핵심 브로커다.<아래 딸린 기사 참조> 정 대표는 이씨에게 문제 해결을 지시했지만 여의치 않자 최 변호사에게 법률 검토를 맡겼다. 하지만 법적 검토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나자 소송을 접었다. 이 밖에 보이스펜에는 네이처리퍼블릭의 고위 인사가 자신의 비서를 건드렸다는 사소한 내용까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커 이씨, 잠적 직전 지인과 대책 논의

최 변호사 측이 최근 언론에 밝힌 일부 내용에서도 보이스펜의 실체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정 대표와 최 변호사는 최근 공방전을 벌였다. 4월말 구치소 접견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며 최 변호사가 정 대표를 경찰에 고소한 것이 발단이었다. 정 대표 측은 “최 변호사에게 준 20억원이 성공보수다”며 “자신이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풀려나지 못한 만큼 20억원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이 돈의 성격이 착수금이니만큼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이 과정에서 최 변호사 측은 다소 민감한 내용도 공개했다. 최 변호사의 한 측근은 “3개월 동안 아무 일도 못하고 매일 접견을 하고, 도박 사건은 물론, 성추행과 폭행 피해자를 달래는 등 온갖 민·형사 사건의 뒤치다꺼리를 했다. 20억원을 받았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 측은 이 보이스펜을 정 대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정운호 게이트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보이스펜 녹음파일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법조계 관계자들은 조언한다. 이 녹음파일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기자와 만난 정 대표의 한 측근은 “검찰이 녹음파일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이 녹음파일은 정 대표와 일반 접견을 했던 교도소 녹취록과는 차원이 다르다. 정운호 게이트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핵심 증거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오른쪽 사진)는 화장품 업계에서 한때 ‘미다스의 손’으로 통했다. 정 대표는 남대문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다가 화장품업계에 발을 디뎠다. 그는 2003년 더 페이스샵을 창업했다. 당시 미샤 브랜드를 히트시킨 서영필 에이블씨엔씨 대표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 페이스샵은 서울의 중심 상권이었던 이화여대와 명동에 단독 매장을 열며 승승장구했다.

정 대표는 2005년 사모펀드와 LG생활건강에 지분을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정 대표는 2000억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다시 외국의 유명 화장품인 더바디샵의 자연주의 콘셉트를 본떤 네이처리퍼블릭을 론칭했다. 이후 네이처리퍼블릭 역시 급속히 성장했고, 현재는 국내 5위 브랜드숍에 랭크됐다. 현재 코스닥 상장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정 대표의 이름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100억원대 해외원정 도박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정 대표가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반성 많이 하고 오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구치소에서도 정 대표의 기행은 이어졌다. 교도관에게 막말을 하며 폭력까지 휘둘러 독방 2주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정 대표는 4월말 자신의 항소심 변호를 맡았던 최 아무개 변호사에게 욕설을 하고 폭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억 원 규모의 수임료가 드러났고, 법조계뿐 아니라 정·관·재계 구명 로비 의혹으로 사건이 번졌다. 대한변협은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판사 등을 고소하면서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

정 대표는 현재 구치소에서 억울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의 한 측근은 “본인 스스로 조폭과 브로커에게 100억원 상당을 뜯긴 피해자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 측 역시 고액 수임료 논란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별로 자문 변호사들에게 수임료를 전달한 만큼 실제로 자신이 받은 액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건이 확대되고 있고, 정·관·재계 구명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가속화되고 있다. 때문에 당분간 정 대표를 둘러싼 의혹은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잠적한 브로커 이씨 “문제 터지면 제주도 갈 것”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측근인 브로커 이 아무개씨 역시 정운호 게이트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열쇠로 꼽힌다. 그는 건설업자 출신으로 정운호 게이트의 또 다른 핵심 인물로 꼽힌다. 이씨는 정 대표의 구명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검사장 출신 홍 아무개 변호사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2011년 홍 변호사가 검사장 시절 지인 2명과 가진 술자리에도 이씨가 합석했다. 항소심이 열리던 지난해 말에는 담당 부장판사인 임 아무개씨와 만나기도 했다.

이씨는 연예계 쪽에도 마당발로 알려졌다. 연예인 J씨와 K씨, C씨 등과 자주 어울렸다. 네이처리퍼블릭의 광고 모델을 섭외하는 데도 이씨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운호 대표의 사업뿐 아니라, 각종 민원을 처리해주는 ‘집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씨는 올해 1월 이후 종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평소 이씨와 자주 만나던 지인들도 “현재는 연락이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로비 등 명목으로 9억여 원을 챙긴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검찰이 지명수배(A급)와 출국금지를 내린 직후였다.

이씨는 당시 유명 트로트 가수의 동생인 J씨에게 3억원을 빌린 후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씨는 전북 전주에 거주하는 지인의 집으로 전입신고를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김재원 전북지방경찰청장을 방문해 기념촬영까지 했다. 이후 이씨의 행적이 끊겼다. 이씨의 휴대전화 역시 전원이 꺼져 있는 상태였다.

시사저널은 이씨가 지인과 전화통화한 녹음파일을 단독 입수했다. 이 전화통화 역시 1월 그가 종적을 감춘 직후 녹음된 것이었다. 그는 통화에서 정 대표가 자신에 대해 오해하지 않도록 잘 말해달라고 당부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씨는 당시 지인에게 “내가 언론과 협잡해 기사를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내부에 파다하다”며 “정 대표가 이해할 수 있도록 ○○랑 △△(정 대표의 측근들)에게 잘 말해달라”고 말했다.

이씨의 한 지인에 따르면, 그는 이미 지금과 같은 이런 수사 확대 상황을 예견한 듯했다. 검찰이 정운호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바로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그는 “9억원의 리베이트 문제로 이미 잠적하기 전부터 (이씨는) 정운호 대표와는 관계가 틀어진 상태였다”며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문제가 터지면 제주도로 간다’고 했다”고 말했다. 한 여행사의 대표가 현재 이씨를 보호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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