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스트·브로커 6명의 마수에 다 걸려들었다
  • 송응철 기자 (sec@sisapress.com)
  • 승인 2016.05.12 13:27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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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재벌가·의사·군인·언론인·연예인·조폭 등장, 초호화 캐스팅의 ‘정운호 게이트’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가 2015년 10월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송치되고 있다. © 뉴스1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불법 도박 혐의 수사가 게이트 사건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여기엔 현직 부장판사, 검사장 출신 변호사, 재벌가 로열패밀리, 군인, 언론인, 의사, 연예인, 유명 조폭 등 사회 각계의 유력 인사들이 등장한다. 그야말로 ‘초호화 캐스팅’이다. 최근엔 정치인들의 이름마저 나오고 있다. 사태가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정 대표는 그동안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는 물론, 수사 중에도 계속해서 전 방위적 로비를 벌여왔다. 인생의 거의 모든 행적에 로비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수많은 로비스트와 브로커들이 정 대표 주변에서 암약해왔다.

정 대표가 직접 수기(手記)로 작성한 이른바 ‘정운호 리스트’에 로비스트와 브로커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메모에는 그동안 정 대표의 구명활동을 벌여왔거나, 또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인사들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여기엔 정 대표의 핵심 로비스트로 활약한 이른바 ‘로비스트 3인방’의 이름도 적혀 있다. 건설업자 출신의 이 아무개씨와 언론인 박 아무개씨, 강남 유명 성형외과 이 아무개 원장 등이 그 장본인이다.

브로커 이씨, 게이트의 ‘시작’과 ‘끝’으로 통해

3인방의 구심점에 있는 건 현재 수배 중인 이씨다. 그는 정운호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인물로, 박씨는 물론 이 원장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이나 구명 로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의 항소심을 맡고 있던 임 아무개 부장판사에게 접근해 사건 무마에 나서면서 법조 브로커 파문을 촉발시킨 것도 바로 그다. 이씨는 또 정 대표의 도박 혐의 수사를 무마하려 했다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를 기용한 인물로도 알려졌다.

이씨는 현재 네이처리퍼블릭이 2010년 서울메트로 지하철 상가 운영권 인수를 위해 각계에 로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정 대표는 앞서 검찰 조사에서 이씨에게 로비자금 명목으로 9억원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렇게 전해진 돈이 로비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고, 자금흐름을 집중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메트로 로비 의혹에 관여한 건 이씨 혼자가 아니다. 그 외에도 또 다른 브로커가 등장한다. 서울메트로 사업 브로커인 심 아무개씨와 자영업자 김 아무개씨 등 2명이다. 먼저 심씨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휘장사업권과 관련해 정·관계 유력인사에게 등급별 명절 선물을 제공한 리스트가 공개돼 파문을 일으킨 바 있는 인물이다. 그는 2009년 정 대표에게 지하철 내 매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2010년까지 모두 72억2000만원을 받아갔다. 김씨는 사실상 서울메트로 입점 로비를 진두지휘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는 2010년 지하철 상가 운영권을 보유한 회사의 경영권 인수를 위해 정 대표로부터 140억원을 전달받은 바 있다.

그러나 심씨와 김씨는 현재 정 대표와 등을 돌린 상태다. 정 대표가 이들을 상대로 고소를 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입점 약속이 이행되지 않자 심씨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이후 정 대표가 법정에서 검찰조사 당시의 진술을 번복하면서 심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 대표가 갑자기 입장을 선회한 배경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다. 정 대표는 또 김씨에 대해선 회사 인수 대금중 2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소했다. 이로 인해 김씨는 지난 2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서울메트로 로비 의혹에는 모두 3명의 로비스트가 등장하지만 결국 정 대표의 곁에 남은 건 이씨가 유일하다.

이씨는 이번 게이트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정 대표가 해외 불법 도박을 벌인 이른바 ‘정킷방’이 전국구 조폭조직 ‘범서방파’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정 대표에 대한 수사가 처음 시작된 것도 해당 도박장을 적발당한 범서방파 측의 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 대표에게 범서방파를 소개해준 사람이 이씨다. 그는 한때 범서방파 2인자인 이 아무개 전 회장이 운영하던 호텔의 부회장 직함을 달고 금융 브로커로도 활약한 바 있다. 물론 이씨가 맺어준 범서방파와의 인연이 해외 불법 도박으로 직접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언론인 박씨와 성형외과 의사 이씨도 주목

이씨는 또 게이트의 ‘끝’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정 대표를 위한 로비를 주도적으로 벌여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올해 1월부터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검찰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직후 몸을 숨겼다. 이씨가 이번 사건의 ‘키맨’이니만큼 검찰은 그를 검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최근 이씨 검거전담반을 구성했다. 3차장 산하 부서에서 인력을 차출해 보강하고, 범인 검거 경력이 있는 파견 경찰들도 투입했다.

언론인 박씨도 이씨와 함께 정 대표의 각종 로비 사건에 얽혀 있다. 그는 인터넷 언론매체인 I사와 월간잡지인 H사를 운영해 온 인물이다. 한때 타블로이드 주간지 J사 감사직을 수행하며 경영에도 관여했지만, 주주총회에서 해임되면서 사실상 회사를 떠나게 됐다. 박씨는 언론사 대표라는 직함을 활용해 정·재계 인사는 물론 연예계에도 상당한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앞서 서울경찰청의 정 대표 도박 혐의에 대한 수사 당시 사건 무마에 나섰다는 의혹을 받았다. 도박 사건 무마 대가로 현직 경찰관 2명이 정 대표 측에 상가 운영권 등 이권 제공을 요구하고 특정 회사에 투자를 권유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박 씨는 현재 구속된 상태인데, 정 대표와는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는 올해 1월 코스닥 기업 투자 사기 등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와 별개로 박씨는 또 다른 사기 전과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 대표 수사 과정에서 수감 중인 박씨를 불러 조사를 벌였지만, 이렇다할 진술을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박씨가 정 대표와 경찰 사이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형외과 의사인 이 원장도 정 대표의 구명 로비에 앞장섰다. 그는 임 부장판사와 인연이 있는 한 지방법원의 부장판사에게 선처의 뜻을 전해달라는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원장이 청탁한 부장판사는 정 대표와도 안면이 있는 사이로 알려졌다. 네이처리퍼블릭이 후원사인 한 미인대회에 부장판사의 딸이 나갔는데, 이 일로 정 대표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당 부장판사는 이 원장의 요청을 거절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 항소심 재판부는 정 대표의 보석 신청을 기각하고 실형을 선고했다.

의사가 로비 사건에 이름을 올린 건 대단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를 두고 사정기관 안팎에선 이 원장의 직업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성형외과 원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예인과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이런 인맥을 로비에 사용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로비스트 이씨가 그동안 주변에 연예계 인맥을 과시한 배경도 이런 의심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현재 이 원장은 수사 선상에서 비켜나 있다. 실제 이 원장이 운영하는 병원은 법조계 브로커 관련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그러나 언제든 검찰의 칼끝이 이 원장을 향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원장이 이씨와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이씨 수사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다른 로비스트 한 아무개씨도 이번 게이트에 깊숙이 연루돼 있다. 네이처리퍼블릭 매장이 롯데면세점에 입점할 수 있도록 중간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한씨는 평소 친분이 두텁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수십억 원대의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는 상태다. 한씨는 2012년 10월 네이처리퍼블릭과 업무 위탁 계약을 맺었다. 롯데면세점 입점을 조건으로 네이처리퍼블릭 측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매장 매출액의 3%를 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리고 네이처리퍼블릭은 그 직후인 2013년 1월부터 롯데백화점 내 면세점에 입점해 영업을 하게 됐다.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에 위치한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오른쪽 사진은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 시사저널 고성준ㆍ연합뉴스

신영자 이사장 로비 의혹 연루…롯데에 불똥?

이를 통해 한씨는 2013년 2월부터 2014년 7월까지 10억여 원을 수수료로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 네이처리퍼블릭은 일방적으로 수수료 지급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한씨는 2014년 10월 네이처리퍼블릭을 상대로 일방적 계약 해지로 입은 피해 6억4500만원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씨는 또 2015년 초부터 사정기관 관계자들을 직·간접적으로 찾아다니며 신 이사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이사장의 지시로 수수료 지급이 중단됐으며, 해당 자금은 신 이사장의 아들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 신영자 이사장 측은 선을 긋고 있다. 신 이사장 측은 “한씨와 안면은 있지만 면세점 입점을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사실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정 대표로부터 신 이사장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한씨에게 돈을 줬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배달사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그러나 네이처리퍼블릭이 결국 면세점 입성에 성공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당 자금이 제대로 전달됐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여기에 더해 한씨는 네이처리퍼블릭 제품이 군 PX에 납품될수 있도록 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전 방위 로비를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사실 한씨는 처음부터 정 대표와 관련해 수사를 받던 게 아니었다. 그는 앞서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박찬호)로부터 방산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로비를 통해 군납품을 해주겠다며 업체들로부터 금품을 챙긴 혐의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정 대표가 한씨 계좌에 거액을 입금한 사실을 포착하고, 한씨를 긴급체포했다. 그리고 검찰은 이후 한씨가 금품을 받은 업체 가운데 네이처리퍼블릭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했다.

해외 불법 도박에서 시작된 정 대표의 검찰 수사가 법조계와 재계를 넘어 이젠 군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 사정기관 안팎에선 이번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초기 단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파장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현재 복수의 정치인들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첩보가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수사가 정치권까지 확산되리란 것이 지배적 견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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