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국내 정치용 날개를 달다
  • 박준용 기자 (juneyong@sisapress.com)
  • 승인 2016.05.12 17:33
  • 호수 138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4월29일 북한인권법 시행령 입법예고, 오는 9월부터 시행

“북한 인권? 개선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그 얘기를 지금 북한에다 하는 겁니까, 아니면 남한(한국)에다 하는 겁니까?”

 

지난 4월2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북한 여군 인권 유린 참상 규탄 집회’ 행사장 인근에서 기자와 ‘우연히’ 만난 한 북한이탈주민이 한 말이다. 보수진영의 북한 인권 개선 주장이 실제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선지, 국내 정치에 활용하기 위해선지 의심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심의 첫 번째 근거는 북한 인권을 누가 말하고 있느냐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북한 인권 담론은 보수 진영이 주도했다. ‘평화·군(軍)인권’ ‘성소수자 권리’ ‘국가보안법 폐지’ 등 인권 부문에 오히려 소극적이거나 이를 억압하는 입장에 섰던 보수 세력이다. 북한 인권을 외치는 한 보수단체에 몸담았던 인사는 “국가보안법을 옹호하거나, 인권의식이 낮은 일부 인사들이 정권의 입맛에 맞게 북한인권법 제정을 외치는 모습을 보고 거리감을 느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4월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를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사진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국제사범재판소(ICC) 제소를 촉구하는 퍼포먼스. ⓒ 연합뉴스

진보의 무관심 속 보수의 ‘북한 인권’ 담론 독주

 

전문가들은 보수 세력이 북한 인권 담론을 주도한 시점을 1990년대 후반으로 추정한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이 주기적으로 극심한 식량난에 빠지면서부터 북한 인권 담론이 국내에 싹텄다고 분석했다. 보수 세력이 이 사건을 보며 “한국의 체제가 북한보다 낫다”는 체제우월을 기반으로 ‘북한 민주화’에 치중하는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 서 교수는 “보수진영이 북한 인권 의제를 이용해 민주화 과정에서 가졌던 열등의식을 깨끗이 씻어내고 진보에 대항할 수 있는 참신한 정치담론을 만들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수진영이 북한 인권을 말하는 것 자체가 비판의 대상은 아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심각하다. 북한이탈주민 증언과 통일부, 유엔(UN), 국제앰네스티 등의 발표를 종합하면 북한 주민들은 삶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권을 부인당하고 침해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 세력이 무관심했던 북한 인권 의제를 보수 세력이 대신 끌고 간 긍정적 측면도 있다.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연구교수는 “민주·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민족주의 또는 국제정세 관점에서 소홀히 취급했거나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점은 사실이고, 반성해야 한다”면서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보수진영이 일부분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보수진영이 북한 인권을 말하는 방법이다. 정부 여당과 보수단체가 말하는 북한 인권은 북한 인권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최우선한다. 평화는 후순위로 밀어내거나 제대로 거론하지 않는다. 북한인권법 제정 과정에서 보인 보수여당의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법안 제정 협상에서 새누리당은 줄곧 ‘북한 인권 개선’을 우선순위로, ‘한반도 평화’를 이에 속한 하위 개념으로 제안했다. 야당을 비롯한 인권학자들이 두 가지 요소를 동등하게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대비된다. 결국 새누리당의 제안이 반영된 채 북한인권법은 3월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큰 문제로 본다. 보수진영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 인권 개선에만 집중하고 북한과 군사적 대립을 거두지 않겠다는 뜻이 된다. 인권 탄압의 주체인 북한 정권과 대화할 여지를 차단하면 북한 인권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정치용’이라는 비판도 이 부분에서 제기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평화와 인권을 대치되는 개념으로 몰고 가는 현재의 북한인권법은 실효성이 없다. 평화 없는 인권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한 가지 인권을 말하며 다른 인권을 아래에 두는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인권 개념과도 크게 배치된다. 1968년 테헤란 인권선언, 1993년 비엔나 인권선언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밝힌다. “인권은 보편적이고 서로 나눌 수 없고 상호의존적이고 상호 연관돼 있다. 인권 및 기본적 자유와 민주주의와 개발, 평화 등 보편가치들이 상호의존적이고 상호보완적이다.” 이 말은 한 분야 인권 증진만큼이나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날 권리인 평화권과 생명권 등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북한 인권 주장이 ‘한반도 인권’ 악화

 

이런 왜곡된 북한 인권 주장은 결국 북한뿐 아니라 국내 인권까지 침해하는 두 가지 ‘역설’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첫째는 왜곡된 북한 인권 담론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돼 북한의 체제 결속력이 강해지는 경우다. 이 과정에서 북한 인권이 다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군 장교 출신 한 북한이탈주민은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하고 외친 역사가 있지 않은가. 북한 정권은 이 나라들이 법안을 제정한 것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위기감을 심었다”면서 “위기감이 커지면 자연히 군대가 먼저라는 인식이 생긴다. 북한 인권 개선에 좋을 게 없다”라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이런 북한 인권 담론이 국내 정치에서 ‘종북 몰이’를 끝없이 재생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이것이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도 2011년 원내대표 시절부터 “북한인권법 제정은 법사위의 일부 ‘종북’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 뒤 올해까지 같은 논리로 이 법안 통과를 강조한 바 있다.

 

왜곡된 북한 인권 주장은 곧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 억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인권법 제정 당시 야당이 보인 태도는 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의 한 당직자는 “더민주와 국민의당, 정의당 등은 북한 인권 논의에서 항상 불리할 수밖에 없다. 북한 인권은 이미 상징적 언어가 됐기 때문이다. 이 법을 반대하고 나서면 ‘종북’ 이야기가 나올 것은 뻔하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북한인권법 내용이 실효성이 떨어지고 부정적 결과가 크다는 것을 다들 알지만 알면서도 대놓고 반대하지 않고 합의하는 모양새를 보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9월 북한인권법이 시행된다. 통일부·법무부는 4월29일 북한인권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이대훈 교수는 “북한인권법에 북한 인권을 명분으로 시위 등을 하는 단체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우려된다”면서 “이는 시민사회와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효과가 크다”고 했다. 왜곡된 북한인권법에 반대하면 ‘종북’으로 매도되는 분위기가 국내 정치를 뒤틀린 북한 인권 담론으로 내몬다. 그 결과가 다시 비정상적 북한 인권 담론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반복되는 셈이다.

 

 

 

 


북한인권법의 가장 큰 문제는 뭔가.

큰 틀에서 보면 분단된 상태에서 분단의 일방이 다른 일방의 인권 문제를 법적인 방식으로 다뤘다는 것 자 체가 문제다. 솔직히 연구자의 양심으로 효율성이 의심된다. 그리고 민간단체 지원법도 문제다. 북한 인권 단체가 지금도 얼마나 많나. 이들을 2중, 3중으로 지원하겠다는 법이다.

 

국내 북한 인권 담론의 전반적 문제는.

‘인권근본주의’다. 세상에 보편가치가 인권만 있는 게 아니다. 인권은 상호 의존적이고 연결돼 있다. 한 인권만 추구하면 다른 한 가지가 위태롭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2003년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도 이 ‘인권근본주의’가 적용됐다. 인권 개선의 명분으로 전쟁을 했지만 전쟁으로 인권이 악화됐다. 북한 인권 담론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의 경우도 그렇고, 북한 인권은 보수가 주도했다.

2000년대 초까지 통일운동 세력이 북한 인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북한과 교류가 활발해지며 북한 인권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내부 쇄신과 개혁도 없었다. ‘붕’ 뜬 상태였다. 이 시기에 보수진영은 북한 인권 문제를 가지고 대학과 종교, 일반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 과정에서 진보진영에 있던 민족해방(NL)파 일부가 북한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어쩌면 자연스럽다. 이들은 분단체제의 요인 중 한 집단의 책임에 ‘올인’한다. 처음에 그들은 분단 문제가 미국 책임이라 했는데, 아닌 것 같아서 다른 쪽 하나인 북한의 책임이라는 주장에 다시 ‘올인’하는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는데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보상받지 못한 소외감도 있을 것이다.


바람직한 북한 인권 담론은 뭔가.

평화권이 중요하다. 평화권은 한반도 전체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는 인권이다. 남과 북 마찬가지로 의무복무하지 않을 권리 같은 것이다. 평화권을 고려해 남북 정전체제에 맞는 인권 개선 방향을 채택해야 한다. 이게 ‘코리아 인권’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말하나.

북한과의 인권 대화다. 인권이라는 말은 북한과 대화할 때 안 붙여도 좋다. 가령 남북 교정당국 간 행정교류를 한다는 식으로 해도 된다. 사안별로 업무협력 경험을 나누면 된다. 그러다 보면 사실상 인권 개선을 하자는 대화가 될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