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기억 심리부검] 남동생마저 아버지 닮아 유약한 누나 폭행
  • 서종한 | 프로파일러 (사이몬프레이저대학 정신건강법 (.)
  • 승인 2016.05.12 17:41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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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한 여고생…아버지의 만성적 학대에 남동생까지 폭행에 가담해

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던 배진희양이 자신의 주거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강화도 강화읍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고층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이었다. 자살 의도와 치명성은 두드러져 보이는 듯했다. 주변인의 진술에 따르면, 이미 자해를 시도한 경험이 있었고 몇 번씩 아파트 베란다에서 떨어지려 했다고 한다. 이번의 경우에도 자살 의도를 갖고 투신한 것으로 보였다. 집 안에 남겨진 유서나 글귀는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참고인 진술을 하던 어머니가 진희의 자살 배경에 아버지의 폭력과 따돌림이 있었다는 말을 시작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어머니는 친모가 아니라 계모였다. 심리분석관으로서 자살의 치명성과 의도에 가정폭력과 따돌림이 어느 정도 원인으로 작용했는지 그리고 그 원인이 자살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가정 내 문제가 얽혀 있는 만큼 민감한 사안이었고 형사 소송과도 맞물려 있는 (법)심리부검조사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 일러스트 임성구

어린 시절: 갑자기 어머니를 잃다

진희의 어머니는 남동생을 출산하던 중 과다출혈로 그만 죽고 말았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던 아버지는 갑자기 먹지도 않던 술을 먹고 폭력을 휘두르는 등 성격이 달라졌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는 남동생과 진희가 중학생이 되자 신체적인 학대를 시작했다. 진희는 어머니를 잃은 후 나이에 비해 심신이 유약했고 만성적으로 불안 증세를 보였다. 주변 사람들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못했고 늘 혼자 먹고, 자고, 놀았다. 아버지는 그런 진희에게 약해 빠졌다며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다. 새로 들어온 계모는 친자식처럼 진희와 남동생을 돌보려 했지만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중학교 시절: 가정폭력에 불안장애 나타나다

특히 아버지는 남동생한테 기대가 컸고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키며 심한 스트레스를 줬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강조했고 성적이 떨어지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손에 잡히는 것으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때리기 시작했다. 특히 어머니가 죽은 이유가 남동생 때문이라며 남동생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줬다. 만취해서 들어오는 날이면 잠을 자던 남매를 깨워 거실에 세운 채 새벽까지 폭력을 일삼았다. 아버지는 시간이 갈수록 남매에게 스트레스를 푸는 수준을 넘어 괴롭힘과 폭언, 폭행이 만성적으로 반복돼 갔다. 이때부터 남동생은 강박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누나인 진희를 밀치며 때렸다. 그런 남동생을 나무라면 자신을 무시하고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며 더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문제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남동생이 점차 체격이 왜소한 누나에게 풀기 시작했고 간헐적으로 보였던 폭력의  수위가 점차 높아져 갔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시절: 부친을 똑 닮은 막내 동생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부친의 폭력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에는 술을 먹고 들어왔고 계모에게까지 손찌검을 했다. 이제는 남동생마저 아버지를 닮아 똑같이 유약한 누나에게 신체적인 폭력과 폭언을 보였다. 진희는 어린 아이들과 노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이들의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이 좋았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나중에 자라서 어린이집 교사가 되고 싶어 했다. 착한 성격이었고 친구를 자주 만나 어울리고 싶었지만 사람과 상황이 주는 불안감이 커 자리를 피해 혼자 다녔다. 하루 종일 혼자 불안감을 안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진희의 그런 태도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모두들 진희의 이상함에 이유를 묻지 않았고 무관심했다. 그녀 곁에 있으려 하지 않았다. 갈수록 우울해하거나 소심해졌고 자존감이 극도로 떨어졌다. 이를 이상하게 본 반 친구들로부터 고3 때는 심한 따돌림을 당했다.


 고등학교 3학년: 남동생의 괴롭힘

진희는 고3이 되면서 불안증과 긴장감이 더해졌고 학업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불안감과 답답함을 견딜 수 없어 병원에서 일주일간 약물치료를 받았다. 불안증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동반되던 우울감과 급격한 피로감은 어쩔 수 없었다. 남동생도 청결강박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졌고 입원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갈수록 심해졌고 강박증도 덩달아 악화됐다.

손을 씻거나 방 청소를 하루에도 수십 번을 반복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환청 증세까지 보였다. 남동생은 “누나를 죽여버려” 혹은 “때려도 좋아. 너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등의 환청을 듣고 밥을 못 먹게 하거나 괜히 옆에 와서 툭툭 치고 아무 이유 없이 누나의 옷들을 훔쳐가 입지 못하게 했다. 남동생은 부모 몰래 누나를 마치 죽이려는 목적을 가진 것처럼 집요하게 괴롭혔다.

 마지막 가출, 자해 그리고 자살

남동생의 괴롭힘에 참다못한 진희는 짐을 싸서 가출을 했다.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남겨져 있는 계모가 자신 때문에 아버지로부터 괴롭힘을 당할까 봐 걱정이 돼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계모도 남편의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떠나고 싶어 했다.

어느 날 남동생이 혼자 있던 진희의 방에 들어와 책을 집어던지며 “죽어버려”라고 소리를 질렀다. 가지고 있던 연필로 그녀의 손바닥을 찍어 상처를 냈다. 이 사건이 있고부터 진희는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듯 약을 먹지 않았다. 서서히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불안감과 우울감을 잊기 위해 손목을 여러 차례 그었다.

그녀는 남동생의 병과 분노가 아버지에게서 왔고 남동생 또한 불쌍한 피해자라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남 탓을 하지 않았고 혼자서 조용히 삭히거나 오히려 자신을 탓했다. 하지만 괴로워도 내색을 않던 진희는 점차 무너져 갔다. 남동생과 심하게 다툰 이후 자신이 없어지면 편할 거라 생각했다. 자신의 병을 고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았다. 학교를 갔다 온 오후 베란다 창문을 딛고 올라서서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그 시도가 실제 자살로 이어졌다.

ⓒ 연합뉴스


유령처럼 살아온 그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녀를 만성적으로 학대했다. 이 사실이 주변에 알려졌지만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극심한 불안증과 공포에 시달리며 모든 관계를 회피했다. 자살 즈음에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다시피 해 거의 2년 넘게 유령처럼 아무런 말 없이 살아왔다. 청결강박증이 있던 남동생의 괴롭힘도 한몫했다. 주변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었다. 함께 있던 계모조차도 아버지를 떠날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 괴로움을 견뎌내기 급급했다. 그녀 주변에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언제든 떠날 사람만 존재했다. 자신을 괴롭혔지만 그래도 아꼈던 남동생과 큰 다툼이 이어졌다. 다툼은 잦아졌고 급기야 남동생은 그녀의 작은 손에 상해를 입혔다. 좌절감에 빠졌던 그녀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았다. 병을 고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남겨진 가족에게 쓸모없는 짐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끝없는 우울감과 불안감이 그녀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갔다.

원인 제공 부모 처벌받아야

진희는 자살에 대한 신념(suicide ideation)을 구두로 보고하거나 글로 기술했다. 남동생에게 자신을 계속 괴롭히면 죽어버리겠다며 몇 차례 경고를 했다. 그리고 계모에게도 아빠 때문에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과도한 약물 복용이나 알코올 중독 증세(substance abuse)는 전혀 없었다. 극심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지냈고 학업이나 삶에 대한 목표를 잃은(purposelessness) 듯 보였다.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고 가정생활은 더욱 지옥과도 같았다. 불면증도 사망하기 전 반복해 나타났다(anxiety). 현재의 상황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trapped). 자신의 병과 반복되는 남동생의 괴롭힘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컸다. 자기 자신, 타인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두드러져 보였다(helplessness). 입원 치료를 반복하고 약을 복용해도 고쳐지지 않는 불안장애와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파국적인 생각이 임박해 보였다. 의지했던 동생의 괴롭힘, 친구들로부터의 따돌림, 사람들을 대하는 데 느끼는 불안감 등은 학교활동에서 분명 철수(withdraw)로 이어졌다. 통제력을 잃은 분노(anger)나 무모한 행동이나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행동(recklessness)은 보이지 않았다. 급격한 기분 변화(mood change)는 없었지만 사망 직전에는 우울감이 높아졌고 자해를 보였다.

청소년들의 사망원인 1위는 사고나 질병이 아닌 ‘자살’이다. 2013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1년 한 해 자살한 한국 청소년 수는 373명이다. 최소한 하루에 한 명꼴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요즘 언론에서 청소년 자살 원인으로 손꼽는 ‘학교 성적으로 인한 신변 비관’ ‘집단 따돌림’ 등은 어찌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단편적인 이유일 수 있다. 앞서 진희의 연대기에서 살펴보았듯이 자살은 단순히 한 가지 원인만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 연령대가 경험하는 여러 가지 위험 요인이 뒤섞이고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청소년의 정신을 혼돈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한다.

필자가 청소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과 남겨진 일기장과 유서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자살을 하고 싶은 이유 가운데 ‘단절’ ‘소외’ ‘외로움’ ‘고독’이 58.3%로 가장 많았다. 이들의 기저에 깔려 있는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독초는 스스로 무기력하다고 느끼게 하고, 짐스럽게 여겨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청소년을 서서히 말라 죽게 한다. 갈수록 악화되는 무망감(無望感)을 안고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포기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되고, 벗어날 길 없는 갇힌 이 세상에서 고통을 잊고자 여러 번의 자해를 시도한다. 청소년들은 반복된 자해를 통해 자살 행동에 대한 공포에 무뎌지게 된다. 그중 하나가 실제 자살로 이어지는 것이다. 가정폭력과 학대는 ‘타살성 자살’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살에 직접적인 위계가 없더라도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부모는 형사 처분뿐 아니라 사회적 지탄과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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