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의 음식인류학] 당신은 엄마가 될 준비가 끝났나요
  • 이진아 | 환경·생명 저술가 (.)
  • 승인 2016.05.12 18:01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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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 세상에서 처음 접하게 되는 음식 ‘모유’, 그 100년간의 논란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먹게 되는 음식은 무엇일까. 시대와 나라에 상관없이 처음 먹게 되는 음식은 바로 모유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포유동물이 태어나서 처음 먹는 음식이 모유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물품의 홍수, 정보의 홍수 시대인 지금 우리는 여기에서도 옵션과 정보 충돌을 보고 있다.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게 좋은가, 아니면 조제분유를 먹이는 게 좋은가라는 논쟁은 1920년대 조제분유가 처음 상업적으로 제조·판매되던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100년간 계속되고 있다.

 

논쟁의 내용 중에는 상식처럼 되어 있는 부분이 많다. 어느 쪽이 더 영양분과 면역물질 등 유익한 성분이 많은지, 어느 쪽이 더 유해물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지, 위생에 더 좋은 쪽은 어느 것인지 등. 젖을 먹이는 여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람들의 시선, 즉 사회적 인식을 고려하는 부분도 중요할 거다. 여기에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모유에 대한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오는 문제도 있다.

 

모유가 좋을까 분유가 좋을까. 1920년대 조제분유가 등장한 이후 거의 100년간 모유 vs 조제분유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 PPA연합

 


원시적 만행 정도로 치부돼 온 모유 먹이기

 

20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소의 젖을 기본으로 해 여러 영양물질을 첨가한 조제분유가 영양가 면에서 모유보다 뛰어나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따라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모유를 먹일 수 있는데도 일부러 조제분유를 먹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은 1980년대 ‘면역물질’에 대한 연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유에는 아기에게 필요한 영양성분이 고루 들어 있을 뿐 아니라 아기가 앞으로 이 세상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끔 해주는 면역물질이 듬뿍 들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쟁은 모유의 판정승으로 정리되는 듯했다.

 

이 판세를 흔든 것은 모유 다이옥신 논란이다. 1998년 일본 후생성이 도쿄 지역 수유부(授乳婦)의 젖에 안전 기준치의 26배나 되는 다이옥신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면서 조제분유가 동이 나는 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뒤이은 연구에서 조제분유에도 역시 다이옥신을 비롯한 유해물질이 만만치 않게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기 어머니들이 모임을 결성해 모유를 선택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여론이 모유 쪽으로 다시 돌아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조제분유가 압도적인 승리를 누리는 듯했던 20세기 동안 모유를 먹이는 행동은 알게 모르게 비하되어 왔다.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과정을 통해 가공·포장되어 철저하게 소독한 우유병과 젖꼭지를 통해 공급되는 조제분유에 비해 모유는 젖꼭지에 세균이 많아 비위생적이라는 점이 부각되었다. 그런데 소독 탈지면에 증류수를 적셔 수유하기 전 깨끗이 닦아주기를 권하고 엄마 젖의 세균은 아기의 장내 세균 활동을 촉진시켜주는 유익균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부분의 쟁점도 흐려졌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행동 자체도 20세기 동안에는, 특히 서구 사회나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회에서는 ‘원시적인 만행’ 정도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20세기 말부터 서구의 여성 인류학자들을 중심으로 ‘모유 수유’를 적극 지원하는 담론이 확산되면서 이런 경향 역시 바뀌어 왔다. 2012년 5월10일자 타임 표지는 그 변화를 확연히 보여준다. 까만 요가복 같은 것을 입고 당당히 서서 날씬한 몸매를 자신 있게 드러내고 있는 쇼트 컷 헤어스타일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의자를 놓고 여성의 드러난 한쪽 가슴의 젖꼭지를 물고 있는, 5살은 족히 돼 보이는 그녀의 아들이 있다. 표제어는 도발적이었다. ‘당신은 충분히 엄마인가?(Are You Mom Enough?)’ 이 잡지가 나오자 한동안 세계의 인터넷은 댓글로 들끓었다.

 

엄마가 되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릴랙스’

 

이 사진은 공개적인 모유 수유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었고, 모유는 빨리 끊을수록 아이의 건강과 인성에 도움이 된다는 20세기의 상식에 도전하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 역시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의 연구 성과가 가져온 결과물이었다. 2003년 영국과 미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데보라 잭슨(Deborah Jackson)의 베스트셀러 <아기 지혜(Baby Wisdom)>(우리나라에서는 <인류는 아이를 어떻게 키웠을까>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는 모유를 몇 년이고 충분히 먹은 아이일수록 건강하고 인성이 안정돼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는 통계가 소개되기도 했다.

 

20세기 말 이후 지금까지 모유에 대해 지난 20세기 때 나온 인식의 패러다임을 뒤집는 연구가 쏟아져 나왔다. 2008년 영국의 뇌신경학자 나타샤 캠블-맥브라이드 박사는 <장과 심리적 증상(Gut and Psychology Syndrome)>이라는 책에서 모유 수유를 하지 못한 아이들이 장 트러블, 간 기능 부전 등 신체적인 문제뿐 아니라 자폐증, 집중력 결핍 등 정신적 문제를 갖기 쉽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론적으로는 모유 수유를 지원하는 근거가 쌓이고 있지만, 정작 모유 수유를 해야 하는 산모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이 많은 것 같다. 유해성 문제가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젖이 원만하게 나오지 않아 고생하는 경우도 있어서다.

 

이 모든 문제를 넘어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원만하게 아이를 키워내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릴랙스(relax)’하는 것이라고 육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엄마가 지나치게 신경을 쓰게 되면 몸 안의 스트레스 물질 농도가 높아지고, 그것이 또 모유 안으로 분비되기 때문에 유선(乳腺)활동이 위축되며 젖이 잘 나오지 않게 된다. 또 엄마의 정서는 아기의 정서와도 직결되기 때문에 아기가 예민한 체질과 성품으로 자랄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원로 의학자 알렉산더 로웬 박사는 오랜 임상경험과 이론적 탐구로 신체와 정서의 연결고리에 관한 인식 수준을 높인 것으로 평가받는 사람이다. 그는 아기가 건강하고 원만하게 자라기 위해 제일 필요한 것은 이 세상에 대한 편안한 믿음, 혹은 이 세상과 연결되었다는 느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세상과 자신의 경계를 크게 따지지 않는 의식 상태로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조언대로라면 엄마로서 중요한 것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거냐 저거냐, 혹은 유익하냐 유해하냐를 따지기보다 아기가 안정된 마음으로 편안하게 젖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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