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병기 전 비서실장 국정원장 시절 보수단체에 ‘창구 단일화’ 요청”
  • 안성모·조해수·조유빈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6.05.17 12:58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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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진영 유력 인사들 증언…“돈 지원해주는 창구를 하나로 해야 쉽게 그 창구에다 넣는다”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국정원장 시절 보수단체 대표 등과 회동을 갖고 이들에게 ‘창구 단일화’를 요청했다는 증언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시사저널은 5월10일 오후 2시 이를 인터넷판으로 보도한 바 있다.([단독] “이병기 비서실장 국정원장 시절, 보수단체에 ‘창구 단일화’ 요청”) 복수의 보수 진영 유력 인사들에 따르면, 회동 시기는 이 전 실장이 국정원장으로 재직할 때로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되기 직전이었다.

 

최근 이 전 실장이 사의를 표명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했다. 이에 따라 이 전 실장은 1년3개월 동안의 청와대 생활을 마감하게 됐다. 이 전 실장은 4·13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청와대 분위기 쇄신 등을 위해 박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이 전 실장이 보수단체 대표 등과 회동을 갖고 ‘창구 단일화’를 요구했다는 증언이 보도되면서 사퇴 시점이 앞당겨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5년 8월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애국단체총협의회 등의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건국 67주년 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 연합뉴스


비서실장 내정 직전 보수 진영 원로들과 회동

 

이병기 전 실장이 보수 진영 유력 인사들과 회동한 시점은 국정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5년 2월12일이다. 이 전 실장이 대통령비서실장으로 공식 내정된 것은 같은 해 2월27일로, 회동을 가진 시점은 이 전 실장이 국정원장에서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옮기기 보름 전이었다. 회동에 참석했던 서정갑 국민행동본부장은 이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서 본부장은 5월5일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이 법정 구속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법정 구속하는 것을 반대하는 신문 광고를 냈다. 종북 세력과 맞서 싸운 국정원장을 구속하면 앞으로 종북 세력과 싸울 때는 판사들이 총 들고 와서 싸울 것이냐고 (광고를 통해) 강하게 이야기했다”며 “그날따라 국정원에서 오찬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내가 신문을 들고 갔다. ‘오늘 아침에 이렇게 (광고를) 냈는데 우리 시민단체가 이렇게 하면 전임 국정원장 예우 차원에서라도 국정원에서 브리핑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원세훈 전 원장은 같은 해 2월9일 법정 구속됐고 국민행동본부는 2월12일 동아일보와 문화일보에 ‘從北(종북)세력 비판이 罪(죄)라면 대한민국은 누가 지키나! 판사들이 총 들고 지키나?’라는 의견 광고를 실었다. 이 자리에는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과 국정원 직원을 비롯해 국민행동본부·애국단체총협의회(애총협)·재향경우회 등 내로라하는 보수단체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구재태 재향경우회 회장은 “그때 10여 개 단체가 참석했다”며 “시국 관련해서 공적으로 모이자고 해서 간 것이다”고 밝혔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그때 오찬 모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힌 후 “다들 나라를 위해 일하는데 서로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자리이다”라고 설명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도 “나라를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끼리 점심 한 끼 하는 자리였다”며 회동 사실을 인정했다.

 

주목되는 부분은 이 전 실장이 이 자리에서 보수단체 대표들에게 ‘창구를 단일화’할 것을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서 본부장은 “이병기 원장이 ‘우파 진영이 하나로 뭉쳤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중요한 단체인 국민행동본부랑 해서 애총협이랑, 재향(군인회), 고엽제(전우회), (재향)경우회 이런 거”라고 밝힌 후 “이 양반(이 원장)이 하는 얘기가 돈 지원해주는 창구를 하나로 해야 쉽게 그 창구에다 (돈을) 넣는다는 거였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구 회장은 “(이 원장이) 집회를 각 단체에서 나눠서 할 것이 아니라 (창구를 단일화해서) 한 단체에서 하는 것이 어떠냐고 이야기를 했다”며 “집회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그 집회의 성격을 잘 아는 단체가 하는 게 맞다고 (이 원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우리(경우회)가 주도할 때 다른 단체들이 참여하는 건 광고를 내니까 알아서 하는 건데 무슨 한 단체가 주도해서 똑같이 하는 건 안 맞는 거지”라고 말했다.  

 

반면 고영주 이사장은 “서로 덕담하는 자리였지 시국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유동열 원장은 “비공식 모임이었는데 이 모임을 기자에게 말한 사람들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라고 밝혔다가 통화 말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공식적인 답변이다”고 말했다.

 

“단일 창구로 사실상 애총협 지목”

 

단일화 창구로는 사실상 애총협이 지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 본부장은 “(이 원장이) 애총협이라는 말은 그때 직접적으로 안 하고 ‘한 단체를 이렇게 해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애총협의 공문 사업계획을 봤다. 사업계획에 ‘애총협의 목적과 방침에 부합되는 단체가 하는 일에 대해서만 지원한다’고 돼 있다”며 “지들(애총협)이 도네이션(기부)을 받아가지고 (다른) 단체에 집회나 뭘 할 때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라고 말했다. 서 본부장은 “우리는 ‘애총협에 뭐든 몰아줘서 애총협에서 여기 단체들한테 나눠 준다, 애총협에 양손 살살 빌어야 몇 푼이라도 받아먹게끔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라고 말했다.

 

애총협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대장 출신의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 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노태우 정권 때인 1988년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 상임의장은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장도 두 차례 역임한 바 있다. 서 본부장은 “(이 원장과 이상훈 의장이)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30년 지기다”고 말했다.

 

애총협은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국가안보의식 고취운동’이라는 사업으로 5300만원의 국가보조금을 받았고, 2014년에도 비슷한 사업으로 4000만원, 2015년에는 3500만원, 2016년에는 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지금까지 모두 1억6800만원을 받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공개가 되는 국가보조금이 전부가 아니다. 창구 단일화라는 것은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돈을 준 것처럼 다른 루트를 통해 들어오는 돈을 하나의 단체를 통해 받겠다는 뜻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창구 단일화를 국정원장이 직접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많은 의미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이상훈 애국단체총협의회 의장(왼쪽 세 번째) 등 보수단체 대표들이 2013년 12월5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에 대한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들고 헌법재판소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국정원 “사실 무근”…애총협 “소설에 불과”

 

이와 관련해 국정원 측은 시사저널에 “이병기 전 국정원장이 통상적인 대외활동 차원에서 평소 국가안보에 관심을 갖고 보수단체 원로 인사들을 초청해 남북관계 등 안보 상황을 설명하는 자리를 가진 것이다”며 “이 전 원장이 이 자리에서 보수단체 ‘금전지원 창구 단일화’를 요청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혀왔다. 

 

애총협은 5월11일 반박성명을 내고 “국정원장이 개인 미팅이 아닌 다수의 단체장을 초청해 ‘돈을 지원할 테니 창구를 단일화’하라는 발언을 했다는 말을 기사화한다는 발상은 소설이 아니고는 불가하다”며 “2015년 2월 이후 애총협은 국정원이나 청와대로부터 지원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애총협은 청빈한 단체다”라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당사자인 이병기 실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그의 휴대전화로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다. 또 대통령비서실에 전화해 취재 목적을 밝히고 연락해 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하지만 이 실장의 답변이 오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 대변인실은 5월9일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 실장은 시사저널의 인터넷판 보도가 나간 후 CBS와의 통화에서 “오찬을 한 것은 맞지만 그런 발언은 한 적 없다”고 반박했다. 이 실장은 “만난 건 사실이고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느 한 곳에 돈을 몰아 줄 테니 그리로 다 모이시오’ 그랬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터무니없는 소리에 대응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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