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벨트' 균열 만든 PK 민심의 파워
  • 이승욱·박준용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6.05.17 16:28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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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드러난 PK 민심 변화, 여야 대권 경쟁 구도까지 영향 미칠 듯

 

PK(부산·울산·경남)가 변했다. 지난 4·13 총선에서 PK의 민심은 변화를 선택했다. 이는 새누리당의 지지 기반 붕괴와 야당 지지층의 확장으로 요약된다. PK 지역민은 새누리당 일당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한 것이다. PK 민심의 변화는 그동안 이 지역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던 야권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줬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부산에서 5석, 경남 3석을 차지했다. 정의당도 경남에서 1석을 획득했다. 새누리당 일색이었던 울산에서 야권 성향의 무소속이 3석을 차지했다. 이에 반해 새누리당은 PK 전체 의석 40석 중 27석을 얻는데 그쳤다. 각종 선거 때마다 빨간색으로 장식됐던 PK 선거 지도의 빛깔이 확연히 바뀌었다. 

정당 득표율에서도 PK의 새누리당 이탈 현상은 두드러진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과 친박연대는 PK 중심부인 부산에서 66.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뒤이은 19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은 51.3%를 얻으면서 과반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부산에서 얻은 새누리당의 정당득표율은 41.2%에 그쳤다. 과반 이상을 유지하던 콘크리트 지지율의 마지노선이 붕괴한 것이다. 반면 야권인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46.9%를 기록하면서 득표율 역전을 만들어냈다. 

 

새누리당은 4·13 총선 때 PK지역 전체 40석 중 27석을 얻는 데 그쳤다. 사진은 지난 3월15일 부산 자갈치시장. © 시사저널 고성준


“매번 새누리 찍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4·13 총선 이후 여야 정치권의 관심은 민심의 향방이다. 특히 차기 대선을 1년7개월 앞둔 시점에서 PK가 선택한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관심사인 것이다. 그만큼 PK가 전국 선거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높다. PK는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많은 유권자 비중(18대 대선 기준 15.8%)을 차지한다. 지난 1990년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3당 합당 이후 다섯 번의 대선에서 PK는 줄곧 새누리당 후보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 PK는 경남 김해 출신이자 부산을 기반으로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낸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빗장을 열지 않았다. PK는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2002년 대선에서도 노 전 대통령에게 30%가 채 안 되는 지지를 보냈다. 지역 출신이라는 점보다는 지역의 주류 정치 정서에 따른 표심을 보여준 것이다.

 

시사저널은 4·13 총선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에 PK 지역민의 선택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총선 국면이라는 혼돈의 시간 뒤에 차분히 PK 민심의 저변을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지난 5월10~12일까지 사흘간 부산과 경남 창원, 김해 일대에서 무작위로 지역민 20명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들로부터 전해 들은 민심은 확실히 변화가 엿보였다.

 


시사저널이 심층 인터뷰를 한 지역민 중 19대 총선과 20대 총선에서 지지 정당을 모두 공개적으로 밝힌 이들은 16명이었다. 이 가운데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사람은 8명이고, 이들 중 3명이 20대 총선에서 지지 정당을 더민주와 국민의당 등 야당으로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가 부산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김영철씨(사무직 회사원)는 “지금까지 선거 때마다 계속 새누리당을 찍었다”면서 “지난 대선 때도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당시에는 박 대통령이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 배경도 갖고 있어서 대통령으로 일을 잘할 것 같아 뽑았다”면서 “하지만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매번 싸우는 마당에 더 찍어줄 수가 없어 정당 투표를 새누리당에서 다른 당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기존 새누리당 지지자 가운데 향후 차기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찍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자도 여럿 있었다. 경남 창원에서 만난 정 아무개씨(여·47·학원강사)는 “새누리당 후보를 그동안 찍었지만 새누리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지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지금 대선 주자로 나온 사람 중에서 새누리당 중에 찍어줄 만한 사람도 마땅치 않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PK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민심의 변화는 현 정부와 집권 여당에 대한 불만이 기저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새누리당을 적극적으로 밀었지만 지역 발전과 경제 여건은 좀체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내재돼 있다. 일부에서는 현재 야당이 집권하던 DJ 정부(김대중 전 대통령)와 참여정부(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TK(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제기된 ‘잃어버린 10년’을 빗대 ‘잃어버린 8년’을 언급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MB 정부(이명박 전 대통령)와 박근혜 정부 집권을 위해 PK에서 무한한 지지를 보냈지만 정작 TK와 비교하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불만이 팽배한 탓도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5월2일부터 6일까지 전국 남녀 2028명을 대상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PK 응답자 중 56.9%가 ‘잘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새누리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TK(45.4%), 강원(34.6%)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29일 부산지역 총선 당선인 간담회가 열리는 부산진구의 한 식당으로 들어서고 있다(왼쪽 사진).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4월19일 부산 국제시장과 부평 깡통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잃어버린 8년’에 PK 민심 휘청 

 

현 정부와 새누리당에 대한 PK 민심의 이반 현상은 차기 대권 구도에서 이른바 ‘영남 벨트’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나타나고 있다. 낙동강 이남으로 TK와 PK로 이어지는 영남벨트는 과거 새누리당으로서는 확고한 집권 기반이었다. 지난 18대 대선 기준 PK 유권자 비율은 15.8%(부산 7.2%, 울산 2.2%, 경남 6.4%)에 이른다. TK가 10.3%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국 유권자의 25%에 해당한다. 다분히 정치공학적인 계산법이지만, 호남의 유권자 비중이 10.2%라는 점과 비교하면 영남과 호남의 대결 구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지역적 기반이 되는 셈이다. 

 

지난 총선에서 PK의 민심 이반을 확인한 새누리당 내부에서 ‘대선 필패론’이 제기되는 것 또한 이러한 분석에 기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TK 출신의 새누리당 관계자는 “TK와 PK는 정치적 결단의 순간에는 늘 함께 뜻을 같이해 왔다”면서 “반(反)호남, 반(反)민주당이라는 정치적인 정서가 두 지역에서 맥을 같이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대권 국면에서 늘 동지적 관계를 형성해온 두 진영이 뜻을 나누면 대선 역학관계도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면서 “영남벨트의 붕괴는 영남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표심에 미쳤던 영향력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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