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비매너에 시름하는 골프 선수들
  • 안성찬 골프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19 13:51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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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플레이는 최고의 갤러리가 있을 때 가능하다”
한국의 골프는 보통 미국에 40년, 일본에 20년 뒤져 있다고 한다. 그것이 골프산업이든, 골프문화든 크게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최근 들어 골프 선수들의 팬클럽이 늘어나면서 특정 선수를 응원하느라 상대 선수에게 야유를 보내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에티켓’을 최우선으로 하는 갤러리 문화에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한국의 여자골프가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것과 별개로 국내 골프문화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영국왕실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4년마다 개정하는 41개 조항의 ‘골프룰(규칙)’을 보면 제1장 제1절부터 에티켓에 관한 것이 나온다. ‘플레이어가 스트로크를 할 때에는 주변에서 떠들거나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게 첫 번째다. 이어지는 규칙 역시 대부분이 에티켓과 관련된 것들이다. 골프가 매너를 중시하는 ‘신사의 게임’이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골프만의 특징에도 불구하고 특히 프로골프 대회를 관전하는 갤러리들은 우리 선수들의 기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벌어진 국내 여자대회에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부도 아이랜드컨트리클럽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삼천리투게더오픈과 김해 가야컨트리클럽에서 벌어진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 대회 때 얘기다.

갤러리들에게 둘러 쌓인 채 이동 중인 리디아 고의 모습

 

퍼팅 실패하자 환호하며 박수 치는 갤러리

삼천리투게더오픈 최종일. 박성현(23·넵스)과 김지영(20·올포유)이 동타를 이뤄 18번 홀(파4)에서 연장전에 들어갔다. 박성현은 2온에 성공했지만 김지영은 세컨드샷이 벙커에 빠졌다. 3온을 시킨 김지영이 파를 놓치자 그린 주변에 있던 갤러리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아마 일부 갤러리들의 몰지각한 행태가 김지영에게는 큰 상처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에서도 묘하게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최종일 경기. 먼저 2타 차로 선두를 달리던 박성현이 17번 홀(파3)에서 티샷을 워터 해저드에 빠뜨리자 김민선(21·CJ오쇼핑)을 응원하던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1타 차로 김민선에 앞선 상황에서 18번 홀을 맞은 박성현은 까다로운 3m짜리 파 퍼트를 남겨두고 있었다. 김민선이 버디를 잡으면 순위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민선의 6m 거리의 버디 퍼팅이 홀을 살짝 벗어났다. 이러자 일부 박성현을 응원하는 갤러리들이 함성과 박수를 쏟아냈다.이 같은 볼썽사나운 장면이 일부 선수의 팬들만의 어긋난 행동은 아니다. 골프대회를 찾는 대부분의 갤러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잘 치면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상대방 선수에게는 드러내 놓고 야유를 보내는 게 문제다.

골프 선진국인 미국은 오래전부터 갤러리들에게 매너를 중시했다.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리는 PGA 투어 메이저대회 마스터스는 1940년대부터 갤러리 가이드를 발표해 골프 규칙만큼이나 갤러리의 에티켓이 중요하다고 알렸다. 특히 선수들이 실수했을 때 박수를 치면서 좋아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해마다 갤러리에게 나눠주는 가이드북의 첫 장에는 ‘매너가 좋지 않은 갤러리는 즉시 퇴장시킨다’는 문구가 들어 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박세리가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을 때 일본에서 경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박세리 팬이었던 일본의 ‘어깨’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문제가 됐다. 박세리의 퍼팅이 끝나면 다른 선수가 퍼팅을 하거나 말거나 다음 홀로 한꺼번에 이동하는 바람에 일본 선수들이 피해 아닌 피해를 본 것이다. 다른 갤러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갤러리들의 함성만 문제일까. 매 샷에 집중해야 하는 선수들을 괴롭히고 신경을 쓰게 만드는 것은 여러 가지다. 최대의 골칫거리는 휴대폰 벨소리와 카메라 셔터 소리, 그리고 담배 냄새다. 이를 방지해보려고 최경주(45·SK텔레콤)가 먼저 나섰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대회에서 ‘실험’을 했다. 2011년 최경주 CJ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는 ‘휴대폰 소음 없는 대회’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리고 이듬해는 ‘담배 연기 없는 대회’를 추진했다. 2012년 대회 때 갤러리들은 임시보관소에 휴대폰과 담배와 라이터를 맡기고 대회장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최경주는 “강요는 아니다. 선수들과 다른 갤러리들에 대한 배려를 위한 거다”며 “선수와 다른 갤러리들에 대한 이런 배려가 곧 존중이고 그것이 바로 골프 사랑이다”고 말했다.

팬클럽 회원 수와 비례해 증가하는 비매너

대회 중에 갤러리들은 휴대폰을 끄거나 진동으로 바꿔놔야 한다. 그럼에도 선수가 티샷을 하는 순간에 통화를 하거나 갑자기 벨소리가 울려 경기를 방해할 때도 적지 않다. 특히 티잉 그라운드에서 샷 하는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몰(沒)매너’ 갤러리들은 기피 대상이다. 특히 여자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담배연기는 최악이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관전도 중요하지만 아이들 통제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잊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신발도 문제가 된다. 운동화나 골프화 대신 구두를 신고 와 소음을 내기도 하고 동반한 어린이가 신는 일명 ‘뽁뽁이’ 신발의 소리가 경기 중에 울려 퍼지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골프의 인기가 커질수록 이런 비매너 문제도 덩달아 커졌다. KPGA와 K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인기를 끌면서 선수들마다 각자의 팬클럽이 생겨났다. 특히 ‘삼촌팬’을 몰고 다니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스타 선수는 회원 수가 수천 명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 팬클럽에서 우승할 것을 미리 예상해 현수막을 제작해 들고 나타나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상대방 선수에게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나름대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안신애(26·해운대비치골프&리조트)는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가 나왔을 때도 주의를 해야 한다. 환호성과 박수로 응원하는 것은 좋지만 그린 인근의 다음 홀에서 티샷을 하는 선수에 대한 배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아니라고 해서 야유를 보내는 것은 바람직한 갤러리 문화가 아니다. 최고의 플레이는 최고의 갤러리가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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