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돈, 돈, 돈! 돈을 더 내라!”
  • 김원식│국제문제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19 14:41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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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철수론 및 나토 무용론으로 드러난 트럼프 외교 정책

 미 CNN 사회자 

“주한미군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이 며칠 전 미 의회에서 한국이 주한미군 인건비의 50%를 부담하고 있다고 진술했다.”

 

트럼프 

“몇 퍼센트?”

 

사회자 

“50%.”

 

트럼프 

“50%라. 왜 100%는 안 되지?”

 

사회자 

“브룩스 사령관은 미국에 군인들을 배치하는 것이 한국 기지에 주둔시키는 것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도 했다.”

 

트럼프 

“그 군인 자체가 필요가 없을 수 있잖아.”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미국 공화당의 대선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5월4일 미 CNN 방송에 출연해 한국이 방위비를 100%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국 언론들이 보도한 당시 인터뷰 내용의 일부이다. 트럼프의 이날 인터뷰 내용의 핵심은 방위비를 전액 부담하라는 것이 아니고 주한미군이 왜 필요하냐는 반문이었다. 사회자가 주한미군을 철수해 본국으로 오면 비용이 더 든다고 지적하자 “그런 군대 자체가 필요 없는데, 감축하거나 줄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가 외교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핵심을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전 세계가 ‘대통령 트럼프’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왼쪽 사진)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 © AP 연합

 

미국이 이제 세계 각국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로 ‘고립주의(isolationism)’로도 불리는 이 정책의 핵심은 한마디로 “이제 세계 경찰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날 인터뷰 내용을 더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주둔 비용을 100% 내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미군) 병력을 빼겠다’는 것이다. 그게 싫으면 주둔에 따른 모든 비용을 부담하라는 의미다. 그의 이러한 입장을 단지 그동안 미국의 적극적 개입주의가 바로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국제관계의 기본도 모르는 ‘막말 식 계산법’이라고 폄하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트럼프의 이러한 입장은 바로 자신을 지지하는 계층의 의중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를 주로 지지하는 백인 블루칼라 계층에게 더 이상 국제관계의 이익 등은 계산이 통하지도, 말이 되지도 않는다. 쉽게 말해 세계 경찰 노릇을 한다고 내 호주머니만 다 빈 꼴이니, 이를 그만두라는 요구다. 트럼프가 막말이나 선동을 잘해서인지 민심의 불만을 잘 반영해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를 담은 지지층을 기반으로 이제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트럼프가 이러한 지지층의 요구를 등에 업고 집권한다면 그는 그들의 요구와 계산법에 의해 행동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미국의 이익’이 된다. ‘주한미군 철수’ 발언은 단순히 ‘비용을 더 내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본질적 바탕이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에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나 재협상을 들고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한마디로 다른 나라를 위해선 미국의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과거 소련과의 냉전 시대에 만들어진 나토는 쓸모없는 기구라면서 미국이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더는 나토에 많은 부담을 할 수 없다며 유럽 국가들이 부담을 하든지 아니면 기구를 해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이제는 ‘미국 우선주의’로 국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세계 다른 지역 문제에 대해선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와 그대로 연결되는 같은 맥락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기존 미국 정부는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이른바 ‘아시아 중시 전략(Pivot to Asia)’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 군사적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그런 자원은 줄이고 바로 국내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굳이 미군이 해당 지역에 필요하다면, 그 지역 국가가 전부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유럽이나 아시아 동맹들과 방위비 재협상을 벌이고 적정 방위비를 분담하지 않는 동맹에 대해선 주둔 미군을 철수하거나 ‘핵우산’ 제공을 거둬들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스스로 알아서 방어하기 위해 해당 국가가 핵무장을 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기존 비확산 전략은 물론 근본적인 대외 세계 전략과는 180도 방향을 달리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미국의 기존 세계 전략과 180도 다른 정책 트럼프의 이러한 외교정책 노선은 공교롭게도 아시아 지역 문제에 있어서도 대선 맞수인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노선과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을 역임하면서 이른바 ‘아시아 중시 전략’을 도입하고 추진한 당사자가 힐러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힐러리에겐 중국을 견제하고 아시아에서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미 동맹이나 미·일 동맹이 필수적이다. 그가 늘 “우리 자신과 동맹인 한국, 일본을 방어하는데 필요한 어떤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에 따라 공통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두 사람의 차이는 분명하다. 힐러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대화를 할 수 있다며 모든 당사국이 힘을 합쳐 대북 압박에 나서야 한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기존 대북 정책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북한을 ‘상대할 수 없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트럼프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미치광이’라고 부르면서 “통제 불능 국가”라는 거부 반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는 “중국만이 미치광이를 사라지게 할 수 있다”며 “중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며 중국 책임론을 강조하고 있다. 즉 근본적으로 북한 문제도 한반도 내부나 인접국 사정이지 미국의 사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힐러리도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도발을 자행하지 않게 하기 위해 중국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지만, 전적으로 중국 책임론을 내세우는 트럼프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힐러리가 북한을 전통적 위협 세력으로 본다면,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와 동떨어진 북한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와 주둔 비용 부담 등의 문제를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렇게 자체 방어를 위해 핵 무장까지 용인하는 발언을 하지만, 확고한 비확산 체제를 우선시하는 힐러리는 주변국의 핵 무장은 절대 안 되며 이를 위한 동맹 강화와 핵우산을 계속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는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 청산 제안”‘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국내 문제에 치중하기 위해 세계 경찰을 그만두겠다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어쩌면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며 그동안 세계 질서를 형성해온 기존 틀에 큰 변혁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다소 냉소적인 입장인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외교정책 전문가 토머스 라이트는 “트럼프는 다름 아닌 자유주의적(liberal) 세계 질서의 청산을 제안하고 있다”며 “그것은 러시아와 중국 입장에서는 꿈이 실현되는 것이고, 1년 안에 그들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봤던 것, 즉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국 동맹 체제의 종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나름 극보수 진영의 대선 후보가 등장하고 있음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여론이 반감을 표시하지 않고 있는 숨은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한때 누구도 감히 꺼낼 수 없었던 나토로부터의 철수까지도 과감하게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이러한 정책이 실현되지 않을지라도, 이를 막으려면 해당 국가가 돈을 더 부담할 수밖에 없기에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고도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다시 말해 자국의 돈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돈을 더 부담시키겠다는 것이다. 나토 무용론에 대한 자신의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트럼프가 다시 “나토에서 미국의 역할을 줄이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미국이 돈을 덜 쓰기를 원할 뿐”이라며 “우리(미국)는 불균형적으로 (비용을) 지급하고 있어 최소한 철학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한 CNN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해준다. 미군이 철수하면 그들은 한 달이면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떼돈을 버는데, 왜 우리에게 돈을 안 주느냐”고 발언한 것은 그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이 같은 외교정책 입장을 단지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비용을 더 내라는 것으로 해석하다가는 큰코다칠지도 모른다. 그의 입장이 돈 계산에서 비롯됐고 누군가로부터 ‘고립주의’라는 비판을 받을 지라도 이제는 세계 경찰 역할을 하며 각국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서 손을 떼고 미국 국내 문제를 우선시하겠다는 나름의 전략적 기초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설마’가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 당선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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