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뒷거래 시도하고, 약속도 안 지켜”
  • 박성의 시사비즈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0 18:13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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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사대표대책위, “합의하자 해서 소 취하해줬더니 다시 ‘나 몰라라’ 해”

현대중공업이 전직 임원을 앞세워 ‘사내협력사대표대책위원회’(대책위)를 돈으로 매수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책위 주장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측은 사내 협력사 대표들 수 명에게 45억원을 지급하는 대가로 대책위를 해체하고, 폭로했던 상납 비리가 허위라는 요지의 전단문을 배포하라고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측은 또 대책위가 청구한 공사대금 미지급 소송을 취소하게 하고,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 증인과 자료를 일절 제공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는 이 같은 현대중공업 측의 요구를 수용하고 이행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약속한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최근 조선업계의 불황으로 인한 수주 가뭄 탓에 감원까지 시도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돈을 앞세워 뒷거래를 시도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수주 가뭄 등으로 조선업계가 감원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 위기를 맞은 가운데 4월25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에서 대형 크레인들이 가동되고 있다.© 연합뉴스

 

“돈 미끼로 자기 목적 이루자 말을 바꾼 것”

 


현대중공업 대책위는 지난해 11월28일 구성됐다. 현대중공업의 기성(도급비) 삭감 여파로 인해 폐업한 협력사 대표들의 모임이다. 소속 대표들은 현대중공업 상납 비리를 폭로하는 과정에서 사측과 민·형사 소송을 벌였다. 지난 3월24일, 과거 현대중공업 협력사지원부 임원으로 재직했던 김 아무개 전 상무가 대책위 사무실을 찾았다.

이날은 시사비즈가 ‘현대중공업 간부 “황제 골프·성접대” 파문’을 보도한 날이다. 당시 현대중공업 협력사 대표들은 “2년 전부터 현대중공업 부장단에 성접대를 했다”며 “현대중공업 간부들에게는 주기적으로 뇌물을 상납했고, 수백만 원에 달하는 골프채까지 선물했다”고 말했다. 이날 김 전 상무는 이재왕 대책위 위원장에게 “현대중공업이 협상 테이블을 깔아보라며 나를 부르더라. 사측도 구조조정 등으로 사정이 힘들다. 폭로전은 멈추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자”며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책위에 따르면, 당시 김 전 상무가 전달한 중재안은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현금 45억원을 대책위에 제공하고 사측이 대책위를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금지 등 가처분 소송을 취소한다는 조건이었다. 기자가 입수한 ‘위로금 지급 합의서’ 및 ‘합의금 지급 보증 각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위 조건을 이행하는 대신 대책위는 사흘 안에 해체하고, 또 나흘 안에 ‘대책위가 그동안 사실과 다른 폭로로 사측에 해를 끼쳤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울산 동구지역에 배포하도록 했다. 아울러 대책위 소속 대표들이 제기한 공사대금 미지급 청구소송을 취하하게 했다. 이미 진행 중인 재판에는 증인 및 자료를 일절 제공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바른 소속 정혁준 변호사는 “미국은 돈을 주고 소를 취하하게 하거나 증인 출석을 방해할 경우 사법 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지만, 국내법으로 는 형사 처벌할 수 없다”며 “다만 윤리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또 이 같은 합의로 원고가 부당한 판결을 받는다면 민사적 책임을 피고가 지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대중 “합의 내용 자체가 금시초문” 반박

대책위는 이 같은 합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다. 이재왕 위원장은 “로펌을 앞세운 대기업과 소송전을 벌이기란 쉽지 않다.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입은 피해액에 못 미치지만, 가정을 돌보기 위해서는 대책위를 해체하더라도 합의금을 받는 게 낫다고 봤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3월31일 약속대로 소송을 취하하고 울산 동구 일대에 사과문 1500장을 배포했다. 그러자 현대중공업이 태도를 바꿨다는 게 대책위의 주장이다.

제시 금액 중 일부를 사용해 합의서에 기재되지 않은 대표들까지 회유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추가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현금을 지급할 수 없고 소송도 취하할 수 없다고 압박했다는 것이다. 이재왕 위원장은 “협력사 대표들은 기성삭감 탓에 모두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씩피해를 입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라는 사실을 사측은 알고 있었다”며 “협력사 대표들이 소송을 취하했지만 정작 사측은 대책위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을 취하하지 않고 있다. 생활고를 겪는 대표들에게
돈을 미끼로 던진 뒤 자기 목적을 이루자 말을 바꾼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은 대책위 주장을 허위라고 반박한다. 김 전 상무가 어떤 목적으로 중재에 나섰는지 알 수 없고, 사측 차원에서공식적인 합의금을 마련한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기자가 입수한 김 전 상무와 대책위 간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김 전 상무는 “현대중공업 간부들과 얘기가 잘 진행되고 있으니 믿고 (합의 내용을) 이행하라”고 대책위 측에 말했다. 또 현대중공업 협력사지원부 간부가 합의 내용을 두고 대책위 관계자와 통화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이에대해 대책위와 통화한 당사자로 지목된 현대중공업의 한 간부는 “김 전 상무는 예전 상사로서 개인적인 친분만 있다. 하지만 협력사 문제를 공식적으로 의논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대책위 관계자와 통화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책위가 통화기록을 공개했다고 지적하자 “대책위 관계자가 먼저 전화를 걸어와 통화한 사실은 있다. 돈 얘기를 사측이 먼저 꺼낸 적이 없으며 이런 합의 내용 자체가 금시초문”이라고 밝혔다.

한편 김 전 상무는 이번에 공개된 합의 내용에 대해 사측 관계자와 협의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김 전 상무는 “중재안 마련 전후로 여러 사정이 있다. 대책위가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안 된다. 나중에 해명하겠다”며 전화를 끊은 뒤 연락을 받지 않았다. 대책위는 현대중공업과 김 전 상무를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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