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의 기억 심리부검] “지옥 같은 인생을 내가 망쳐버렸다”
  • 서종한 프로파일러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0 18:20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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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에 대한 미안함에 자살로 생 마감한 김군…“난 너무 병신 같다” 자책감이 무거운 짐 돼

2008년 경남 밀양에서 자살한 김진수 군은 조용한 시골에서 사는 평범한 10대 소년이었다. 오래전 부모가 이혼한 후 외조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자살 당일 그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진학 문제로 이야기를 나눈 후 마을 어귀에 있는 가게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간 곳은 마을 가까이에 있던 조그마한 야산이었다. 이 언덕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머리가 아프거나 답답한 일이 있으면 쉬었다가 가는 한적한 곳이었다. 그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좋았다고 한다. 

 

해 질무렵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던 김군을 밭을 매고 돌아오던 마을 아주머니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지만 이미 사망한 뒤였다. 집에서 멀지 않은 사건 현장을 가봤다. 그가 뛰어내린 곳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절벽 아래는 뾰족한 바위들이 즐비했다. 잠시 서 있기도 아찔한 곳이었다. 한쪽 편에는 발자국들이 유난히도 많이 찍혀 있었다. 그가 신었던 신발의 문양과 일치했다. 절벽 위에서 낭떠러지 아래를 내려다보며 주저하고 고민했을 그의 모습이 상상됐다. 그의 죽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조부모와 생활한 김군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

 

김군과 10여 년을 함께 살아온 외할아버지는 출생의 비밀, 학교생활, 가족 관계 등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애 경로를 찾아내는 데 필요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많은 정보는 유가족과의 면담에서 나오는 게 보통이다.

 

“친부모는 진수가 5살 정도 될 때 이혼했다.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진수는 유년 시절 춘천에서 잠깐 생활을 했다. 새아버지는 원래 프로축구 선수였는데 부상으로 은퇴하고 무직자로 전전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 진수와 어머니에게 화풀이를 하며 가정 폭력을 일삼았다. 새아버지가 하도 폭력을 휘두르고 괴롭히니까 진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혼자 밀양집으로 피신하다시피 옮겨왔다. 그때부터 손자를 맡아 기르게 된 지가 6년이 다 됐다. 나나 아내나 여든이 다 된 몸이라 힘들었지만 불쌍한 진수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해마다 마늘이든 양파든 되는 대로 농사를 지었다.”

 

“어머니와 떨어진 후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진수는 모범생으로 불릴 만큼 성실하게 자라줬다. 주말이면 우리 농사일을 돕고 주중에는 학교를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정작 가고 싶은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다. 열심히 준비한 학교에 떨어지고 나자 진학한 고등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다니는 학교를 덜떨어진 곳이라고 하더라. 이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진학한 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 곳이었는데 힘들다고 했다.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같은 반 친구들과도 어울리려고 하지 않았다.”

 

“최근에 아이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전학 문제였다. 선생님과 면담을 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다음 학기에 전학 갈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했는데 그때가 되니까 갑자기 전학이 힘들다며 이제 전학 생각하지 말고 학교생활에 충실하라는 식으로 나왔다. 진수는 그제야 재수를 할지 말지 고민했다. 하지만 재수는 지금의 어려운 살림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주저했다. 우리는 괜찮다고 해보라고 했는데 자꾸 너무 미안하다고, 할아버지·할머니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는데 실망시켰다며 자책했다.”

 

외할아버지의 진술에서 김군이 죽기 전에 자살 시도나 이와 관련된 징후가 눈에 띄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가 남긴 일기장에는 “할머니께 너무 죄송스럽다. 고생하며 나를 뒷바라지해주시는데 난 너무 병신 같다”라는 표현이 계속 등장한 것으로 봐서는 심리적인 갈등이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옥 같은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다”

 

외할아버지로부터 김군의 한 절친한 친구를 소개 받아 면담을 계속할 수 있었다. 김군이 유일하게 의지하며 고민을 나눴던 친구였다. 친구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자신의 신변을 토로하며 힘들어한 김군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진수가 이 학교에 진학하고서 유일하게 사귄 친구가 나였을 것이다. 진수는 여기서 어떤 친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했다. 자기표현도 거의 하지 않고 여기를 벗어나는 날까지 그냥 참고 견디려고만 했다. 주변 아이들도 진수와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고 무슨 말을 해도 무시하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옆방 아이들이 계속 괴롭혀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진수는 나 말고는 마음을 터놓고 고민을 나눌 친구가 없었다. 이미 자신부터가 외부와 경계선을 긋고 그들과는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다. 진수는 오로지 이 학교를 어떻게 하면 그만두고 자기가 원하는 학교로 옮길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다니는 학교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진수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병신 같은 학교에 있는 아이들, 병신 같은 학교, 이 지옥 같은 학교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이다.”

 

실제 김군이 남겨놓은 일기장에도 이런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이제 한 달 남짓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온다. 오늘은 과학·영어. 새벽 2시까지 진짜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100% 합격할 거야. 조금만 더 악을 (쓰고) 견뎌보는 거야. 내가 원하는 학교에 합격해서 꼭 이 생지옥 같은 학교와 병신 같은 애들과도 이별하자. 이 지옥 같은 학교에서 벗어나려면 전교 10등 안에는 들어야 한다. 2010년 4월21일 기숙사 도서관에서.’ ‘분식점에서 용돈 사용을 하지 않을 것이다. 담배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술은 기말고사까지 절대 입에 대지 말자. 합격했을 시 절대 자살 시도와 생각은 금물이다. 합격 전까지 혜정(여자친구)이와 관계도 일절 맺지 말자. 죽기 살기로 노력을 해보자. 하지만 모든 게 망쳐지면 미련없이 할아버지의 짐을 덜어 드리자. 자살로 마무리하자. 지옥 같은 인생을 내가 망쳐버렸으므로. 2010년 4월29일 기숙사 침실에 누워서.”

 

출생 후 부모가 이혼한 경험과 재혼 후 새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상습적으로 폭력을 일삼던 새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와 생이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외가로 내려와 지내며 1년에 두 차례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고, 새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했지만 병원에 찾아가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김군의 몸 여기저기 빨간 흉터나 긁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성격이 활달하거나 원만한 편이 아니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몇 명 되지 않았다.

 

김군은 늘 할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어머니가 새아버지에게 심한 폭력을 당했고 외할아버지도 고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공부를 통해 보답하고 싶어 했다. 급성 위험 요인으로는 최근 가고 싶은 학교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후의 삶은 급격히 바뀌었다. 진학한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과 폭력을 당했다.

 

유일하게 이 학교와 친구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전학마저도 좌절되자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또 결행했다. 김군이 남겨 놓은 일기장을 통해 학교에서 계속되는 구와 따돌림, 기숙사 생활에서 경험하는 답답함, 이 모든 것들이 자살을 앞당긴 요인으로 보인다. 보호 요인도 있었다. 외조부모의 따뜻한 보살핌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외조부모는 아낌없이 김군을 돌봤다고 했다. 김군도 늘 외할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살았고 보답하는 손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공부를 잘해 목표로 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자주 연락하며 지낸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 수 있는 그날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고 한다. 

 

만성 스트레스의 자살 유형

 

김군은 16여 년 동안 자살 행동과 관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생애 사건들, 이를테면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어머니와의 이별, 새아버지로부터의 학대 경험, 경제적인 결핍 등을 지속적 혹은 만성적으로 경험했다. 이와 함께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촉발 사건들, 즉 전학 좌절, 성적 비관, 입시 실패, 친구들의 따돌림과 폭력 등이 무기력감과 우울감 등 심리적 상태에 영향을 준듯 보인다. 자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예측인자들이 있는 가운데 특정 촉발 사건에 의해 자살에 이른 경우이다. 만성 스트레스 자살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청소년 시기에는 학교 성적과 또래와의 관계 이 두 가지가 어쩌면 전부라고 느껴질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불안정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은 결핍 의식을 채우기 위해 강박적으로 매달리거나 집착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목표가 될 수 있다. 이 목표에 다다를 때만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고, 주변인에 대해 짐이 된다는 의식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군의 일기에서 그는 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왔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그 짐을 내려놓을 수 있어서 평화롭다고 한다. 할 수 있는 일이 그에게는 더 이상 없어서였을 것이다. 김군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해봤기 때문이다. 다만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할아버지는 김군을 잘 키워보려고 했지만 김군에게 무조건적인 안식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자신을 뒷바라지하는 외조부모, 새아버지의 학대로부터 자신을 보호한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를 두고 온 자신을 보면서 그는 안온함을 느끼기 이전에 죄의식과 짐이 된다는 의식을 가졌다. 그를 위해 희생하는 외조부모와 어머니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늘 불안하고 초조한 것이었다. 그가 좀 더 부드럽게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친구나 방황하는 그에게 다가와 따뜻한 말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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