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권력 감시의 첨병 시사저널
  • 박영철 편집국장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6.05.22 17:52
  • 호수 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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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1일 오전 11시41분 제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저희 기자였습니다. 

 

“국장님, 가처분 기각됐습니다!”

 

청와대 허현준 선임행정관이 4월22일 시사저널사를 상대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출판금지 등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이 저희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이미 보도가 됐지만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자세히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허현준 행정관 측 신청이유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허 행정관은 어버이연합에게 한일위안부 합의안지지 집회를 지시한 사실이 없음에도 시사저널이 ‘청와대 행정관이 어버이연합에 집회를 지시했다’는 내용으로 허위보도를 했고, 이로 인해 허 행정관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허 행정관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판단 이유로 크게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하나는 입증책임입니다. 허 행정관이 제출한 소명자료가 미흡하다고 봤습니다. 두 번째는,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이 문제 되는 경우에 공적 사안과 사적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에 차이를 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공직자의 공직 수행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에 관해 의혹을 품을 만한 충분하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언론보도를 통한 감시와 비판 행위는 언론자유의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인 보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그것이 악의적이거나 심히 경솔한 공격이 아닌 한 쉽게 제한돼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청 대상인) 인터넷 기사의 경우 다른 언론사에서 자체적으로 확인한 정보에 따라 관련 기사가 다수 게시돼 있는 상황이라는 것도 재판부는 참고했습니다.

 

딱딱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법원 결정문을 자세히 인용한 것은 그만큼 이번 판결이 한국 언론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판결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시사저널이 관련됐다고 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판결이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과 관련되는 중대사안인 탓입니다. 저희는 4월20일 인터넷판으로 <어버이연합 “청와대가 보수 집회 지시했다”>는 기사를 내고, 이틀 후 마감한 잡지인 1384호에 <“보수 집회 열어달라” 청와대 행정관 지시 의혹>이라는 제목으로 커버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이 의혹이 사실이라고 봤고 사실이라면 민주주의의 근간(根幹)을 이루는 ‘집회의 자유’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집회의 자유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은 의사의 자발성에 있습니다. 시사저널이 보도한 어버이연합의 ‘탈북자 알바’ 논란과 청와대 행정관의 ‘집회 지시’ 의혹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수호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습니다.

 

‘정운호 게이트’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요즘, 법리에 충실한 판단을 한 서울서부지법 제21민사부의 이건배 재판장, 오승준·김용현 판사께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언론의 자유는 이 땅의 소금 역할을 하라는 의미에서 주어진 것임을 각별히 유념하고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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