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인간의 폭력에 항의하고 대답을 기다렸을 뿐"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5.23 18:37
  • 호수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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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받은 한강 작가

5월 중순, 한낮 폭염까지 찾아든 뜨거운 날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문화계에 정말 ‘핫’한 뉴스가 잇달아 들려왔다. 프랑스에서는 한국영화 <곡성>에 대한 극찬 릴레이가 펼쳐지고 있고, 영국에서는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후보에 올랐던 한강 작가가 5월 16일 최종 수상자로 확정돼 상을 받았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선정위원회는 <채식주의자>를 선정한 이유에 대해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소설이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2007년에 출간돼 빛바랬을 법한 소설책이 어떤 경로를 거쳐 유럽에 소개돼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까지 덜컥 수상하게 된 걸까. 방송사와 신문사들이 ‘한국 작가의 쾌거’를 일제히 보도했지만 영국 현지에서 상을 받아든 한강 작가는 전혀 들떠 보이지 않았다. 5월19일 오전 인천공항으로 귀국한 그는 방송사 카메라와 취재진을 따돌리듯 피해 달아났다. 출판사를 통해 공식 기자회견만 하겠다고 했다. 내세워 자랑할 만한 일은 없는 사람처럼 시상식에서도 “책을 쓰는 것은 내게는 질문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채식주의자>를 쓰면서 나는 인간에 대해 질문하고자 했고, 집필 과정에서 질문은 인간의 폭력성에서 인간의 존엄성으로 옮겨갔다”는 작품 후기 같은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육식 거부하고 식물 돼가는 여인의 이야기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세 작품으로 이뤄진 연작소설이다. 이 중 ‘몽고반점’은 2005년 심사위원 7인 전원일치 평결을 받아 이상문학상에 선정됐던 작품이다. 당시 이어령 교수는 문학평론가로서 이 작품에 대해 “기이한 소재와 특이한 인물 설정, 그리고 난(亂)한 이야기의 전개가 어색할 수도 있었지만, 차원 높은 상징성과 뛰어난 작법으로 또 다른 소설 읽기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이 모든 찬사는 <채식주의자>를 제대로 읽는 데 방해가 될 듯하다. 작가가 이전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했던 소개말을 빌려 어떤 소설인지 엿봤다. 

 

소설은 지극히 평범한 아내로 살던 여인이 어느 날 ‘폭력성’에 맞서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햇빛과 물만으로 사는 ‘식물과 같은 삶’을 살겠다고 선언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주인공 영혜는 작가가 오래전 발표한 단편 <내 여자의 열매>에서 선보인 식물적 상상력을 변주한 인물로, 어느 날 꿈에 나타난 영상에 사로잡혀 육식을 멀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남편은 처갓집 사람들을 동원해 영혜를 말리고자 하고, 장인이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넣으려 하자 영혜는 그 자리에서 손목을 긋는다. 단순한 육식 거부에서 식음을 전폐하는 지경에 이른 영혜는 몸에 옷 하나 걸치기를 꺼리고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전이된 모습으로 변해간다. 소설은 시간의 순서대로 각각 영혜·형부·언니의 시점으로 바뀌면서 진행된다. 영혜의 저항이 갈수록 기이해지면서 겉보기에 정상이던 가족의 관계는 욕망·폭력·수치에 휘말린다. 

 

“가족으로부터 영혜는 계속 미끄러져서 도망간다. 영혜를 포착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건 없건 모든 바라보는 시도들로부터 계속 도망을 간다. 심지어 자신으로부터도. 이야기는 세 명의 화자인 남편과 형부와 언니가 영혜를 끝끝내 움켜쥐지 못하는 것이고, 영혜의 진실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소설이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독자가 이 소설에 대답을 해야 한다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인간이기를 싫어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이 자체가 질문이라는 게 아닐까라는 거다. 작가는 “불편한 이 질문 속에 견디면서 머물러 보는 게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장편 한 편씩 보태면서 내 삶도 진전되는 듯”

 

“영혜는 화자로 등장하지 않고 계속해서 관찰되고 이해받지 못하고 때로는 연민의 대상으로 남게 된다. 독자는 도대체 영혜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 그 진실을 스스로 움켜잡아야 한다고 해야 할까.” 영혜는 삶을 저버리더라도 폭력에 저항하는 여인으로 비친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는 인간의 폭력에 항의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작가 입장에 가장 근접하는 인물은 영혜가 아니라 언니 인혜다. 인혜는 모든 사태를 관찰하고 끈질기게 견디면서 응시하고 이해하려 애쓴다. 비록 계속 실패하지만 끝까지 항의하거나 대답을 기다리는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그런 사람이다.” 

 

한강 작가는 장편을 한 편씩 쓰면서 자신의 삶도 진전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채식주의자> 이후 쓴 소설들에서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이 세계를 껴안으려는 사람도 등장한다. 대표작이 2013년 출간된 <소년이 온다>이다. 1980년 5월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5·18)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를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의 해외 번역 판권은 이미 20여 개국에 팔렸다. “내가 열한 살 때인가, 아버지가 가져온 처참한 현장 사진을 보았다. 아버지가 숨겨두고 지인에게만 보이던 것인데, 어린 내가 호기심에 몰래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내가 태어난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파헤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을 쓰는 일은 다른 작품을 만드는 것과 정말 다른 일이었다.” 

 

한승원 작가의 딸로도 유명한 한강 작가는 1994년 서울신문에 <붉은 닻>으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작품을 써가고 있으며, 현재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작품 평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작품이 그저 독자들의 손에 담담하게 들려지기를 바란다. “정말 그렇다. 소박한 마음뿐이다. 처음 노래들을 흥얼거리며 느꼈던 위로와 따뜻함, 몰래 감춰둔 불빛 같던 마음들이 당신에게 가 닿을 수 있기를 빌 뿐이다. 그저 있는 그대로…담담하게 그렇게.”

 

 

한국 작가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첫 수상이 갖는 의미

 

지난 5월16일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시상식 겸 공식 만찬에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선정위원회는 한강 작가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수상작은 지난해 영국에서 출판된 <채식주의자> 영문판 이었다. 선정 이유와 관련해 ‘충격적인 소설’ ‘놀라운 번역’ 등으로 소개됐다. 영화나 드라마뿐 아니라 한국문학 또한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확인시킨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문학 한류 바람’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로, 그동안 관련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데 대해 질타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한국에서는 소설 내용이 아니라 한강 작가가 수상을 했다는 것이 더 충격이며, 놀라운 일로 다가왔다. 전국의 대학에서 국문학과뿐 아니라 많은 인문계열 학과가 사라지고 통폐합되는 나라에서, 또 그런 방향을 정부가 ‘지원’하는 나라에서 국문학과를 나온 한국의 작가가 어떤 기관의 지원을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았으니까. 

 

영어로 널리 읽히는 한국 작품 가능함 확인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공쿠르상(프랑스)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1969년 영국의 부커사(社)가 제정한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해마다 영국·아일랜드 같은 영국 연방국가 내에서 영어로 쓴 영미 소설 중에서 수상작을 선정했다. 출판과 독서 증진을 위한 독립기금인 북트러스트(Book Trust)의 후원을 받아 운영돼온 부커상은 2002년부터 맨 그룹(Man group)의 후원을 받으면서 맨부커상(The Man Booker Prize)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상금도 2만1000파운드에서 5만 파운드(약 8500만원)로 올렸다.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가들에게는 작품의 특별판을 제작해주고, 최종 수상자는 상금과 함께 국제적인 명성을 보증받는다.

 

올해 한강 작가가 수상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2005년에 신설됐는데, 비영어권 작가의 영문판 소설이 대상이다. 격년제로 시상해오던 것을 올해부터는 작가와 번역가에게 매년 시상하기로 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어떤 언어로 쓰였든 영어로 널리 읽히는 작가의 공을 기리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올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부문에서는 한강 작가 말고도 터키의 오르한 파묵, 중국의 옌렌커, 앙골라의 호세 에두아르도 아구아루사, 이탈리아의 엘레나 페란트, 오스트리아의 로베르트 제탈러 등 총 6명의 작가가 최종 후보에 올라 경쟁했다. 한국 소설가가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이처럼 주요한 해외 문학상을 받은 것은 한강 작가가 처음이다. <채식주의자>를 영어로 번역한 데버러 스미스는 한강 작가와 함께 상과 상금 5만 파운드를 나눠 갖게 된다.  

 

맨부커상은 다른 문학상과 달리 독자 의견을 반영한다. 매년 새로운 전문가로 구성되는 심사위원단은 후보작을 선정해 홈페이지에 공개하는데, 최종 수상작은 독자 의견을 반영해 발표한다. 이러한 선정 과정 때문에 맨부커상 수상작들은 수상 직후 판매량이 10배에서 100배까지 올라 영미권 베스트셀러가 된다. 맨부커상을 수상하면 책 판매가 최소 2배가 늘어난다는 ‘부커상의 법칙’이 탄생했을 정도다. 한강 작가에게도 이 법칙이 통했는지, 수상 보도가 나간 후 그의 책을 서점에서 한동안 구할 수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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